지난 4월 28일부터 8월 28일까지 국립중앙박물관에서 고 이건희 회장의 기증 1주년을 기념하는 전시회가 계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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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72년 전 겸재 정선의 묵중하며 힘차게 척척 내려치는 자유로운 필묵법을 가까이 볼 수 있는, 그러나 가벼이 그림 앞에 다가설 수 없었다. 숨을 고르고 마음을 정한 뒤 다소곳이 다시 돌아와서야 그림을 바라볼 수 있었던 <인왕제색도> 이 작품 하나만의 전시라도 행복하다. ⓒ 50+시민기자단 민명식 기자

 

얼마 전 집에서 700m 인근에 정선의 묘소가 있다는 내용을 알게 되고는 묘소를 찾아 나서고 있는 중 (주민센터의 안내도에 아름답게 정선의 묘소가 그려져 있었으나 최근에 지워짐) 정선의 인왕제색도가 전시된다는 말을 듣고 인터넷 예매를 시도했으나 이미 매진된 상태였다. 그렇다고 포기할 수 없는 것은 현장 판매분이 있었기에 예매 시작 2시간 전부터 매표창구에서 기다렸다.

 

첫 전시가 있던 날은 아침 기온이 제법 쌀쌀하여 두 시간을 기다리기에는 무리였다. 그러나 기자가 도착하기 전에 이미 두 분의 여성이 기다리고 있었고 그분들 앞에서 기다림의 피곤함을 드러낼 수 없었다. 두 분은 사는 곳이 다르지만, 이른 아침에 매표소 앞에 있다는 이유로 이내 가까운 사이가 된 것을, 들리는 대화로 확인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정선, 그는 누구이기에 이른 아침 오랜 기다림을 개의치 않는가?

정선은 1676년 한성부 북부 순화방 유란동(지금의 경복고등학교 내)에서 태어났다. 그는 이 땅에 진경산수화를 개척하고 확립하고 완성한 화성으로 일컬으면서, 그가 말년에 그린 <인왕제색도>는 사천 이병연에 대한 아름다운 이야기를 덧씌워 이야기되는 조선의 화성으로 일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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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좌) 정선이 태어난 서울 북악산 아래 유란동 난곡(종로구 청운동 89-9) 경복고등학교에 겸재의 자화상인 <독서여가도> 동판과 함께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우) 유란동에서 바라본 인왕산 모습. ⓒ 50+시민기자단 민명식 기자

 

정선은 어려서 당시 조선 문예의 대가였던 농암 김창협, 삼연 김창흡, 노가재 김창업의 문하에서 시와 문장 및 글씨와 그림을 배우며 당대의 학계와 예술계에 활약하던 장동 김문가의 3형제의 학문적 영향과 적극적인 후원으로 진경산수를 완성하게 되었다.

 

<해악전신첩>으로 정선이 이름을 세상에 떨치게 된 것은 그가 37살이던 1712년 숙종 38년이었다. 정선은 금화 현감인 이병연의 초대로 금강산 유람을 한 후에 <해악전신첩>을 그렸다. 이 화첩에는 당대 문예계를 선도한 삼연 김창흡과 사천 이병연 등의 제화시문과 이 화첩을 감상한 수많은 문인이 기록을 남기고 있으며 ‘해악전신(海嶽傳神)’이란 금강산의 정신을 그림으로 표출함을 의미하는 최고 명성의 이름을 얻었다. 현재 <해약전신첩> 21폭은 전해지지 않으나, 한 해 전 1711년에 그린 <신묘년풍악도첩>에는 <단발령망금강산>, <피금정>, <불정대>, <백천교>, <삼일호>, <금강내산총도>, <장안사>, <해산정>, <옹천> 등 13점의 그림 있어 당시 정선의 화풍을 엿볼 수 있다.

 

40대 중엽에서 60대에 정선은 1716년 관상감의 겸교수로 관직을 시작하여 사헌부 감찰(종6품), 1721년 하양현감(현 경산시) 시 <쌍도정>, <달성원조>, <영남첩>, <구학첩> 등을 그렸다. 1726년 하양현감의 임기를 마치고 상경하여 이듬해 유란동에서 인왕곡으로 이사를 한다. 정선은 자기 집을 인곡유거 또는 인곡정사라고 불렀는데, 현재 옥인동 20번지 인근으로 당시는 한도 북부 순화방 창의리 인왕곡이었다. 1733년 청하현감(현 포항시) 시 작품으로 <청하성읍>을 그렸다. 정선은 서울, 경기, 금강산 지역과 충청도, 경상도 등을 여행하며 우리 자연의 아름다움을 화폭에 담는 데 온 힘을 다했다. 이 시기는 정선이 진경산수화풍을 확립하는 시기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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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선이 84세까지 거주한 인왕곡 인곡유거(현재 옥인동 20번지 군인아파트)가 자리 잡고 있던 인곡정사터. ⓒ 50+시민기자단 민명식 기자

 

정선이 1740년 양천현령으로 부임하면서 이병연과 시와 그림을 서로 나누면서 시화첩을 만들자고 약속을 한다. 당시 두 사람의 언약을 떠올리며 정선은 그림으로 <시화환상간>을 그렸으며, 이런 약속으로 이병연과 시와 그림을 교환하며 사천과 겸재의 합작으로 만들어진 작품이 바로 <경교명승첩>이다. 거기에는 정선은 ‘천금물전(千金勿傳)’이라고 천금을 주어도 남에게 넘기지 말라는 인장으로 시화첩의 소중함을 새겼다. 양천현과 한강의 풍경을 담은 <양천팔경첩>과 연강(漣江: 임진강)에 배를 띄우고 뱃놀이를 한 모습인 <연강임술첩>을 그리면서 정선은 경지에 이른 작품을 생산한다. 이때 정선의 작품에는 우리 산천의 아름다운 서정미가 가미되는 원숙미가 가득 담기게 된다.

 

정선이 70세를 넘어서면서 정선의 붓은 손 가는 대로 필묵법을 구사해도 법도를 벗어나지 않는 노대가로 일컫는다. 이 시기 작품은 일견 완성되지 않은 듯싶으나 바쁜 일상에서 ‘휘쇄필법’이라는 한 번에 내려치듯 쓸어내며 빠르게 휘두른 필묵법으로 생략의 묘사가 드러나기 때문이다. 이때의 작품으로 양천현령직을 마치고 인왕곡으로 귀가하여 인왕산과 북악산 아래의 풍경을 그린 <장동팔경첩>을 제작하였으며, 우리가 매일 만나고 있는 천 원권 지폐의 뒷면에 그려진 <계상정거>와 정선이 살던 집 <인곡정사>가 있다.

 

정선은 1747년 72세 봄에 다시 금강산을 유람하고 제작한, 노년에 무르익은 필치로 금강산 경치를 담은 21폭의 <해악전신첩>과 1751년 정선의 나이 76세 때 사천 이병연의 사망에 즈음하여 아름다운 이야기까지 곁들여져 뭉클한 마음으로 바라보고 다시 바라보기를 몇 차례하고 감상을 마치고 전시관을 나섰다. 그리고 다시 2번이나 더 <인왕제색> 작품 앞에 서게 된 것도 정선의 이런 필치의 기운이 아닌가 싶다. 비 온 뒤 안개가 골마다 스민 인상적인 순간을 척척 내려치는 웅혼한 붓놀림으로 인왕산보다 더 인왕산답게 그려낸 정선의 최고작이라 할 수 있다.

 

정선은 이후에 장흥고 주부(종6품), 헌릉령(종5품)에 오르고 81세에는 왕대비의 칠순으로 다시 승직되어 가선대부 동지중추부사(종2품)에 제수되어 우리나라 화가로는 최고의 직위에 올랐다. 82세 <청송당>을 제작하고 1796년(영조35) 84세로 양주 해등촌면 계성리(현 도봉구 쌍문동)에 안장되었다. 정선의 사후 13년 만에 영조의 각별한 배려로 한성판윤이라는 9경의 자리에 오르는 영예를 누리게 된다.

 

정선의 묘소는 양주 해등촌면 계성리(도봉구 쌍문동)에 정선의 묘가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며, 또 다른 답변으로 알 수 없는 상황이다. 정선의 묘소를 찾기 위해 광주광역시의 광주정씨 제각을 찾았고, 며칠 전 광주정씨 대종회 회장님과 임원분도 만나 족보 1질을 입수했다. 오늘도 귀갓길 현재까지 정선의 손자 정황이 공경히 그린 <양주송추도>와 광주정씨 족보로 비정된 쌍문동 52번지 일대에서 정선 묘소를 찾는다.

 

“어째서 정황은 할아버지 정선의 묘소 앞에 석물을 그려놓지 않았는가! 겸재 정선 묘소 앞에 석물만 세웠다면 지금처럼 정선 묘소의 흔적을 잃고 가슴을 쓸며 안타까워하지 않을 것을…

이제 우리 대한민국 정선의 후손 모두가 찾아 나서야 할 때이다.”

 

어느 수집가의 초대로 국립중앙박물관에서, 272년 전의 <인왕제색>이라는 정선의 그림 한 폭 앞에서 가슴 설렌다. 정선의 저 그림 하나만으로도 정선의 이름이 세상을 흔들기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화폭에 척척 내려치는 웅혼한 붓놀림을 느끼면서 그 앞에 설 수 있다는 것은 더 얻기 어려운 축복된 기쁨이 아닐 수 없다.

 

설레는 감정을 우리 후손들이 누릴 수 있도록 작품을 수집하고 보관하였다가 국가에 기증하여 이 자리를 마련한 故 이건희 회장의 따스한 마음도 역시 잊힐 수 없다. 숙연한 마음이다. 현재 전시관에서 정선의 <인왕제색도>는 작품교체로 영상으로만 볼 수 있으나 그 외 선사시대에서 현대까지의 시대를 넘나드는 소중한 작품들 하나하나는 관람자 누구에게나 기대 넘치는 감동을 줄 것이다.

 

기자는 오늘 어느 수집가의 초대에 감사하면서 팔월에 전시 예정 작품들이 그리워 다시 초대장을 예매했다. 7월 28일까지는 한국화의 대가 박대성 화가의 ‘불국설경’이 교체작품으로, 8월에는 ‘화접도’가 교체작품으로 전시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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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중인 한일(김수근), 황소(이중섭), 수련(클로드 모네), 금동보살삼존입상(국보). ⓒ 50+시민기자단 민명식 기자

 

아직 국립중앙박물관을 찾지 않았다면 여름이 지기 전에 어느 수집가의 초대에 감사하며 반드시 찾아보기를 간곡히 권해 드린다. 전시작품으로 <금동보살삼존입상>(국보), 김환기 <산울림>, 클로드 모네 <수련>, 이중섭 <황소>, 박수근 <한일> 등 이건희 컬렉션 355점이 전시되고 있다.

 

 

50+시민기자단 민명식 기자 (msikmin@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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