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법정 스님이 폐렴으로 병원에 입원했을 때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게 주어진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 그런데 그 시간을 무가치한 것, 헛된 것, 무의미한 것에 쓰는 것은 남아 있는 시간들에 대한 모독이다.
또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을 긍정적이고 아름다운 것을 위해 써야겠다고 순간순간 마음먹게 된다.
이것은 나뿐 아니라 모두에게 해당되는 일이다. 우리 모두가 언젠가 이 세상에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미리 쓴 열반송처럼 스님은 2010년 3월 향년 77세로 입적했다.

2021년 출생아 수는 26만 500명인데 반해 사망자 수는 31만 7,800명으로 역전되어 이른바 인구데드크로스 시대다. 2020년 통계로 60세 남자 기대여명은 23.4년이고 여자는 28.2년이다. 이는 모두 통계다.

“세상에는 세 종류의 거짓말이 있다. 거짓말, 새빨간 거짓말 그리고 통계.”

영국의 전 총리 벤저민 디즈레일리의 말처럼 믿지 못한다는 것이다.

태어나는 것은 순서가 있지만 가는 곳은 순서가 없다고 한다. 고대 인도 법전의 ‘4주기’처럼 인생을 보내는 방식은 크게 학생기(0~25세: 살아가는 지혜를 터득하는 시기), 가주기(25~50세: 가정을 꾸리고 일에 힘쓰는 시기), 임주기(50~75세: 삶의 보람을 찾아 인간답게 사는 시기), 유행기(75~100세: 집을 버리고 죽을 장소를 찾아 유랑하고 기도하는 여생의 시기)의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그동안의 일과가 시간에 쫓기고 남의 시간표에 의해 살아왔다면 50+의 인생은 내가 주인이 되어 차분하게 인생을 성찰할 수 있는 또 다른 기회다. 지금 이때를 ‘내 인생에 가장 늙은 날’로 살아갈 것인가 아니면 ‘남은 생애 가장 젊은 날’로 받아들일 것인가는 자신의 의지에 달려 있다.

그렇다면 인생을 충일하게 사는 방법은 무엇일까? 최고는 ‘배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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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움 더하기. ⓒ 강동50플러스센터

“배우고 때때로 익히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學而時習之, 不亦說乎)!”

<논어>의 첫 장, 배움의 기쁨은 공자의 ‘공부하는 인간’의 호학(好學) 선언이기도 하다. 끊임없이 진화하는 인간의 속성에 맞게 배움을 갈망하는 인간의 생물학적 특성은 다양하다. 동물과 다르게 인간은 생각하고(Homo Sapience), 말하고(Homo loquens), 학문을 추구하며(Homo Academicus), 연구하고(Homo Studiosus), 공부한다(Homo Kongfus).

스스로 학습을 즐기고 서로 배우고 가르치는 것을 즐거워하는 사람들, 이른바 배우기를 좋아하는 현대인들의 특성을 지칭하여 라틴어로 호모 에루디티오(Homo Eruditio)라고 부른다. 고대 그리스, 로마 시대를 넘어 고대 중국, 동서고금을 망라하여 사람들이 학습을 즐긴다는 것은 인간이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세계와 교감하며 매일의 삶에서 새로운 지식과 지혜를 얻는 것을 즐거워함을 의미한다. 알아가고 발견하는 기쁨 속에서 더 나은 인격으로 성숙되어 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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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서여유산(讀書如遊山), 배우는 것은 곧 걷기다. ⓒ 50+시민기자단 황용필 기자

그렇다면 어떻게 배워야 하는가?

일찍이 조선의 학자 퇴계 이황을 비롯하여 여러 선생들은 ‘독서여유산(讀書如遊山)’이라 했다.

“독서인설유산사(讀書人說遊山似)/ 금견유산사독서(今見遊山似讀書)”
“사람들 말하길 글 읽기가 산 유람과 같다지만/ 이제 보니 산 유람이 글 읽기와 비슷하구나.”라는 의미로 배움도 이와 같다.

브라질 시인 마샤 메데이로스도 “습관의 노예가 된 사람/ 매일 똑같은 길로만 다니는 사람/ 여행을 하지 않는 사람/ 책을 읽지 않는 사람”은 <서서히 죽어 가는 사람>이라 했다.

수학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필즈 메달’의 주인공 허준이 프린스턴대 교수에게 수학의 영감을 불러준 이가 바로 일본의 히로나카 헤이스케 교수다. 그분의 저서 <학문의 즐거움>에는 쓰지 못하고 반납하는 인간의 두뇌 세포에 대해 안타까움을 적었다.

인간의 두뇌는 140억 개의 뇌세포가 있는데, 이걸 다 쓰려면 234년이 걸린다고 한다. 하지만 강건하여 80세 인생길에 대부분이 10%, 많아야 20% 정도밖에 못 쓰고 간다. 쓰지 않는 80%는 땅에 묻으니 이 세상에서 가장 비옥한 땅은 바로 공동묘지라는 말이 나온다.
 
30대는 시비를 따지며 살았고, 40대는 선악을 가리며 지냈다면 50+에는 추미애(醜美愛)다.
추한 것 던지고 아름다운 사랑에 다가서는 것!

잘 차려입고 50+공동체에서 배우고 걷자(Dress Up, Learn & Walk!). 항상 젊을 것이다!(You won’t Old!)


50+시민기자단 황용필 기자 (yphwang@skku.ed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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