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지 않은 길과 50+세대의 버킷리스트 

 

대학 시절인 것 같다. 친구가 건네준 독일 작가 슈테판 츠바이크의 단편소설 ‘모르는 여인으로부터의 편지’를 인상 깊게 읽은 기억이 있다. 지금은 어렴풋이 그 줄거리를 떠올릴 뿐이다.

 

소설을 읽을 당시에는 달콤한 사랑 이야기쯤으로 시작했지만, 여인은 그를 평생 잊지 못하고 또 상대는 그녀를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이해 안 되는 상황을 뛰어난 심리묘사로 풀어내 소설 속으로 빠져들게 한 작품이었다.

 

책을 읽고 난 후 작가 평을 보니 츠바이크의 작품을 ‘찰나 문학’이라고 표현했는데 그 후 다른 작품과 함께 자신 앞에 놓인 찰나의 상황과 선택에 대해 곰곰이 생각했던 것 같다.

 

꽤 오래된 TV 프로그램 중 ‘TV 인생극장’이란 코미디 프로에 “그래! 결심했어!”라고 외치는 코너가 있었다. 특정한 설정의 이야기가 전개되다가 “그래, 결심했어”라는 말로 두 가지의 선택에 따라 전혀 다른 삶이 전개되는 설정으로 흥미진진하게 그 코너를 즐겼던 기억이 있다.

 

우리의 삶도 그런 것 같다. 어느 시기, 또 어느 순간 자신에게 다가온 것을 선택하고 그 선택에 따라 전개되는 이야기는 수도 없이 다른 것으로 이어지고 결과되었을 것이다.

 

그래서 가끔 그런 생각을 해본다. 어느 시기, 어떤 사람을 만났었느냐에 따라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삶의 길을 걸었을 것이라고.

 

‘모르는 여인으로부터의 편지’에서 등장한 여인과 그가 수차례에 걸친 만남에서 한 사람은 필연이고 한 사람은 우연이 아닌, 인연으로 이어졌다면 그 남자의 삶은 어떻게 변하였을까?

 

인생극장의 주인공처럼 다양한 상황에서의 선택에 따라 우리는 얼마나 많은 변화를 가졌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면 흥미로울 수밖에 없다.

 

삶은 끝없는 선택의 과정으로 만들어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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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지 않은 길. ⓒ 50+시민기자단 안종익 기자 

 

즐거운 상상을 해보자. 로버트 프루스트의 ‘가지 않은 길’처럼.

만일 어떤 이가 청소년 시절 꿈을 꾸었던 것처럼 작가 수업을 통해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소설가가 되었다면, 철학을 전공한 그가 대학 졸업 후 처음 응시했던 기자 시험에 합격하여 신문기자가 되었다면, 어린 시절 좋은 성량으로 각종 발표 및 낭독자로 선정되었던 그가 누군가의 적극적인 조언으로 방송계에 진출하였다면, 그가 첫 직장이었던 교사로 계속 근무하였다면, 직장 근무 시 이러저러한 상황에서 용감하게 다른 선택을 하였다면, 애초 직장인이 아닌 자기 사업의 길을 선택하였다면, 그의 삶에는 얼마나 많은 변화가 있었을까?

 

영화 ‘버킷리스트’ 상영 이후 자신의 버킷리스트를 작성해 보는 일이 한때 유행처럼 번진 적이 있다. 지금은 좀 덜하지만 많은 교육 프로그램에서 자신의 버킷리스트를 작성해 보았던 경험도 있다.

 

한 번은 중장년 세대의 인생 이모작 프로그램에서 자신의 버킷리스트 작성하기 시간이 있었는데 발표되는 버킷리스트는 자신의 여건에 맞게 다양했다. ‘아! 저런 것도 꼭 해보고 싶은 거구나!’ 나에게는 일상적인 거지만 그는 하지 못하기 때문에 하고 싶은 것들. 기억되는 작거나 큰 몇 가지를 적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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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버킷리스트 책 출간. ⓒ 50+시민기자단 안종익 기자
 

 

한강변 자전거 도로에서 자전거 타기, 혼자 대중교통으로 여행 떠나기, 국토종단, 체중 70kg 이하 만들기, 바다에서 튜브 없이 헤엄치기, 번지 점프해 보기, 가족과 함께 캠핑하기, 사진 작품집 만들기, 영어로 대화하기, 해외 자유여행 떠나기, 노을 지는 바닷가에서 키스하기, 배우자의 자유를 마음껏 누리게 해주기 같은 낭만적인 것도 있었다. 그 외에도 작고 소소한 것이지만 한 번쯤은 해보고 싶은 것들이 많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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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버킷리스트 가족 캠핑. ⓒ 50+시민기자단 안종익 기자
 

 

그중 가장 많은 것은 안 가본 여행지로 떠나기 등 여행 관련된 해보고 싶은 것들이었는데 아마 여행은 우리 50+세대의 끝없는 희망인 듯싶다.

 

대부분 듣다 보면 ‘그렇구나’ 하는 것들이었는데 가장 인상 깊었던 버킷리스트는 타인의 눈치를 보지 않고 내가 생각하는 마음껏 말하고 행동해 보기였다. 우리의 삶이 얼마나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면서 살아야 하는 것인가에 대한 일종의 해방 선언인 셈이다. 

 

수년 전 아내와 함께 국내 100대 명산 등정을 버킷리스트로 선언했던 친구는 어느 날 그 약속을 지키고 친구들과 함께 100대 명산 등정을 축하하는 기념 산행을 하였다. 친구를 축하하는 뜨거운 응원의 뒤풀이를 하면서 우리는 자신의 버킷리스트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던 기억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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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버킷리스트 자유여행. ⓒ 50+시민기자단 안종익 기자
 

 

가까운 지인 중 한 분은 주말에 뭐 하셨냐고 물으니 혼자 여행을 다녀왔다고 했다. 늘 함께 여행을 다녀서 혼자 하는 여행을 하고 싶었는데 올해의 목표인 3회 중 2회를 실행했다고 한다. 그는 장기적 버킷리스트보다 매년 올해의 버킷리스트를 만들고 있다고 했다. 

  

우리가 못 해본 수없이 많은 것들!

선택의 상황에서 가보지 못했던 것들!

찰나의 상황에서 받아들이지 못했던 것들!

로버트 프루스트의 가보지 않은 길처럼! 

그것을 이제 다시 해보기는 쉽지 않다. 여건이 안 되는 것도 있고 이미 시기적으로 늦은 것들도 있다. 하지만 우리가 들어본 50플러스 세대의 버킷리스트처럼 작고 소소하지만 이룰 수 있는 것들은 많이 있다. 

 

버킷리스트의 달성은 성취감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자존감을 크게 얻는 데 있다. 이런저런 주변 여건으로 인해서 해보고 싶었지만 못 해본 것들, 쓸데없는 편견이나 아집으로 실제 마음과는 다르게 행동으로 옮기지 못했던 것들을 이제 실천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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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버킷리스트 사진 작가. ⓒ 50+시민기자단 안종익 기자
 

 

자신의 수첩에 적힌 버킷리스트를 하나하나 지워 보자. 60세 중반 이후가 삶에서 가장 행복하였다는 김형석 교수의 말처럼 가장 자유로운 세대인 액티브한 중장년의 꿈을, 하나하나 거침없이 도전해 보자. 

 

“아직 나는 버킷리스트가 없어요” 하는 분은 지금 노트 하나 끄집어내어 자신이 하고 싶은 것들을 아주 작은 것에서부터 적어 보자.

하나하나 해보는 거지 뭐, 못다 한 꿈을 이뤄 보는 거지 뭐, 멋지게 한번 해보지 뭐, 그게 50플러스 세대의 특권이지 뭐. 

무엇보다 우린 자유롭잖아! 우리가 못 해본 것들이 너무 많잖아!

 

 

50+시민기자단 안종익 기자 (try37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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