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영화 ‘헤어질 결심(Decision To Leave)’의 박찬욱 감독이 칸 영화제(Festival de Cannes)에서 감독상을 수상하며 한류의 명성을 다시 한번 입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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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칸의 전시장 외관, 2016, 겨울. ⓒ 50+시민기자단 황용필 기자

 

2016년 겨울, 필자는 모나코를 거쳐 니스를 지나 칸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거리는 온통 영화인들의 흔적과 유산으로 하나의 거대한 세트장이었다.

 

칸 영화제는 베를린 영화제, 베니스 영화제와 함께 세계 3대 영화제 중 하나로 그 명성이 높다. 감독상을 수상한 작품 ‘헤어질 결심’은 제목부터가 의미심장하다. 사람들 사이에서 특히, 남녀 관계의 만남은 대부분 ‘관심’에서 시작되어 ‘열정’으로 불을 피우다가 ‘사랑’ 아니면 ‘이별’의 공식이다. 그래서 애증의 코스가 다반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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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헤어질 결심’ 영화 포스터. ⓒ 네이버 영화

 

하지만 ‘헤어질 결심(Decision To Leave)’은 남녀의 통속적 만남이 아닌, 그 모멘트는 산에서 벌어진 한 남자의 변사 사건이다. 수사를 맡게 된 형사 ‘해준’(박해일 분)과 사망한 남자의 아내 ‘서래’(탕웨이 분) 사이에서 펼쳐지는 팽팽한 긴장과 의심의 한편으로 서로에게 빤한 호기심과 의외의 섬세함 속에서 켜켜이 쌓이는 남녀의 감장을 지켜보노라면 관객은 의아해한다. 서스펜스와 멜로의 경계를!

 

영화 평론가가 아닌 50+시민기자단의 일원으로 내 목소리는 다른 곳에 있다. 영화의 영어 제목을 ‘Decision To Leave’로 썼는데 ‘Leave’라는 동사를 일이나 삶 앞에서는 ‘떠날’이 더 적절할 듯한데도 ‘헤어질’로 번역한 데는 또 다른 스포일러(spoiler)가 도사린다.

 

‘헤어짐’이 수평적, 반복적이라면 ‘떠남’은 수직적, 일회성이다.

“님은 갔습니다”라고 절규하는 시인에게 ‘님’은 헤어짐이 아니라 야속하게도 떠남이다. 50+들에게 전반의 삶을 지휘하던 직장은 애증의 ‘님’이었다.

 

인생의 후반전을 준비하는 하프타임에 가장 먼저 할 것은 바로 ‘헤어질 결심’이다.

‘과거’와의 헤어짐, ‘대우’와의 헤어짐, 세상의 ‘평판’들과 헤어질 결심을 해야 한다. 직장을 은퇴하면 가장 큰 체감은 ‘영향력’이다. 그것은 마치 “우리네 인생 반 고비에 올바른 길을 잃고서, 나는 어두운 숲속에 있었다”라고 독백하는 단테 알리기에리의 심정과 같다.

 

하지만 인생 50+의 시기는 반등과 모험의 시기이기도 하다.

브루킹스 연구소 수석연구원이자 작가인 조너선 라우시(Jonathan Rauch)는 그의 저서 ‘인생은 왜 50부터 반등하는가(The Happiness Curve)’에서 인생의 행복과 만족도가 중년 이후 U자 형태로 반등하는 데 주목했다. 그는 긍정심리학자들이 내세우는 행복 공식, H=S+C+V(H:지속적인 행복 수준, S:이미 설정된 행복 범위, C:삶의 방향, V:자의로 다스릴 수 있는 요소)에다 결정적으로 빠진 항목 T, 시간을 추가하여 H=S+C+V+T로 제시한다.

 

여태껏 우리는 시간이라는 괴물에 늘 쫓겨 다녔다. 출근 시간, 마감 시간, 등교 시간, 회의 시간 등등은 삶을 규정하는 우월적 존재, 그래서 늘 Dead-line이자 D-Day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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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항구의 배. ⓒ 50+시민기자단 황용필 기자

 

인생은 총량 법칙에 따라 움직이는 공평한 게임이다. 손목에 번뜩이는 ‘시계’는 갖고 있지 않지만, 마음의 여유와 느림의 미학이 가져다주는 ‘시간’이라는 보물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항구를 떠나가는 배가 다시 포구로 돌아오듯 인생의 길목에서 나는 가슴 아픈 ‘Leave’라는 동사 대신 ‘Return’을 쓰고 싶다. 이 땅에 여린 생명으로 왔지만 누구나 늙은 주검이 되어 돌아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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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6년 넘게 근무한 직장과의 헤어질 결심, 2018, 겨울. ⓒ 50+시민기자단 황용필 기자

 

그래서 헤어질 결심과 아울러 이제는 ‘돌아갈 준비(Preparation to Return)’를 해야 한다. 체크인하고서 재미있게 휴가를 보내다 체크아웃할 즈음에는 머물렀던 곳을 정리하는 것처럼 더 낫게, 더 낮게, 더 낱개로 돌아가야 한다.

 

‘검이불루 화이불치(儉而不陋 華而不侈)!’ 

검소하되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되 사치스럽지 않은 초월(Gerotranscendence)적인 삶, 나는 오늘도 지우개가 되어 ‘헤어질 결심(Decision To Leave)’을 한다.

 

 

50+시민기자단 황용필 기자 (yphwang@skku.ed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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