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사이클링 목공 활동가 입문 과정’을 마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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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부캠퍼스 지하 1층 목공실에서 ‘업사이클링 목공 활동가 입문 과정’이 진행되었습니다. © 내내로 정선주 대표

 

서울시50플러스 북부캠퍼스의 ‘업사이클링 목공 활동가 입문 과정’이 긴 여정(旅程)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지난 3월 18일 강좌를 열고 5월 20일 강좌를 닫기까지, 열 번의 공식적인 강좌는 모두 끝났으나, 이 강좌에 참여한 사람들의 여정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입니다.

 

오늘은 6월 17일 금요일입니다. 하늘이 깨끗하게 맑고, 나뭇잎도 잔잔하게 초록초록 흔들려서 들로 산으로 놀러 가기 딱 좋을 듯싶은 오후에 북부캠퍼스 지하 1층에 있는 공방에 갔습니다. 그곳에서 ‘업사이클링 목공 활동가 입문 과정’ 수강생들과 정선주 강사를 만났습니다. 그들은 이렇게 좋은 날인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나무를 켜고, 썰고, 자르고, 다듬고, 붙이고, 색칠하느라 바빴습니다.

 

지금부터 그들의 이야기를 들려드리려 합니다. 열심히 가구를 만들어서 그 가구가 꼭 필요한 곳에 선뜻 기증한 수강생들과 강사들의 뜻깊은 여정과 그들이 만들어낸 ‘좋은 쓰임’에 관한 다큐멘터리(Documentary)입니다. 아! 그들의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시 한 편을 소개해드리겠습니다. 부디 들숨과 날숨을 가지런히 하시고, 약간 낮은 목소리로 천천히, 더 천천히 그러나 또박또박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장석주 시인의 ‘대추 한 알’이란 시입니다.

 

저게 저절로 붉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태풍 몇 개

저 안에 천둥 몇 개

저 안에 벼락 몇 개

저 안에 번개 몇 개가 들어 있어서

붉게 익히는 것일 게다


저게 혼자서 둥글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무서리 내리는 몇 밤

저 안에 땡볕 두어 달

저 안에 초승달 몇 날이 들어서서

둥글게 만드는 것일 게다


대추야

너는 세상과 통했구나

이 세상에 딱 하나밖에 없는 맞춤 가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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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봉지역아동센터에 선물한 ‘수납장 겸 책장’입니다. 지극한 ‘정성’과 오랜 시간의 ‘노력’과 긴밀한 ‘협력’으로 이 가구를 만들었습니다. © 내내로 정선주 대표

 

얼마 전까지 공방의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운 가구가 있었습니다. 수납장을 겸한 책장 세 개를 나란히 이어붙여 제법 우람한데다 색도 예쁘게 칠해져서 자꾸만 눈길이 쏠렸던 가구입니다. 위 사진 속의 가구가 바로 그 가구입니다. 이 가구는 지금 공방에 없습니다. 지난 5월 26일 공방을 떠나서 도봉지역아동센터에 자리 잡았습니다. 그리고 온갖 물건을 수납하고 갖가지 책을 가지런히 꽂는 ‘수납장 겸 책장’으로 ‘열일’하고 있습니다. 

 

공방에서 이 가구를 처음 본 순간 분명히 알아챘습니다. 저 가구가 저절로 만들어졌을 리는 없다는 것! 대추 한 알이 붉어지려면 태풍과 천둥과 벼락과 번개가 각각 몇 개씩이나 있어야 하듯이, 저 ‘수납장 겸 책장’이 저렇게 근사하게 만들어지기까지는 수강생과 강사를 비롯한 여러 분야의 여러 사람이 아끼지 않고 쏟아 넣은 지극한 ‘정성’과 오랜 시간의 ‘노력’과 긴밀한 ‘협력’이 있었다는 것을요. 

 

어렵지 않다고요? 천만의 말씀, 만만의 콩떡입니다

이제부터는 편의상 ‘업사이클링 목공 활동가 입문 과정’을 대신하여 ‘프로젝트’라고 부르겠습니다. ‘프로젝트’라는 말이 뭔가 좀 그럴듯하기도 하거니와 같은 목표를 가진 사람들이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과정(過程, 일의 진행) 또는 결과를 설명하는 데 적합할 듯해서입니다. 아울러 수강생은 ‘목공 활동가’로, 강사는 ‘작가’로 부르겠습니다. 이유는 같습니다. 

 

이번 프로젝트를 간단히 표현하면 ‘폐목재나 폐가구를 재료로 가구를 만들어 필요한 곳에 나눕니다’입니다. 언뜻 생각하면 그리 어려울 게 없어 보이는 프로젝트입니다. 그러나 ‘천만의 말씀, 만만의 콩떡’입니다. 프로젝트의 속내를 살짝만 들여다봐도 챙겨야 할 일들이 엄청나게 많다는 걸 단박에 알 수 있습니다. 누가, 어떤 가구를, 어떻게 만들어서, 어디에 전달할지를 검토하고, 결정하고, 실행하는 데에는 여러 측면에서 심사숙고가 필요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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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봉구 대형폐기물 파쇄장에서 일하는 김창식 반장이 챙겨준 폐목재들입니다. © 김창식 반장, 내내로 정선주 대표

 

본격적으로 작업에 들어가니 난감한 일이 다반사였습니다. 특히, 폐목재와 폐가구를 재료로 써야 해서 적잖이 애를 먹었습니다. 규격이 일정하고 잘 다듬어진 목재를 사다가 쓰면 수월했을 테지만, 명색(名色)이 ‘업사이클링’이니 그럴 수 없었습니다.

직접 가구를 만들어야 하는 ‘누가’의 대부분이 지금껏 가구를 제대로 만들어본 적이 없다는 점도 걱정스러웠습니다. 가구를 만들기에 앞서 공방에서 반드시 지켜야 할 안전 수칙과 테이블 쏘, 원형 각도기, 원형 샌더기, 드릴프레소, 에어타카 등 작업에 필요한 공구 사용법을 가르치고 또 가르쳐야 했으니 말입니다. 

 

그랬는데도 이번 프로젝트는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었습니다. 계획한 대로 일정을 지켰고, 몇 번의 시행착오를 겪기도 했으나 도면과 똑같은 모양으로 만들었고, 필요한 때에 맞추어 옮겨주었습니다. 

 

이번 프로젝트의 성공을 축하하고 싶다면, 부디 이 사람들을 기억해주시기 바랍니다. 이번 프로젝트에는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진행한, 폐목재 또는 폐가구를 제공한, 그것으로 가구를 만든, 그 가구를 받아서 사용하는 여러 분야의 여러 사람이 등장하는데, 이들 모두는 주연과 조연을 구별할 수 없을 만큼 각자의 몫을 톡톡히 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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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선주 작가. 이번 프로젝트의 기획과 진행을 총괄하였습니다. © 50+시민기자단 이경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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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창식 반장이 보낸 문자 메시지. 김 반장은 이번 프로젝트를 열렬히 응원했습니다. © 내내로 정선주 대표

 

● 정선주, ‘내내로’ 대표 겸 작가 겸 강사

‘내내로(NNR, 엔엔알)’라는 비영리단체가 있습니다. 내내로는 작년에 북부캠퍼스에서 판화, 목공예, 도자와 관련한 강좌를 열었습니다. 그것이 인연이 되어 북부캠퍼스와 함께 이번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진행했습니다. 내내로의 대표인 정선주 작가와 엄태신 작가, 정선욱 작가가 ‘작가님’ 또는 ‘강사님’으로 불리면서 활동가들과 더불어 애를 참 많이 썼습니다.

내내로는 ‘내내’, ‘항상’, ‘늘’이라는 의미를 가진 함경도 방언입니다. 내내, 항상, 늘 작업하는 시각 예술 작가들의 구성체라는 의미를 담아 단체 이름을 그렇게 지었답니다. 회화, 영상, 일러스트, 설치, 디자인, 도자 등의 각 분야에서 활동하는 다양한 작가들과 이에 참여하는 커뮤니티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 김창식, 파쇄장 반장 겸 폐목재 전문가

이번 프로젝트에서 가구 재료로 사용한 폐목재와 폐가구는 도봉구 자원순환과에서 흔쾌히 제공해 주었고, 가장 큰 도움을 준 사람은 도봉구 대형폐기물 파쇄장에서 일하는 김창식 반장입니다. 김 반장은 이번 프로젝트에 열렬한 응원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물론 폐목재와 폐가구도 아끼지 않았습니다.

프로젝트 담당자인 북부캠퍼스 백의연 주임은 김 반장을 이렇게 증언했습니다. “쓸만한 목재가 나오면 김 반장님이 연락을 주셨어요. 그러면 내내로 분들과 활동가 몇 분이 얼른 달려가서 목재를 차에 실어 가져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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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 프로젝트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 목공 활동가들이 배우고, 토론하고, 작업하는 장면을 모았습니다. © 내내로 정선주 대표

 

● 목공 활동가, 아무튼 멋진 분들!

구별할 수 없노라 했지만, 굳이 주연과 조연을 구별해야 한다면, 주연의 몫은 활동가들이 차지하는 게 맞을 듯합니다. 그들은 이번 프로젝트의 전체 과정에 참여하면서 가장 중요한 역할인 ‘가구 만들기’를 담당했기 때문입니다. 

활동가들에 관한 대부분의 이야기는 정선주 작가를 인터뷰하는 과정에서 알게 되었습니다. 정 작가는 본인이 인터뷰이(Interviewee)라는 사실을 자주 잊어버리고 인터뷰하는 ‘내내’, ‘우리 쓰앵님들∼’인 활동가들을 칭찬하고, 활동가들에게 감사하고, 활동가들에게 받은 감동을 설명하느라 바빴습니다. 

 

활동가들을 말하면서 정 작가가 가장 공들인 대목은 ‘나이가 품고 있는 삶의 지혜 혹은 태도에 관한 고찰’이었습니다. 정 작가에게 들은 말을 요약하여 옮겨봅니다.


“작업을 하다 보면 가끔 엉뚱한 일이 생깁니다. 작업 공정이 간혹 뒤죽박죽될 수도 있고, 여러 사람이 나누어 작업한 것을 한데 모아 조립하는데 제대로 맞지 않아서 애를 먹기도 하지요. 그럴 때 드러나는 활동가분들의 태도랄까 마음 씀씀이랄까…, 그런 걸 보면서 정말 많은 것을 배우게 됩니다. 

그분들은 작업하는 도중에 맞닥트린 실수 또는 실패에 매우 관용(寬容, 너그럽게 용서하고 받아들임)적이었습니다. 서로 이해하면서 실수와 실패를 오히려 즐기는 것 같았어요. 저는 그분들을 보면서 나이가 품고 있는 ‘삶의 지혜’가 저런 게 아닐까? 나이가 들면 저런 태도를 가져야겠구나! 하고 생각했어요. 아무튼 멋진 분들이세요. (그런데요, 제가 그 멋진 분들의 목공 선생님인 건 아시지요? 호호호)”


정 작가는 또 활동가들이 담당했던 샌딩 작업의 고단함을 이야기하면서 땀과 노동과 재활용이 어우러져 만들어내는 ‘창조의 가치’를 강조했습니다. 무슨 말인지 대강 짐작할 터이니 자세한 내용은 생략하겠습니다. 아무튼 좋은 말씀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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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월 26일 도봉지역아동센터에 가구를 전달하고 기념 촬영 한 컷. © 내내로 정선주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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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멋진 가구를 선물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도봉지역아동센터 박규미 생활복지사

 

● 어린이, 행복 유발자 겸 전파자

이번 프로젝트의 특징은 가구를 만들되 내가 만들고 싶거나 사용할 가구를 만드는 게 아니라는 점입니다. 이번 프로젝트에서 만드는 가구는 사용할 사람의 ‘요구’와 사용할 곳의 ‘환경’에 맞추는 게 포인트이기 때문입니다.

말하자면 이 세상에 딱 하나밖에 없는 맞춤 가구를 만드는 것이지요. 그러자니 신경 써야 할 일이 많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실제로 정선주 작가를 비롯한 몇몇 활동가들은 도봉지역아동센터를 여러 차례 방문해 가구가 놓일 곳과 가구를 쓸 사람이 원하는 바를 세심하게 살펴서 한 땀 한 땀 수를 놓듯이 가구를 만들었습니다.

그래서였을 겁니다. 수납장 겸 책장이 도봉지역아동센터로 옮겨간 날, 이 가구를 처음 본 한 어린이가 무척이나 기뻐하며 귀여운 몸짓으로 감사 인사를 전했습니다. 그리고 이 어린이의 기쁨은 정성과 노력과 협력을 이 가구에 보탠 모든 사람에게 더할 나위 없는 ‘행복’이 되었습니다. 이 어린이는 이런 공로로 이번 프로젝트에서 한방에 주연급으로 떴습니다.

 

● 백의연, 북부캠퍼스 주임 겸 조율 전문가

이번 프로젝트에서 여러 분야의 여러 사람을 조율하는 일을 맡았습니다. 도봉구 교육지원과(안성우 주무관), 도봉지역아동센터(정지영 센터장), 도봉구 자원순환과(도성준 주무관), 대형폐기물 파쇄장(김창식 반장)이 주요 거래처(?)였는데, 처음부터 끝까지 적절한 친절과 배려로 일관하며, 내내로 작가들과 함께 프로젝트를 이끌었습니다. 

프로젝트 마무리 소감을 물었더니 첫마디가 “힘들었지만~.”이라서 패스! 자세히 듣지 않아도 무슨 말을 할지 알 것 같아 그랬는데, 기어이 소감을 말하고 싶다고 해서 들어보았습니다. 무엇보다 ‘보람’이 무척 컸답니다. 네이버 어학 사전에 따르면 ‘어떤 일을 한 뒤에 얻어지는 좋은 결과나 만족감. 또는 자랑스러움이나 자부심을 갖게 해주는 일의 가치’를 보람이라 하는데, 백의연 주임에게는 이번 프로젝트가 특히 그랬나 봅니다. 열심히 잘했나 봅니다.

 

에필로그

수납장 겸 책장을 도봉지역아동센터에 기증하고 나서, 활동가들은 곧바로 쓰레기통을 덮는 콘솔 1개와 아일랜드 식탁 1개를 만드느라 바빠졌습니다. 이 가구들도 머지않아 도봉지역아동센터에서 볼 수 있을 겁니다. 

수납장을 겸한 책장 이야기는 ‘대추 한 알’로 시작했는데, 콘솔과 아일랜드 식탁에는 어떤 시를 붙여 볼까요? 서정주 시인의 ‘국화 옆에서’는 어떨까요?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고, 간밤에는 무서리까지 저리 내렸듯이, ‘콘솔과 아일랜드 식탁을 만들기 위해 활동가들은 그렇게 정성을 기울이고, 이 좋은 계절에도 저리도 엄청나게 애쓰나보다~’라고요. 많이 억지스러울까요?

 

 

50+시민기자단 이경걸 기자 (khwapple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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