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일상에서 "'아' 다르고, '어' 다르다"는 말을 자주 인용한다. 말을 연결하거나 다음 말을 강조하기 위한 단순한 수단으로 사용하곤 한다. 그러나 이 말의 의미를 곱씹어 보면 그렇게 단순한 의미만 있는 것이 아니다. 말하는 사람이 같더라도 상대에 따라, 장소와 시점에 따라 다르게 표현해야 한다는 것을 함축하고 있다. 

 

우리가 제일 잘 안다고 생각하는 부부지간, 부자지간이라도 항상 사용해왔던 말이 어느 날 색다르게 느껴지는 경우가 있다. 더구나 이런 관계가 아닌 제 3자에게 하는 말이라면 우리는 더욱 목적, 시간, 장소에 따라 그 표현이 적합한지를 고민하면서 말을 뱉어야 한다. 신중하게 고민 끝에 나온 말이라야 상대방에게 설득력이 있다. 그러고 보면 말하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닌 것 같다.


그럼 어떻게 하면 어렵지 않게, 편안한 마음으로 말할 수 있을까? 그것의 해답은 대화의 주체를 누구로 설정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본다. 즉 나를 중심으로 말할 것이 아니라, 상대방 중심으로 말하면 된다는 의미다. 듣는 상대방의 상황에 맞게 나의 생각이나 느낌을 말하면 무리가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상대방의 상황은 어떻게 알고 말할 수 있을까?

 

이것은 상대방의 마음을 꿰뚫어본다거나 상황을 유추한다기보다 상대방의 입장에 서서 말하려고 노력한다는 뜻이다. 즉 역지사지(易地思之)하자는 이야기다. 상대방 입장에서 가능한 모든 경우를 종합해 보고 이야기를 하면 된다. 그러나 아무리 경우의 수를 종합한다 할지라도 불분명하거나 난해한 말을 한다면 역지사지의 의미가 퇴색할 수밖에 없다.

 

 

말을 잘하는 것도 특별한 능력이다. 이러한 능력은 하루아침에 습득될 수 없다. 많은 경험과 지식이 쌓이고, 이것이 자신만의 것으로 잘 소화되어야만 다양하고 설득력 있는 말로 표출될 것이기 때문이다. 상대방이 듣고 싶어 하는 말을 제때에 할 수 있다면, 그보다 더 좋을 수는 없다. 같은 말을 하더라도 상대의 귀를 기울이게 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에, 상대의 미간을 찌푸리게 말하는 사람이 있다.

 

특히 직장이나 조직의 일원이 되어 사회생활을 하게 되면 말을 가려서 해야 한다는 것을 몸소 느낄 것이다. 아무리 유익해 보이는 제안을 한다고 하더라도 조직이 원하는 방향에 맞지 않으면, 그 이야기는 환영받지 못한다. 즐거운 술자리에서도 상황에 맞지 않는 우울한 이야기를 하면 분위기는 갑자기 썰렁해지기 마련이다. 자신의 기분에 따라 생각나는 대로  내뱉어버리면 외면당하기 딱 알맞은 것이다. 거기에 자기의 주장만을 계속 강조하게 되면 상대방의 의견을 무시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결국 이러한 상황은 자신의 활동범위를 스스로 좁혀버리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인기가 많은 강사나 대중연설을 자주하는 정치인들의 말을 들어보면, 듣는 사람 위주로 말을 해서 청중들을 끌어당긴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게다가 이들은 청중들이 공감할 수 있는 예시를 제시하면서 집중의 끈을 이어간다. 때로는 청중들의 반응에 맞장구를 치면서 듣는 사람과 호흡을 같이하고 있음을 보여주기도 한다. 그래야 말하고자 하는 핵심 내용을 확실히 전달하고 오래 기억할 수 있게 만들기 때문이다.

 

말이란 사람의 생각이나 느낌을 표현하고 전달하는 행위로 의사소통의 가장 기본적인 수단이다. 대부분의 사람은 상대방의 많은 말 중에서 자신이 듣고 싶어 하는 말에만 귀를 연다고 한다. 많은 내 말 중에서 상대방의 귀에 들어가는 말만이 상대방에게 크고 작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말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가볍게 이야기한다 하더라도 듣는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그 말이 긍정적으로, 때로는 부정적으로 들릴 수 있다. 말을 할 때는 듣는 사람에 따라 그 표현을 적절하게 조절해야 한다. 그래야 결과적으로 말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이 공감할 수 있고, 진정한 소통이 이뤄지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