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 시어머니(78)를 모시는 박지영 씨(45)를 알고 있다. 아침에 중학생인 아들 두 명과 남편을 출근시키고 어머니를 챙긴다. 밤에 안 주무시다가 새벽녘에 잠이 드시는 시어머니를 깨워 아침 드리고 옷 입혀 준비시켜, 10분 거리의 주간데이케어센터에 맡기고 허겁지겁 일하러 가는 것이 매일 아침 풍경이다. 이웃 언니의 반찬가게에서 일손을 돕다가 저녁때가 되면 시어머니를 다시 모시고 오는 생활을 3년째 하고 있다. 요즘 들어 눈 밑의 다크서클이 짙어져서 “어떻게 지내냐”고 물었더니 “이러다간 어머니보다 내가 먼저 죽을 것 같아요.”라며 휑한 얼굴로 말했다. 지난밤에도 무뚝뚝한 경상도 시어머니가 자정 무렵부터 한 시간마다 “이리 오너라~, 배고프다~, 화장실 갈란다~, 내 말 안 들리냐~”라며 식구들을 깨우고 한바탕 난리를 치른 모양이다. 

 

착한 막내며느리 지영 씨는 아이들 치다꺼리하고 치매 시어머니를 수발하면서도 활기차게 생활하고 싶은데 말처럼 쉽지 않다고 말했다. 친구들은 “막내 며느리가 왜 시어머니를 모셔? 오지랖도 넓다. 너 왜 고생을 사서 하니? 바보처럼.”하고 말할 때마다 ‘혼자 사시던 시어머니가 치매 판정받자마자 큰아주버님 댁 식구들이 모두 캐나다로 떠났다’고 말하면 목에 핏대를 세우며 한마디씩 보탤 것이 뻔해서 목구멍까지 나오려는 말을 애써 누르며 “그러게~”하고 침 만 꿀꺽 삼키고는 얼른 자리를 떴다.
 
우리 집에서도 한바탕 소동이 벌어졌다. 지난달 어머니에 이어 이번 달에는 아버지마저 치매 판정을 받으셨다. 현재 두 분은 지방의 중소도시에 살고 계신다. 자식들과 함께 살 수 없는 상황이라서 매일 요양 보호사께서 방문하여 도와주신다. 아버지는 잇몸이 줄어들어 변형이 생겨서 틀니가 맞지 않게 되면서 음식 섭취가 불편해 지셨다. 아버지를 위해 죽도 끊여 주시고, 고관절 수술을 하셔서 다리가 불편한 어머니를 위해 목욕도 도와주신다. 택배도 받아주시고 식사도 챙겨주신다. 우리는 우리를 대신해서 부모님을 도와주시는 요양보호사 ‘이 여사님’과 자주 연락하며 부모님을 살펴 드리고 있다.

 

 

집안에 아픈 사람이 있으면 우선순위는 환자가 된다. 밤낮으로 정성껏 환자를 보살피다 보면 자기 자신은 물론 식구들도 뒷전이 되어 몸도 마음도 지치게 된다. 가족의 의무이든, 직업이든 환자를 돌보며 건강하게 시간을 보내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치매를 비롯해 만성병 환자를 돌보는 가족 간병인들의 우울과 스트레스 지수는 일반인과 비해 높다고 한다. 모든 의료 정책과 의료 서비스의 주 대상은 환자이다. 그들의 곁에서 묵묵히 하루하루를 버텨내고 있는 돌봄 가족들도 병 들어가고 있다. 그들은 누가 돌볼 것인가?

 

나는 2006년 미국 오리곤주에 있는 ‘아시안 보건복지센터(AHSC)’에 근무하면서 ‘PTC’를 알게 되었다. ‘PTC(Powerful Tools for Caregivers: 간병인의 강력한 도구)’는 환자를 돌보는 사람들에게 활력을 주기 위한 강력한 자기 돌봄 교육프로그램이다. 1998년에 미국에서 스텐포드 대학의 케이티 로릭 박사와 그의 연구원들이 만든 ‘만성병 환자의 자기관리 프로그램’에 기초를 두고 있다. 3년의 파일럿 테스팅을 거친 후에 우수한 평가를 받은 PTC 프로그램은 현재 미국의 41개 주와 캐나다에서 시행되고 있다. 미국에서도 환자를 돌보다가 보호자가 먼저 사망하는 경우가 종종 있어서 환자가 중요한 만큼 보호자들의 건강도 중요하다고 여기고 있다.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병원, 교회, 데이케어 센터 등 돌보는 분들의 자기관리에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

 


 

 
한국으로 귀국 후 2017년도에 장애인 부모들과, 암환자 가족, 치매가족, 독거노인 봉사자들에게 PTC 시범 수업을 진행했는데 만족도가 높았다. 참가자의 자기의 스트레스 증세와 원인을 직면하게 하고 의사소통의 기술, 실행계획을 통한 자기 돌봄은 그들의 자기 효용과 자신감을 높이는데 효과적이었다. 간병을 하는 분이 자기 돌봄을 할 때, 돌보는 분에게도 유익할 뿐 만 아니라 환자에게도 유익하며 간병의 질과 가족의 삶의 질도 향상됨을 알 수 있었다.

 

이제 100세 시대가 되었다. 의학의 발달로 인해 건강을 잘 관리하면 100세까지도 살 수 있다는 의미이다. 평균 수명도 늘어났고 핵가족이 되면서 두 부부만 사는 老-老 커플들이 늘어났다. 그러나 문제는 그들의 자녀도 간병을 하기엔 버거운 나이가 되어 간다는 것이다. 이제 간병은 남의 일이 아니다. 캐나다로 서둘러 떠난 지영 씨 시아주버니의 마음도 이해가 된다. 아마 아내의 의견이 컸을 것이다. 시어머니를 돌보는 지영 씨나 우리 부모님을 도와주시는 요양보호사 이 여사님, 그리고 우리 형제들 모두 끝이 보이지 않는 간병 전쟁에 지치지 않고 활기차게 지냈으면 좋겠다. 나 또한 일반 가족 간병인, 돌봄 전문가(요양보호사, 건강코디네이터)를 대상으로 ‘슬기로운 자기 돌봄’ 강의를 도심권50플러스센터에서 계속 이어가며, 힘들고 지친 그들의 손을 잡아주고 힘을 보태주고 싶다. 이제는 돌보는 사람을 돌보아야 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