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란 것은 참 이상하다. 모두가 주연인데 또 모두가 조연이다. 그래서 어느 순간은 주인공의 삶을, 때론 지나가는 행인과 같은 삶을 살 때도 있다. 살다보면 인생의 모든 순간이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렇다고 실망할 필요는 없다. 때론 조연의 삶이 더 좋은 순간도 찾아온다.
글. 김효정   사진. 문정일

익산 교도소에서 만나는 <슬기로운 감빵생활>

감옥을 배경으로 한 드라마가 방영된다고 했을 때, 비리와 음모에 휩싸인 그런 흔한 서스펜스물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첫 화를 보고 나서는 묘하게 휴머니즘이 그려졌고 신선한 스토리에 빨려들었다. <슬기로운 감빵생활>은 감옥에 수감된 범죄자 개개인의 삶을 들여다보고 생각하고, 이해하고, 공감을 이끌어내는 구조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원래 우리는 타인의 인생에는 별 관심이 없으면서 기쁘거나 슬픈 것이 과도하게 쓰인 극적인 이야기에 흥미를 느낀다.
드라마의 스토리는 야구계에서 스타인 김제혁(박해수 분)이 갑자기 범죄자가 되어 교도소에 입소하게 되는데 그 안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이야기를 블랙 코미디 형식으로 그렸다. 김제혁은 위암 진단과 부상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노력해 프로야구 선수로 성공을 거두고 메이저리그 진출까지 코앞에 두게 된다. 그런데 여동생인 김제희(임화영 분)를 성폭행하려는 강간미수범과의 격투 끝에 사고로 범인이 크게 다치게 된다. 정당방위가 인정돼 집행유예로 끝날 거라 생각했지만 범인이 죽게 되어 교도소에 수감되는 상황에 처한다.
제혁은 교도소에서 교도관으로 근무하던 준호(정경호 분)와 다시 만나게 되고, 야구선수로의 재기를 꿈꾸며 도움을 받지만 수감자에게 어깨를 공격당해 부상을 입으면서 왼손으로 공을 던질 수 없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도소 안에서의 고된 훈련과 노력 끝에 오른손으로 공을 던질 수 있게 되고 출소 후에 그는 야구선수로 복귀하게 된다.

 

드라마의 여운이 그대로 남은 ‘익산 교도소 세트장’

 

 


교도소 세트장에 와 보긴 처음이다. 누구라도 교도소는 갈 일이 없어야 할, 별로 가보고 싶지 않은 공간이다. 그래서인지 딱딱하고, 무겁고 그저 멀게만 느껴지던 교도소를 방문하는데 별다른 기대감은 없었다. 하지만 막상 익산 교도소 세트장에 도착하고 보니, TV에서 자주 봐서인지 친근함이 느껴졌다. 시멘트벽으로 둘러싸인 거대한 교도소. 드라마 촬영을 위해 지어진 공간이라지만 실제 교도소 같은 느낌을 받았다.





교도소 입구는 교도소 정문이 아닌, 오른쪽 건물에 마련되어 있었다. 출입에 관련된 명부작성이나 QR코드 인증을 끝내면 작은 법정 공간이 보인다. 그곳을 거쳐 교도소 건물로 향하면 버스 한 대와 수갑이 걸린 철망이 눈에 보인다. ‘고백버스’와 ‘고백팔찌’라는 명칭을 가진 이곳의 즐길거리였다. 고백버스에 오르면 고백팔찌를 철망에 걸 재료를 구입할 수 있는데, 팔찌에는 남산의 사랑의 자물쇠처럼 연인들의 사랑 이야기가 많았다. 하지만 지금은 코로나19로 잠시 운영을 중단 한듯했다. 이제 본격적으로 교정 안으로 들어갔다. 넓은 운동장에 푸른 잔디가 깔려 있어 확트인 느낌이 들었다. 이곳에서 죄수들은 편안한 시간을 보낸다.





건물 안쪽으로는 철문으로 굳게 닫힌 감방과 복도를 마주할 수 있다. 드라마 속 장면이 그대로 회상된다. 이곳은 <슬기로운 감빵생활> 외에도 <아이리스>, <7번방의 선물>, <홀리데이> 등 200편이 넘는 드라마와 영화의 촬영지로 활용되었다.



문화재청에 등록된 ‘익산 솜리 근대역사 문화 공간’

인화동 남부시장 인근에는 10개 정도의 건물이 개별 국가 등록문화재로 등록이 되어 있다. 익산에 방문했다면 꼭 근대역사를 느낄 수 있는 이곳을 찾길 바란다. 광복 이후로 주단과 바느질거리 등이 성황을 이루던 공간이며, 지금은 당시 건축물이 그대로 살아 있는 공간이다.
등록문화재 제763-1호인 구 대교농장 사택은 일제강점기에 동이리역을 거점으로 한 농장으로 일본인이 경영했다. 세월이 흐르는 동안 다양한 용도로 사용되었지만, 외부 형태와 벽체 마감 상태가 좋은 건물이다.
등록문화재 제763-2호는 구 신신백화점 건물로 1960년대 철근콘크리트로 지은 3층 구조물이다. 지금은 다방으로 사용되고 있는 독특한 2층 장식을 보면 당시 상업건축의 특징과 형식을 짐작해 볼 수 있다.




이밖에도 근대상가주택의 다양한 모습을 볼 수 있는 등록문화재가 걷는 걸음을 따라 골목에 고스란히 남겨 있었다. 솜리 근대역사 문화 공간을 찾았다면 천천히 주변 건물들을 둘러보면서 익산에 남겨진 근대화의 남겨진 흔적을 그대로 만나보고, 시간이 남는다면 익산 근대역사관까지 둘러보는 것을 추천한다.



백제의 숨결을 가득 담은 ‘미륵사지 석탑’


 

분명 미륵사지 석탑을 보러 왔는데, 확트인 공원이 두 눈에 펼쳐진다. 무료로 개방해 놨기 때문인지 산책을 즐기러 온 가족과 연인들의 모습이 눈에 띄었다. 아름다운 나무와 잘 조성된 잔디밭 때문인지 가만히 바라만 보고 있어도 눈이 정화되는 느낌이 들었다. 백제 역사를 담은 이곳은 2015년 미륵사지와 왕궁리 유적으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공간이다. 동아시아 최대 규모의 사역이며 백제시대 사찰 건물의 배치를 살피는 중요한 역사 유적으로 손꼽힌다.

미륵사지 석탑은 익산의 미륵사 터에 있는 백제 무왕 때의 화강암 석탑으로 우리나라 석탑 중 가장 크고 오래되었다. 국보 제11호로 지정이 되어 있으며, 2009년 1월에 보수정비를 하는 작업 중에 1층 심주석에서 사리장엄구가 발견되었고, 2015년 12월 3일에 재봉인 되었다.

현재 석탑 전면부는 원형이 잘 보존된 상태처럼 보이지만 후면부분은 일제 강점기 석탑의 붕괴를 막기 위해 콘크리트를 발라 두었다. 1998년에 안전진단을 하다 붕괴 위험이 있다는 진단이 있어 불가피하게 수리를 하게 되었다. 2017년까지 총 19년에 거쳐 6층까지 해체하고 수리를 한 뒤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미륵사지 석탑의 맞은편으로는 동원 구층석탑이 늠름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다. 동원 구층석탑은 1974년 동원의 탑 터를 발굴, 기단의 규모와 형태, 그리고 출토 유물을 조사한 결과, 국보 제11호인 미륵사지 석탑과 같은 백제시대의 석탑이 있음을 밝혔다. 동원의 탑에서 나온 기단석과 지붕돌인 옥개석, 탑 꼭대기 부분 상륜부를 받치는 노반석을 이용해 1991년 복원사업을 시작해 1992년 완료했다. 백제의 숨결을 더 깊게 느껴보고 싶다면 왕궁리 유적지 초입에 위치한 국립익산박물관까지 함께 관람하면 좋다.

[상기 이미지 및 원고 출처 : 신한 미래설계포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