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자매의 뉴질랜드 여행기

 

여행의 시작
70대 동생  "언니, 팔순 넘은 기념으로 막내 보러 뉴질랜드 가자"

80대 언니  "아니 뉴질랜드가 옆집도 아니고 그 먼데를 어떻게 가?"

60대 동생  "비행기가 가지 뭔 걱정이래, 비행기 타고 한숨 자고 일어나면 뉴질랜드야"

70대 동생  "나이는 자꾸 먹고, 함께 여행 가는 거... 이번에 안 가면 점점 더 어려워. 나중에 후회하지 말고, 막내가 오라고 할 때 가자"

80대 언니  "난 다리 아파 못가, 이 나이에 어딜 가니~"

동생들  "언니 짐은 우리가 다 들어줄게!! 가자"

 

여든 살이 넘은 언니는 무릎에 힘이 없어서 갈 수 없다며 손사래를 쳤지만, 동생들의 열띤 부추김에 살며시 마음이 부풀어 올랐습니다.

 

▲(왼쪽부터) 80, 70, 60대 자매

 

따르릉~
그 후 며칠이 지나자, 세 자매의 전화가 번갈아가며 우리 집 전화기를 울려대기 시작했습니다. 
네, 그렇습니다. 여든한 살이 된 언니가 바로 저의 어머니입니다. 덕분에 저는 세 자매의 가이드라는 총대를 메게 되었죠. 15박 16일의 짧지 않은 일정. 사실 저도 평소 뉴질랜드가 무척 궁금해 가고 싶었지만, 이번만은 마음껏 즐거워하기엔 표현할 수 없는 부담감이 밀려왔습니다.

 

출발부터 세 자매는 남달랐습니다. 김치, 마늘, 고춧가루, 간장, 깨소금, 참기름, 들기름, 김, 텃밭에 심을 한국 채소 씨앗까지... 대형 여행 가방에 꽉꽉 채우고도 박스 포장을 몇 개 더 하고 나서야 뉴질랜드로 떠날 준비를 마쳤습니다. 사실 짐의 대부분은 막내를 위한 선물! 세 자매의 막내 사랑은 선물의 부피만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그렇게 60, 70, 80대의 여인들... 저까지 합쳐 5, 6, 7, 8학년이 함께 떠난 뉴질랜드 여행이 시작됐습니다.

  

   

▲블루베리 농장(좌), 푸카키 호수(우)


오클랜드에서
드디어 도착한 오클랜드. 
공항 입국신고는 우리의 큼직한 선물 보따리들로 인해 늦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심지어 70대 이모가 끌고 가던 짐에서 냄새가 났는지, 송아지만한 마약탐지견이 달려와 짖어대는 바람에 공항 직원들이 다수 출동한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어수선한 상황과 성난 듯 으르렁대는 마약탐지견 앞에서도 통 큰 이모는 눈도 꿈쩍하지 않고 "김치, 김치!"라고 당당히 외쳤죠. 제가 뭐라고 설명할 틈도 없이 말이죠. 다행히 뉴질랜드 사람들도 '김치'를 알고 있었는지, 짐 수색 없이 통과 시켜주었습니다. 세계적으로 K-POP만 뜬 줄 알았더니, 한류음식도 유명세가 올라간 것 같아 그 정신없는 상황에서도 기쁘고 감사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공항을 나오자 청정한 자연이 눈부시게 빛났습니다. 마치 인간의 욕심이 자연의 모습을 바꿔놓기 이전으로 타임머신을 타고 돌아간 것 같았어요. 필터로 걸러낸 듯 깨끗한 공기, 반짝이는 햇살과 비취색 바다, 비 갠 후에 커다란 무지개를 쉽게 볼 수 있는 하늘. 뉴질랜드의 자연 풍경은 회색빛 도시에 살던 우리에게 무척 인상적이었습니다. 우리는 승용차 두 대를 나눠 타고 오클랜드 근교를 돌아다녔어요.

 

특히 하늘을 찌를 듯 커다란 나무들이 빽빽하게 자라고 있는 레드우드 숲은 공룡시대처럼 사람보다 더 큰 고사리 모양의 양치식물들을 볼 수 있어 마치 스티븐 스필버그의 영화처럼 어디선가 공룡이 뛰쳐나올 것만 같았습니다. 그 외에도 유서 깊은 박물관이며, 로토투아 원주민 마을과 유황온천, 블루베리 농장, 반딧불 동굴 등 매일 눈만 뜨면 밖으로 나가 대자연의 아름다움에 빠져 천지창조의 경이로움에 빠져 하루하루를 즐기는 것이 일상이 되었죠.

 

▲로토투아 유황온천(좌), 레드우드 숲(우)


우럭 낚시
하지만 여행 일주일 정도가 지나자 조금씩 체력이 지쳐갔습니다. 집 안에서 쉬자니 시간이 아깝고, 밖으로 나가자니 몸이 힘든 상황. 
네 자매는 얼굴에 팩을 붙이고 나란히 누었습니다. 서로가 어린 시절 장난친 이야기며, 그러다가 호랑이 같은 외할아버지께 야단맞은 일. 추억에 잠겨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는 네 분을 보니 눈가에 주름만 굵어졌을 뿐, 지금도 변함없는 소녀들입니다. 

 

그렇게 얘기를 나누다가, 돌아다니기 싫어진 언니들을 위해 현지에 사는 이모의 제안으로 낚시를 하러 가기로 결정했습니다. 평소 잘 가는 바닷가에서 우럭이 잘 잡힌다며 언니들을 이끌었죠. 팔순의 어머니가 걱정된 저는 어머니를 만류했지만, 누구보다 먼저 우비까지 챙겨들고 문 앞에 나가 동생들을 기다리는 모습을 보니 어찌할 방법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깨끗한 자연을 품은 곳에 오니 어머니가 더 건강해지신 것 같아 한편으로는 마음이 가볍기도 했습니다.

 

 

아쉽게도 저는 도시어부 행렬에 동참하지 못했습니다. 서울에서 마무리 하지 못한 일 때문에 뉴질랜드까지 노트북을 가져와 틈나는 대로 작업을 할 수 밖에 없었기에 집에 남았지요. 저녁 무렵이 되어 돌아온 어머니와 이모들은 커다란 자연산 우럭 열 마리 정도를 잡아오셨습니다. 우럭을 잡은 이모들도 믿겨지지 않는 듯 연신 신기해하셨어요.

 

"물고기를 잡아서 바구니에 넣자마자 또 잡히는 거야. 태어나서 이런 것은 처음 본다. 크기도 제법 크다. 야야, 저 이모는 우럭을 잡았는데 쏜살같이 갈매기가 날아와서 그 우럭을 채가지 뭐냐"며 흥분을 감추지 못한 60대 이모님이 말씀하셨어요. "우와! 이모, 여기는 갈매기가 진짜 야생이네요. 강화 석모도 갈매기는 새우깡만 먹잖아요."라며 저도 맞장구를 쳤습니다. 자신의 이야기에 흥이 오르신 70대 이모가 말을 받습니다. "그래서 내가 어떻게 했는지 아니? 내 물고기! 내 물고기 하고, 잽싸게 신발을 벗어서 갈매기한테 던졌어!" "헉! 그래서요? 이모 어떻게 됐어요? 진짜 갈매기가 맞은 건 아니죠?" "어떻게 되긴, 내가 맞혔지. 갈매기가 신발에 맞아 휘청하더니 물고 있던 우럭이 커서 떨어뜨리고 날아갔어. 그 물고기 저 안에 있다. 푸하하하!" 네 자매는 웃느라 정신이 없습니다. 그 장면을 목격하지 않았어도 충분히 그림이 그려지시죠? 아마 갈매기에게 우럭을 양보하기 싫을 정도로 낚시 재미에 푹 빠졌던 것 같습니다.

 

레드우드 숲에서
어느덧 2주일이 넘는 시간이 쏜살같이 지나갔습니다. 출국 하루 전, 레드우드와 종려나무들이 빽빽한 동네 공원을 산책했습니다. 깨알같이 웃었던 즐거운 시간들도 벌써 추억이 되어 가슴에 남습니다. 막내 이모와 이별의 시간을 앞두고 네 자매는 아쉬움을 전합니다.

 

 

막내 이모 "보고 싶을 때, 보고 싶다고 생각만 하지 말고 언제라도 와요."

80대 어머니 "내가 짐이 될까봐 이번에 안 오려고 했거든. 그런데 막상 와보니 이제 나이 먹었다고 움츠러들지 말고, 건강할 때 더 돌아다녀야겠다."

 

네, 어머니... 나이가 숫자에 불과한 것은 아니지만, 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할 수 있고, 할 수 없다고 생각하면 할 수 없다는 말도 있잖아요. 이제 저와 함께 자주 돌아다녀요. 50+ 여러분도 움츠리지 말고, 할 수 있다는 용기를 갖고 도전해보세요. 미루면 더 늦을 뿐입니다. 80대 저희 어머니도 마음먹으시니 잘 해내시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