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을 한 직장에서 근무하며 하나의 일에만 매달려 살아온 이들에게 두 번째 삶, 은퇴 후 인생설계는 그저 막막한 일일 뿐이다. “후배들에게 미리미리 준비하라고 잔소리했지만, 정작 회사 밖으로 나오니 눈앞이 캄캄하더라”는 어느 공기업 정년퇴직자의 소감은 많은 의미를 담고 있다. 퇴직 후의 삶을 미리 준비해야 하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지만 제대로 실천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이런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 최근 자사 임직원의 은퇴 준비, 노후 준비를 돕기 위한 기업들이 늘고 있다. 선명한 미래가 업무의 생산성 향상에 도움이 된다고 믿는 것 아닐까. 이런 기업 중 모범 사례로 꼽히는 포스코를 찾아 인생설계 프로그램이 어떻게 운영되고 있는지 들여다봤다.

 

 

브라보 라이프 디자인. 본지 제호와 비슷해 친숙하게 여겨지는 이름은 스코의 퇴직 인생설계 프로그램명이다. 교육 참여는 50세 이상의 포스코 임직원이라면 누구나 신청이 가능하다. 브라보 라이프 디자인은 2001년부터 포스코인재창조원이 운영해온 정]년퇴직 예정자 대상의 교육 과정인 ‘그린 라이프 디자인’이 원형이라 있다. 교육 진행 과정 정부의 정년퇴직 연장 정책에 따라 2016년과 2017년 에는 정년퇴직자가 발생하지 않게 되면서 프로그램 운영에 변화가 있었다. 이런 변화의 배경에는 ‘준비기간’에 대한 의견도 반영됐다. 교육 시점이 정년 퇴직 3개월 전부터 시작되어 인생설계에 제대로 반영하기엔 빠듯했기 때문이다. 그린 라이프 디자인 교육은 2001년부터 2015년까지 약 3000여 명의 직원들이 참여했다.

인재창조원 관계자는 “정년퇴직 예정자를 대상으로 그린 라이프 디자인 프로그램이 퇴직이 임박한 이들을 대상으로 실제적으로 필요한 서류처리나 연금 문제 등에 초점을 맞췄다면, 브라보 라이프 디자인 프로그램은 퇴직 생활에 대한 마인드 변화, 방향성 제고와 같은 포괄적인 부분이 중심이 된다”고 설명했다.

 

 

미래가 명확해야 근로의식 높아져

올해 브라보 라이프 디자인에 참여 예정 인원은 330명. 포스코의 주된 사업 장인 포항과 광양의 임직원 300명과 서울 근무자 30명이 참여한다. 강의에 참여하는 인원만 13명. 포스코인재개 발원의 교수 외에 다양한 분야의 사외 강사들이 전문 분야의 교육을 담당한다. 포스코인재창조원 김일수 교수는 프로그램의 목적을 이렇게 설명한다.

“50대를 넘어선 직원들이 퇴직 삶에 대해 막연한 두려움을 갖는 경우가 습니다. 대부분 젊은 시절부터 포스코에 몸담아온 사람들이기 때문에 회사 밖에서의 삶에 겁을 먹을 있거든요. 그래서 회사가 나서서 이들의 일과 대한 생애설계와 퇴직 준비를 지원해 불안감을 해소시키고, 근로의식도 고취할 있도록 돕는 것이지요. 또 퇴직 삶의 방향을 설정함으로써 행복한 인생을 유지할 있기를 바라는 부분도 있고요.”

2016년과 2017년 진행된 프로그램에는 총 700여 명의 임직원이 참여했다. 본인의 생애설계에 대한 진단과 자산 관리, 생애관리, 건강관리 교육이 중점 적으로 이뤄졌고, 관심 분야와 관련한 현장 탐방과 체험 학습도 이뤄졌다. 참 여자의 만족도는 높은 편이어서 자체적으로 조사한 결과 5점 만점에 평균 4.88점의 반응이 나왔다.

브라보 라이프 디자인 프로그램은 변화를 줬다. 초기 프로그램이 1일 8시간 포괄적인 방식으로 진행돼 교육 시간 부족, 교육 내용 전문성에 대한 의견이 많았기 때문이다. 올해부터는 직업형 트랙과 자산형 트랙으로 나눠 자신에게 맞는 교육을 받을 있도록 했다. 자산형 트랙의 경우 자산관리는 결국 부부 공동의 이해가 있어야 한다는 점에 착안해 임직원의 배우자도 함께 참여할 있도록 했다. 또 원한다면 프로그램 모두 참가할 있다. 일반적인 재무관리 교육과 달리 특정 금융상품의 밀어주기가 없다는 점도 참여자들에게 환영받는 이유다.

 

‘먹고사는 문제’ 이외의 것까지

직업형 트랙은 1인 창업이나 프랜차이즈 창업의 특징과 차이점, 창업 과정에서 극복해야 위험 요소, 재취업을 원하는 이들을 위한 구직 목표 설정, 자격증 취득 등과 같은 현실적인 내용도 포함되어 있다.

자산형 트랙은 수익형 부동산이나 부동산 경매 또는 공매에 대한 정보, 세금과 관련 법률에 대한 소개, 각종 금융상품이나 상속·증여와 관련한 교육도 실시한다.

프로그램에선 즐거운 여가를 위한 본인의 여가 유형 진단에서부터 여가 활용 방법과 건강관리를 위해 지켜야 사항 등도 함께 소개한다.

프로그램의 구성이 단순히 ‘먹고사는 문제’에 국한되어 있지 않은 것이 흥미로운 부분. 포스코인재창조원 관계자는 이렇게 주제가 넓어진 것에 대해 “직원들의 요구가 있었다”고 설명한다.

임직원들의 관심이 많은 건강과 재무, 인간관계, 여가까지 다양한 주제를 다루는 것은 단순한 재테크 활동뿐만 아니라 정년퇴직 품위 있는 삶을 영위하고자 하는 욕구를 반영한 것이다.

물론 재취업이나 창업에 대한 일반적인 개념이나 준비사항에 대한 교육도 진행한다.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작성하는 방법을 알려주고, 개인별로 성격검사와 적성검사도 실시한다. 여기에 직원에게 재취업 장애요인은 없는지 체크한다.

오프라인 교육과 별도로 사이버학습을 사전학습 형태로 진행하는 것도 프로그램의 특징 하나다. 인생설계, 창업, 귀촌과 같은 커리어 디자인과 재무 디자인, 라이프 디자인을 온라인을 통해 접할 있다.

 

은퇴 대비에 ‘눈치 보기’는 없어

올해 브라보 라이프 디자인 프로그램의 참석률은 전체 대상자의 20% 정도. 은퇴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 정년퇴직을 10년 앞둔 임직원까지 대상에 포함되는 것을 고려하면 높은 편이다.

혹시 회사가 먼저 나서서 ‘퇴직’에 대해 논하는 것이 사측에서 퇴직을 권하는 것처럼 비춰지진 않을지, 또 프로그램 참여가 퇴직 의사를 밝히는 것처럼 여겨지진 않을지 의문을 가졌지만 참가자들은 “사내 분위기를 모르는 상태에서 갖는 의문”이라고 일축한다.

프로그램 참석자는 “포스코라는 기업의 특성상 대부분의 직원들이 정년을 채우고 퇴직하는 것을 자연스럽게 여기고 정년 때까지는 업무에만 집중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한다”면서 “이런 문화 때문에 정년퇴직 생애설계에 대해 논하는 것이 어색하지 않은 것이 사내 분위기다”라고 설명했다.

 

 

mini interview - 브라보 라이프 디자인에 참여한 포스코 EIC기술부 정규점 부장

 

“이제 새로운 인생의 밝혀야죠”

평생을 제철소만 보며 살아온 그였다. 뻘건 쇳물이 제대로 넘실거리는지 기계가 없이 작동하는지가 그의 일한 관심사였다. 포스코 EIC기술부 정규점(鄭圭点·57) 부장은 전기 엔지니어로 입사 후 33년을 꼬박 포항의 제철소 전기설비관리 일을 해왔다. 포스코의 다른 직원들과 마찬가지로 국가 기간산업 현장에서 경제발전을 위해 일한다는 자부심이 있었다. 곁눈질할 틈도 생각도 없었다. 그러다 올해 퇴직 인생설계과 정인 브라보 라이프 디자인 프로그램에 처음 참여했다.

“퇴직을 앞둔 58년생 선배들을 보면서 이제 퇴직이 남의 일이 아니구나 실감 하게 됐죠. 그래서 저도 정년 후에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고민해보기 위해 프로그램에 참가하게 됐습니다. 지난 해부터 브라보 라이프 디자인을 알고 있었는데, 올해부터는 교육이 주말에 진행된다고 해서 마음 편히 참가 신청을 했어요.”

사실 그가 은퇴에 대한 대비를 전혀 하지 않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평생 닦아온 전기 분야 관련 노하우를 후배들에게 또는 기술을 필요로 하는 곳에 전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전기 기술 분야의 NCS(국가직무능력 표준)와 관련한 서적 출간이나 관련 교육 등에 관심이 있어 이것저것 준비를 해오긴 했죠. 하지만 교육을 받고 나니까 마주치게 정년이 정말 실감나 더라고요. 이런 교육을 통해 은퇴 삶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볼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는 같습니다.”

그는 특히 은퇴 후의 시간을 어떻게 가치 있게 보낼 것인지에 대해 참가자들과 함께 고민해볼 있어서 좋았다고 소감을 밝혔다.

“사실 같은 회사에 다녀도 모르는 들이 많거든요. 회사가 크다 보니 말이죠. 잘 모르는 동료분들과 퇴직이라는 주제로 함께 대화를 나눴는데, 얻은 정보도 많았고 기대 이상으로 분위기도 좋았습니다.”

정규점 부장은 은퇴 계획 제대로 취미를 갖는 것을 우선순위에 뒀다. 24시간 돌아가는 제철소에 매여 있다 보니 취미생활 한번 못해본 것이 가장 아쉬움으로 남는다고. 또 봉사활동에 시간을 할애하는 것도 그가 세운 계획 하나다. 그는 2004년부터 지역 자율방범대에서 주민을 위해 활동 중이다.

“퇴직 후에 이것저것 해보려고 벼르고 있어요.(웃음) 일단 악기를 배워보고 싶고, 그간 바쁘다는 핑계로 만나지 못한 친구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싶습니다. 은퇴 교육을 통해 많은 것을 깨닫게 같습니다. 예전에는 정년이 빨라 퇴직 후에도 도전이 쉬웠지만, 지금처럼 환갑이 넘어 퇴직한 새롭게 시작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잖아요. 다른 분들도 이런 교육을 통해 미리미리 준비하시길 권합니다.”

 

 

 이준호 기자 jhlee@etoday.co.kr

사진제공 포스코인재창조원  bravo_log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