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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이 딱 절반가량 흘러갔을 무렵의 월요일 아침. 대체공휴일이기에 으레 늦잠을 즐길 수 있었건만 난 벌떡 일어났다. 코로나 백신 1차 접종 예약일이었다. 별일이 있겠냐 싶어 난 보무도 당당하게 병원 문을 열어젖혔다. 거기까진 좋았다. 두통, 매스꺼움, 무기력 등 다양한 후유증에 시달렸다. 증상은 몇 주 동안 계속되었다. 추석 즈음에서야 간신히 건강을 회복했지만 체력은 눈에 띄게 약해졌다. 하지만 이번에야말로 규칙적 운동으로 나의 기초체력을 끌어올리겠다고 다짐한 계기가 되었다.

 

때마침, 친구가 남산 걷기를 제안했다. 국립극장에서 시작해 석호정, 서울시 중부공원 녹지사업소, 와룡묘를 지나 명동역으로 내려오는 남산 둘레길, 일명 남산 북측순환로 코스였다. 4km 산책로를 다 걷고 나니 마음엔 즐거움이, 몸엔 단내 풍기는 피로감이 넘쳤다. 명동역 근처에 오니 한 발 짝도 더 내디딜 수 없을 만큼 힘이 들었다. 온몸을 번쩍 기운 나게 해줄 뭔가가 없을까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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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땀을 흘린 뒤 먹는 삼계탕과 통닭은 꿀맛이었다

 

 

 

전광석화처럼 떠오른 이미지 하나, ! 다리 풀린 친구를 밀고 당겨서 한달음에 영양○○를 찾아갔다. 식당 안을 가득 메운, 고소하다 못해 꼬순 전기구이 통닭 냄새에 난 정신을 잃을 지경이었다. 자리를 잡기도 전에 통닭 정식을 외칠 수밖에 없었다.

 

오십년 같은 오 분이 지나고, 드디어 난 통닭 반 마리를 영접했다. 한 입 탁 물어뜯는데, ! 요즘 말로 겉바속촉이었다. 통닭 반 마리는 씹을 새도 없이 솜사탕같이 녹았다. 달짝지근한 기름진 맛을 입안 가득 즐기는데 문득 기억 저 먼 곳에서 익숙한 맛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꼬순 통닭 냄새 사이로 노란 닭기름이 잔뜩 밴 종이봉투 앞에 머리는 맞대고 있는 어린 나와 동생들이 보였다.

 

저녁이면 우리 삼남매는 작지만 위풍당당한 흑백 텔레비전 앞에 옹기종기 앉았다. 브라운관 속 코미디 프 로그램보다 초인종 소리에 신경을 곤두세웠다. ‘딩동하는 소리와 동시에 엄마다!’ 소리치며 대문 앞으로 뛰쳐나갔다. 피로에 지쳤을 엄마 얼굴은 관심 밖, 엄마의 양손을 잽싸게 쳐다봤다. 늦은 퇴근이 미안했던 엄마는 도너츠, 주스, 통닭 등 간식을 사 들고 오시곤 했기 때문이었다. 엄마보다 통닭 냄새가 먼저 문턱을 넘어오는 날이면, 축제가 열리는 동시에 닭다리를 차지하려는 삼 남매의 혈투가 벌어지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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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동 사보이 호텔 옆에 있던 영양센터 건물. 지금은 근방으로 이전했다.

(출처 gush99님의 블로그) 

 

 

중학교 입학을 얼마 앞둔 어느 날, 명동 사보이 호텔 옆에 있는 영양○○를 처음 가봤다. 늘 감질나게 맡던 통닭 냄새를 원 없이 들이키고, 통닭 한 마리를 온전히 독차지한 날이었고, 찹쌀이 잔뜩 들어찬 삼계탕을 처음으로 본 날이었다. 아마 그 날은 남대문 시장으로 진출한 엄마의 옷가게가 유난히 장사가 잘 된 날이었으리라. 정신없이 통닭이며 삼계탕을 해치우는 나를 엄마는 마냥 웃는 얼굴로 바라봤다. 자신감과 여유로움이 뿜어나는 얼굴이었다. 그 순간이 내게 가장 행복한 순간으로 각인되었나보다. 자라면서 축하하거나 기념해야 할 날이 되면 그 시절 만난 명동의 그 통닭이 가장 먼저 떠오르곤 했다.

 

얼마 전, ‘오늘이 오늘이소서라는 노래를 들을 기회가 있었다. 고려 때부터 내려오는 잔칫날에 부르던 민요로 임진왜란, 정유재란을 겪으며 잊혔는데, 남원지방에서 일본으로 끌려간 사기장의 후손들이 이 노래를 부르며 망향의 한을 달랜 덕분에 오늘날까지 명맥을 이을 수 있었단다. 노래의 시작은 이랬다. ‘오늘이 오늘이소서 매일에 오늘이소서 저물지도 새지도 말고 언제나 오늘이소서’. 노래를 듣자마자, 뜬금없이 명동이 떠올랐다. 사람의 물결이 끝없이 이어지고 풍요와 여유가 넘치던 거리. 엄마가 꿈꿨던 밝은 미래가 현실이 되고 덕분에 꼬순 전기구이 통닭을 실컷 먹을 수 있었던 곳. 오늘도 내일도 아니 매일매일 더 잘 살 수 있다는 희망이 넘실대던 그 시절의 명동은 양 갈래머리를 한 내겐 젊음과 희망 그리고 통닭이 기막히게 조화를 이루는, 너무도 근사한 샹그릴라였다.

 

틴팝 : 10대들을 타깃으로 한 대중음악 장르알앤비힙합록 등 다양한 장르에 걸쳐 생산되며 청소년의 일상과 사랑을 다룬 노랫말과 밝은 분위기의 곡이 특징이다. 

 

50+에세이작가단 정호정(jhongj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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