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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전 이맘때의 기록입니다. 그러니까 마흔다섯 언저리쯤요. 기록은 기억보다 강하다더니 그때 이런 생각을 품고 살았군요. 지금과 별반 다를 게 없네요. 마흔을 쉰으로 바꿔도 무방하겠어요. 몸은 익어가는 데 생각은 제자리걸음이랄까요. 사실, 백신 접종 후 몸 상태가 안 좋습니다. 얼굴이 붓고 온몸이 욱신댑니다. 당최 아무것도 할 수 없어서 예전에 썼던 글로 대신함을 양해해 주세요.

 

당신들은 이런 날 모순덩어리라 하겠지만, 나는 종종 나이 어린 친구들에게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 말합니다. 함께 늙어가는 동년배나 선배에게는 나이가 연륜이라 하고요. 그러면 그들 모두로부터 답례처럼 따뜻한 눈빛이 돌아옵니다. 오가는 덕담 속에 싹트는 명랑사회랄까요. 반대로 가끔은 후배에게 나이가 숫자놀음만은 아니라며, 마치 나이가 훈장인 양 말하기도 합니다. 선배에게 나이는 숫자 따위일 뿐이라며 건방을 떨기도 하고요. 그러면 후배로부터 꼰대 소릴 듣고, 발끈한 선배에게 타박을 듣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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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 있습니다. 세월이 흐르면 누구에게나 저절로 주어지는 나이가 무슨 훈장이겠어요. 그렇다고 단순히 숫자이기만 할까요? 제아무리 웅숭깊은들 그 나이가 되지 않으면 절대 알 수 없는 것들이 있고, 제아무리 철없다 해도 그 나이가 되면 절로 알게 되는 것들이 있는 법이잖아요.

 

고백하자면, 마흔 무렵에 까닭 없이 먹먹한 날들이 많았습니다. 아무런 계획도 없이 15년 다닌 직장을 그만두었죠. 오래 집을 비웠고, 길 위에 서는 날들이 한동안 이어졌습니다. 그렇게 서성이는 동안 답을 찾을 수 있으리라 막연히 생각한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길 위에 섰던 어느 하루가 떠오릅니다. 어스름한 저녁, 산 중턱에 있는 듯 없는 듯 내려앉은 산사를 돌아 나올 때 눈앞에 펼쳐진 너렁청한 풍광에 숨이 다 멎었습니다.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그래, 힘들었구나, 많이 참았구나, 등을 두드려 주는 것 같았습니다. 위로를 받은 느낌이랄까요. 까닭 없이 먹먹해지고, 속절없이 눈물이 솟고, 기대 없이 산 위에서 위안을 얻고. 그때 왜 그랬는지, 어떤 마음이었는지 지금도 정확히 알지 못합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애먼 나이 탓만 들먹일 뿐이지요.

 

어느새 마흔도 훌쩍 넘었습니다. 생각하면 언제 이렇게 나일 먹었나 징그럽기도 하고, 한편으로 초조하기도, 두렵기도 합니다. 나이 들고 있음을 가장 실증적으로 느끼게 하는, 하루가 다르게 늙어가는 몸도 그렇거니와 허투루 살아온 지난날에 대한 삶의 보복이 시작되는 보속의 나이인 듯싶어서요. 그러니 어쩌겠어요. 치를 건 치르고 감수할 것은 감수할 밖에요. 미래의 시간을 빌려와 미리 낭비할 수 없었음을 다행으로 여기고, 여전히 마음이 몸을 움직일 수 있는 나이임에 감사하며 남은 시간을 충실히 살 밖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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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이 나이가 끔찍하기만 한 건 아닙니다. 사십 대는 세상의 아픈 상처가, 비로소 남의 상처가 들여다보이는 나이입니다. 왜 저렇게 상처투성이인 과거에 구질구질하게 집착하나, 더는 그런 모진 말을 할 수 없게 됩니다. 한 시인이 말한 것처럼 '가슴에 굵은 못을 박고 사는 사람들이 생애가 저물도록 그 못을 차마 뽑아버리지 못하는 것은 자기 생의 가장 뜨거운 부분을 거기 걸어놓았기 때문'임을 진심으로 이해하게 되니까. 삶이 열정이나 땀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고, 절반은 울음을 삼키는 일이라는 것을, 그리고 세상의 아픈 상처 하나쯤 껴안아야 한다는 것을 절감하는 나이라고 할까요. 제게는 그렇습니다.

 

이제 더는 나이 타령을 하지 않습니다. 젊은 날로 돌아가고 싶지도 않고요. 대개는 잊은 듯 일상을 살아갈 뿐입니다. 대신 나잇값이라는 걸 가끔 생각합니다. 나잇값이란 말을 좋아하지 않지만, 살아온 날의 무게라는 게 있겠다 싶거든요.

 

오늘은 시월의 첫날입니다. 오늘을 어떻게 보내고, 얼마큼 남아 있을지 모를 내일을 어떻게 맞아야 할지 이 밤, 고민 좀 깊어질 것 같습니다. 당신의 오늘은, 또 내일은 어떤 모습일까요? 아무려나, 애쓰신다는 걸 압니다. 당신들의 내일을, 그리고 작은 그 무엇이라도 실천하는 모든 오늘을 응원합니다.

 

50+에세이작가단 우윤정(abaxial@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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