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해설사가 직접 들려주는 구제주 여행길,

‘리본(re:born)길’을 창업한 김성길 대표를 소개합니다.

 

  "오래 걸리더라도, 같이 걷고 싶어요"오래 걸리더라도, 같이 걷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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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년간 건축업에 종사하며 도시재생보다는 도시개발이 더 익숙했던 김성길 대표는

옛 도시들의 골목을 걷다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다채로운 이야기를 듣고 싶어졌다고 한다.

<점프업 5060>을 만나, 지역의 필요에 귀 기울이며 동네 사람들과 함께 걷는 첫걸음을 뗀 그는

제주 설화와 역사, 마을주민의 이야기로 다시 태어나는(Re:Born) 리본길을 준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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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반갑습니다! 먼저 자기소개 부탁드릴게요!

안녕하세요, 저는 35년간 건축이라는 한 길만 걸어온 김성길입니다. 건축 외 다른 영역에서, 다른 길을 걸어온 사람들과 소통한 경험은 <점프업 5060>이 처음이라 새로운 세계에 들어온 기분을 느끼고 있어요.

Q. 새로운 세계인 <점프업 5060>에는 어떤 계기로 참여하게 되셨어요?

‘도시재생’이라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 그 타이틀 자체에 굉장한 호감을 느꼈어요. 이전 35년은 기존의 것을 밀어버리고 새로운 건물을 짓는, ‘도시개발’의 경험만 해봤거든요. 하지만 항상 마음 한구석에 의문이 있었어요. 사람들의 *화양연화가 담긴 수많은 사연을 이렇게 단숨에 밀어버려도 괜찮은 걸까? 그러던 어느 날 지인에게 메일을 받았죠. ‘당신 도시재생에 관심 있지 않았냐, 도시재생 창업 지원사업이 있는데 한번 도전해봐라.’ 정말이지 너무 반가워서 신청도 제일 먼저 했습니다. 제가 1번 지원자였을 거예요. (웃음) 사업에 선정이 됐을 때는 얼마나 기뻤는지.

*화양연화(花樣年華):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시간

 

Q. 인생의 절반 이상을 ‘도시개발’에 몸담으셨던 대표님께서 어떤 아이템으로 ‘도시재생’ 창업에 도전하셨을지 궁금합니다.

제 창업 아이템은 ‘제주 구도심 골목길의 재탄생, 리본(re:born)길’입니다. 구도심에서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자문했을 때, 나의 경험을 활용해 쇠락한 공간을 다시 태어나게끔 하고 싶었어요. 하지만 이전처럼 기존의 것을 지우고 버리는 방식이 아니라 지역의 자원과 사람을 주인공으로 하는 방식으로요. 지금은 텅 빈 골목길이지만, 이곳에 옛 추억을 간직한 동네 해설사와 함께 제주말로 제주의 이야기를 전해 듣는 도보 여행길로 재조성할 계획이에요.

 

Q. 공간 중에서도 특별히 ‘골목길’을 선택하신 이유가 있나요?

한때 해외여행을 참 좋아했는데 명소나 유명관광지보다는 낯선 도시의 골목길을 주로 다녔어요. 30여 개의 나라를 다녀봤지만 언제나 골목길이 가장 재밌더라고요. 어느 지역에 가면 꼭 그 지역 사람처럼 살아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곤 했는데, 짧은 여행길에서도 동네 사람이 직접 이야기를 들려주면 더 다채롭겠다 싶었죠. 저의 골목 여행 경험, 그리고 여행자로서 가졌던 바람들이 ‘리본길’에도 반영되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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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제주에는 ‘올레길’이나 ‘다크 투어리즘’처럼 특색있는 도보 여행길이 많은데요. 리본길만의 차별점은 무엇일까요?

올레길의 경우, 꽤 어려운 과정을 거쳐서 지금의 성과를 냈다고 해요. 처음에는 3명의 사업가가 손수 돌 하나하나 치워가며 만든 길인데, 그 길이 1번, 2번, 3번… 여러 개로 늘어나자 시와 도에서도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거죠. ‘올레벽’이라고 해서, 시멘트 한 포대를 기부한 사람들까지 이름을 기록한 벽이 있어요. 저도 재능기부를 해서 이름이 실렸고. 그 벽을 보면 올레길이 수많은 사람과 함께 일군 성과라는 걸 알 수가 있죠.

Q. 역시 오랜 시간이 걸리더라도 사람들과 함께 만들어가고 싶어요. 

지난달에는 점프업 동료 대표님과 같이 리본길을 걸었는데, 종종 길가에 낡은 팻말들이 보이는 거예요. 무슨 무슨 평화의 길이라든가 하는. 아마 어떤 사업에 의해 조성된 길이었을 텐데, 당시만 반짝하다가 곧 잊힌 것 같아요. 리본길은 대단위로 관에서 조성하는 길이 아니라, 그 골목에서 딱지치기하며 뛰어놀았던 주민들의 이야기가 오래도록 기억되는 길이었으면 해요.


 

Q. 스토리텔링이 중요한 핵심이 될 것 같아요. 어떤 이야기를 담으실 계획인가요?

저는 마을해설사 개인의 사연을 담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다른 분들 의견으로는 사적인 이야기가 중심이 되면 일반 여행객에게는 지루할 수도 있다 하더라고요. 그래서 리본길 주변 지역의 설화와 4·3 이후 근대사를 중심으로 하되, 개인 이야기는 조미료처럼 가미하기로 했죠.

제주는 설화의 고장이 아닌가 싶을 만큼 마을마다 설화를 가지고 있어요. 저는 구제주의 ‘삼성혈 설화’가 참 재밌더라고요. 그 옛날 사람이 살지 않던 제주도의 땅속에서 고 씨, 부 씨, 양 씨의 신선 셋이 솟아났는데, 이 신선들이 쏜 화살이 떨어진 곳이 구제주의 일도동, 이도동, 삼도동이라고 해요. 설화에 따르면 구제주가 곧 제주 도민의 기원이고 탄생지인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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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서울에서 제주로 적을 옮기신 지 10년째인 것으로 아는데요. 외지인으로 시작해 주민으로 사시는 동안 알게 된 제주의 특징이 있을까요?

처음 제주에 가게 된 계기는 호텔 신축 도급을 맡아서였어요. 도시재생이 아니라 도시개발을 하러 간 거였죠. (웃음) 도내 건설회사에서 스카우트가 들어와서 직장생활도 쭉 제주도에서 하게 됐고요. 그러다 알게 된 지인 중 먼저 제주에 정착해 30년 가까이 사신 분이 있어요. 그분은 나름 오래 살았는데도 로컬 주민들과 이야기할 때는 꼭 ‘육지 것’이라는 표현으로 불린다고 해요. 그만큼 제주와 육지 사이의 벽, 경계가 있는 거죠. 리본길을 동네 사람과 함께 꾸려가는 이유도, 제주 사람과 함께 놀고 제주 사람처럼 생각하는 경험을 하다 보면 이 경계가 차츰 사라지지 않을까 해서예요.

제주도 내에서도 구제주/신제주는 극명한 차이가 있어요. 신제주가 급속히 발전하면서 구제주는 자연스레 쇠퇴하게 되었는데, 로컬 주민들조차도 구제주를 ‘나이 든 노인, 지저분한 건물, 값싼 물건’의 이미지로 인식하더라고요. 저는 구제주가 가진 매력을 보여주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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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그럼 리본길 조성을 통해 구도심 주민들이 얻는 바는 무엇일까요?

어떤 일이든 상생하는 일이어야 오래 갈 수 있다고 생각해요. 아무 이득 없이 지역주민을 사업에 포함해서도 안 되고요. 마을해설사 다섯 분께는 수익의 가장 큰 부분을 할애하기로 논의를 마쳤고, 가장 제주스러운 맛을 보여줄 수 있는 로컬 식당이나 소매상점 등을 자연스럽게 소개할 수 있도록 리본길 코스를 만들 예정이에요. 소상공인의 활력을 불어넣고, 더 나아가면 동료들과 지역 공익사업도 해나가고 싶고요.

Q. 지역주민들과 친분을 잘 쌓아오셨나 봐요. 구도심 쇠퇴에 따른 일상의 변화를 피부로 체험하신 분들일 텐데, 어떤 과정을 통해 협력하게 되셨나요?

건축일을 하다 보면 하루에 최소 30명, 많으면 100명까지도 눈인사를 나누거든요. 특히 건설 현장에서 일하시는 분들과는 이야기할 기회도 정말 많고요. 커피 한 잔을 하면서도 그분들의 삶을 접하고 배우게 되는데, 기사로 읽는 구도심에 대한 정보보다 훨씬 사실적이고 현장감이 있었어요. 도시재생이나 사회적 가치에 뜻을 가진 분들도 있어서 6~7년간 천천히 인간적인 관계를 쌓아가게 됐죠. 그중 두 분께는 협업 제안을 했고, 다행히도 흔쾌히 동조해주셨어요.

마을해설사의 적임자를 찾기 위해서, 사회적 사업을 많이 하는 기존 로컬 기업에 소개를 부탁드리기도 했어요. 오랫동안 일대의 유명한 음악카페를 운영하셨던 분을 소개받았는데, 오래전부터 도시재생 일을 해오셔서 도시재생센터에도 이미 잘 알려진 분이더라고요.

Q. 제주 로컬 기업인 <해녀의 부엌>과도 업무협약을 맺으셨어요. 어떤 내용인가요?

문화예술 단체인 <해녀의 부엌>은 코로나 이전까지 연극 공연 예약이 늘 풀로 차 있던 곳이에요. 마을 해녀들이 잡아 온 수확물이 자꾸 헐값에 중개인에게 넘겨지다 보니, 해녀 분들이 제대로 된 노동의 대가를 받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시작됐고요. 해녀 샤워실을 무대로 재조성하고, 해녀들의 수확물로 정갈한 저녁을 만들어 공연 후 뷔페로 즐길 수 있도록 프로그램을 기획하죠. 낮에 리본길을 걸었던 참여자들이 해녀의 부엌 저녁 프로그램을 이용할 수 있도록 연계하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Q. <점프업 5060>에는 기창업팀으로 참여하셨어요. 창업 경험이 있는 참가자로서 도움이 되었던 점은 무엇인가요?

기창업자이긴 해도 도시재생은 처음이라 그 모든 교육과정이 다 필요했어요. 커리큘럼의 짜임새에도 놀랐고요. 어떻게 그렇게 다방면의 요소들을 조목조목 담아내셨는지. 가장 신선했던 프로그램은 교육 초반의 ‘트레이닝 캠프’에서예요. 동료들과 함께 임의의 아이템을 기획하고 가상의 고객에게 팔아보는 시뮬레이션이 있었는데, 멤버십 형성도 되고 정말 재밌는 경험이었죠.

<점프업 5060>은 제 인생의 터닝포인트였어요. 평생 하나의 업종에 종사해왔는데도, 이전에는 그런 나를 누구에게 알린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거든요. 하지만 일련의 교육과정을 통해 스스로 객관화하는 훈련도 받고, 나만의 스토리를 홍보하는 방법도 터득한 것 같아요. 멘토에게 컨설팅받은 부분을 실전에서 많이 적용하기도 했고요. 여러모로 감사했습니다.

Q. 가까운 미래의 계획이나 최종 목표가 있으시다면요?

저는 기본적으로 같이 즐기고, 재밌게 일하는 것에 삶의 가치를 많이 두고 살아요. 이사진들과도 리본길을 통해서 생기는 수익원은 단돈 십 원, 이십 원이라도 무조건 모으자, 각자 가져가는 게 아니라 모아서 사회에 환원할 수 있는 공익활동을 좀 해보자, 하고 결론을 냈죠. 누군가는 이상주의 아니냐고 색안경을 끼고 보기도 하지만 저는 진심으로 이 꿈을 이뤄내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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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끝으로 도시재생 창업을 준비하는 신중년 세대에게 한 말씀 부탁드려요.

도시재생은 지역에서 필요로 하는 것에 대한 작은 관심, 귀 기울이는 노력이 가장 먼저 필요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과정의 핵심은 ‘혼자가 아니라 함께하는 것’, ‘같이하는 가치’라고 생각하고요. 도시개발. 너무 많이 해왔잖아요? 이제는 도시'재생'이 필요한 때인 것 같아요. (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