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로 만나는 서양문명 이야기 미국 편 

과거를 알아야 미래를 꿈꿀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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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지 미국, 240여 년이란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오늘날의 세계 최강대국을 이룰 수 있었을까요? 그 해답을 찾아 서울시50플러스 중부캠퍼스에서 진행하는영화로 만나는 서양문명 이야기 미국 편강의 현장을 찾아가 보았습니다.

 

제가 찾아간 강의는 전체 6회의 강의 중 마지막 강의로, 818일 목요일 Webex를 통한 비대면 화상 강의였는데요. 강의는 신미경 고려대학교 글로벌학부 초빙교수께서 맡아주셨습니다. 신미경 교수님은 그림이 있는 인문학 강좌 서부캠퍼스와 영화로 만나는 음악 인문학 중부캠퍼스의 강의를 통해 50+세대의 호평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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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 뉴욕의 리버티 섬에 세워진 자유의 여신상’ (사진=Pixabay)  

 

 

10시 정각이 되자, 미국의 상징인 자유의 여신상을 만나며 강의가 시작되었습니다. ‘아메리칸 드림을 안고 뉴욕 항구로 들어오는 이민자들이 자유의 여신상을 만나며 꿈에 부푼 것처럼, 오늘 강의 참여자들도 설레는 마음으로 미지의 미국 역사 탐험을 떠났습니다.

 

 

영화 1492 콜럼버스신세계


1492 산타마리아호를 비롯한 3척의 배로 항해에 나선 콜럼버스 일행. 한 달이면 신대륙에 닿을 수 있으리라는 기대가 무너지고,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집채만 한 거친 파도가 금세라도 배를 삼켜버릴 것만 같은 극심한 공포와 위험 앞에서 절망합니다. 그렇게 모두가 지쳐갈 때, 자욱한 안개 속에 희미하게 드러나는 육지. 그들은 드디어 인도 땅에 도착했다고 환호합니다. 해변에 도착한 콜럼버스는 내게 부여된 권한으로 이곳을 산살바도르라 명하노라라고 선언하면서, 신세계 미국 발견의 역사가 기록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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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대륙에 도착한 콜럼버스, “내게 부여된 권한으로 이곳을 산살바도르로 명하노라” 

(사진=영화 1492 콜럼버스 한 장면)

 

 

 

 

필그림 파더스와 세일럼


콜럼버스가 신대륙 발견한 뒤 100여 년이 흐른 1620. 필그림 파더스(Pilgrim Fathers, 순례의 조상)’로 불리는 102명의 청교도가 종교의 자유를 찾아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66일간의 험난한 항해 끝에 대서양을 건너 미국에 도착합니다. 그들은 오늘날 미국인들이 자신들의 선조로 자랑스럽게 내세우는 최초의 미국 정착인입니다. 그들이 가장 먼저 도착한 곳은 지금의 매사추세츠주 플리머스(Plymouth)’라는 도시인데요. 이들은 낯선 땅에서의 혹독한 추위와 괴혈병으로 도착한 첫해에 절반가량이 죽게 됩니다.


살아있는 자들의 목숨을 구한 것은 아메리카 원주민들이었는데요. 원주민들은 풍토에 맞지 않는 유럽 작물의 종자 대신 옥수수 씨앗을 주고 재배법도 전수해 주었습니다. 1621 가을, 첫 수확물을 거둔 이주민들은 원주민들을 초청해 잔치를 벌이며 생존의 기쁨을 나누었는데요. 11월의 넷째 주 목요일부터 주말까지 이어지는 오늘날의 추수감사절 축제(Thanksgiving Day)는 이때부터 유래한 것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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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좌측 청교도들이 상륙할 때 처음 밟았다고 전해지는 플리머스 바위

▲ 우측 도착 첫 해 겨울추위기아질병으로 죽은 104명의 합장 무덤 

(사진=코리안 데일리 타임스, THE HISTORICAL MARKER DATABASE)

 

 

 

세일럼(Salem)’은 마녀재판으로 유명했던 도시입니다. 마녀재판은 초기 이민자들 사이에 피어난, 정착지를 둘러싼 갈등에서 비롯되었습니다. 무고한 사람들을 마녀로 몰아 죽음에 이르게 한 세일럼 마녀재판은 매사추세츠주의 세일럼 재판부에 의해 16925월부터 10월까지 185명이 감옥에 갇혔는데요. 19명이 교수형을 당하는 등, 25명이 이 사건으로 목숨을 잃었습니다. 미국 문학의 르네상스를 누렸다고 평가받는 나다니엘 호손(Nathaniel Hawthorne)’은 이 사건을 우리 역사에서 기록하기 가장 부끄러운 치욕적인 사건이라고 밝혔는데요. 이 사건은 인간의 집단적 광기를 상징하여, 오늘날 문학 작품과 영화 등의 소재로도 널리 쓰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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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일럼 마녀 재판 희생자 추모 공간 (사진=EBS 세계테마기행)

 

 

보스턴과 미국독립


신대륙에 새로운 터전을 마련한 영국의 청교도들은 본격적인 식민지 정책을 추진해 18C 중반까지 13개 주의 식민지를 건설했습니다. 하지만 식민지로서 발전한 신대륙 미국은 점차 본국인 영국과 갈등을 빚게 되고, 결국 독립 혁명을 하게 되는데요. 미국 북동부 매사추세츠주 보스턴(Boston)은 미국 독립 혁명을 이끈 도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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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리덤 트레일 (Freedom Trail, 자유의 길) / (사진=EBS 세계테마기행)

 

 

보스톤에 위치한 16개의 유명한 역사 유적지들을 하나의 코스로 엮은 길

  

177312, 보스턴 항구에서는 342개의 차 상자를 바다에 던지는, 이른바 보스턴 차 사건(Boston Tea Party)’이 일어나는데요. 영국 정부가 일상의 기호품인 차(Tea)에 과도한 세금을 부과하자, 보스턴 시민들은 대표가 없다면 세금도 없다(No taxation without representation)’는 분노의 구호와 함께 저항하는데, 이 저항은 미국 독립혁명에 불을 지핀 사건으로 기록됩니다.

 

1775년에 시작해 1783 막을 내리는 미국의 독립 전쟁, 미국은 177674 세계를 향해 독립을 선언하고, 1783년 파리조약에서 식민지 미국은 공식적인 주권국가로 인정을 받게 됩니다. 미국은 1789 헌법을 제정하고 아메리카 합중국(United States of America)’이라는 정식 명칭을 사용하는 연방정부를 출범하게 되는데요. 이후 헌법에 따라 총선이 시행되어 1789430 조지 워싱턴이 미국의 초대 대통령으로 선출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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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크타운 전쟁 승리 기념비 (사진=Pixaybay)

 

 

요크타운 전투(Battle of Yorktown)는 미국 독립전쟁을 사실상 종결시킨 결정적인 전투이다. 이 싸움으로 독립전쟁은 사실상 식민지 군의 승리로 끝나게 되었다.

 

 

필라델피아와 영화 록키 1


미국 독립혁명의 중심지 필라델피아(Philadelphia)’1776 미국의 독립 선언서가 낭독되고, ‘자유의 종이 울렸던 미국 독립기념관 있는 곳입니다.

 

영화 록키 1의 주인공 실베스터 스탤론이 영화 테마곡 Gonna Fly Now가 흐르는 가운데, 맹훈련을 하는 장면이 숨 가쁘게 펼쳐집니다. 새벽을 가르며 질주하는 모습, 필라델피아 미술관 계단을 올라 가쁜 숨을 헐떡이며 승리의 두 팔을 번쩍 올리고 빙빙 도는 장면은 아직도 우리들 기억에 생생한데요. 이 영화는 미국 독립 200주년을 기념하여 제작된 영화라 하네요. 이 영화 속에서 록키라는 인물이 상징하는 것은, 이민자로서 맨바닥에서 자기의 맨주먹 하나로 일어서는 미국 사회의 상징적 이미지, 그것은 아메리칸드림(American Dream)’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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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록키 포스터 (사진=동아일보)

 

 

워싱턴과 미국 건국의 아버지


1790미국의 수도로 지정된 워싱턴의 정식 명칭은 워싱턴 컬럼비아 특별구’, 약칭은 워싱턴 D.C.(District of Columbia)입니다. 명실공히 미국의 입법, 사법, 행정의 중심지로대통령 관저인 백악관과 국회의사당, 국회도서관, 링컨기념관, 제퍼슨 기념관, 워싱턴 기념탑, 그리고 케네디 대통령이 묻힌 알링턴 국립묘지 등이 있는 역사적 명소의 도시입니다.

 

1789430일 조지 워싱턴이 미합중국 초대 대통령으로 취임합니다. 미국 독립 선언서를 작성한 미국 정신의 아버지 토머스 제퍼슨과 미국 초대 재무장관 알렉산더 해밀턴미국 건국의 아버지라 불리는데요. 미국의 3대 대통령이 된 토마스 제퍼슨은 반연방주의자, ‘알렉산더 해밀턴은 연방주의자로 서로 숙명의 라이벌 관계였는데, 그들의 대립은 미국 정당 정치의 시초가 되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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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워싱턴 기념탑 (사진=Pixabay)

 

 

백악관, 국회의사당과 함께 워싱턴 D.C.를 상징하는 건축물이다. 미국을 건국한 초대 대통령인 조지 워싱턴의 위업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탑으로 백악관 남쪽, 내셔널 몰 서쪽 끝 지점에 있다. 총 높이는 170m이며 세계 유수의 오벨리스크(고대 이집트 왕조에서 태양신을 기리며 세운 방첨탑) 형태로 지어져 워싱턴의 시내 대부분에서 조망할 수 있다.

 

 

영화 늑대와 춤을』,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그리고 남북전쟁


1863, 모두가 지쳐가는 남북전쟁 중에 전투를 승리로 이끌고 영웅이 된 존 J. 던바 중위는 동부 전쟁터를 떠나 서부 국경지대로 자원해 갑니다. 아무도 없이 홀로 서부 국경지대 요새를 지키며 이따금 찾아오는 늑대 하얀 발을 벗 삼아 평화로운 일상을 보내던 존 J 던바 중위에게 인디언 수우족이 접근해 오는데요, 점차 서로가 호감을 느끼게 되면서 그들은 친구가 되고, 던바 중위는 인디언 이름 늑대와 춤을이란 이름을 가지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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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늑대와 춤을 포스터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시대적 배경은 주인공 스칼렛이 16살이었던 해이자 남북전쟁이 발발한 1861년부터 1865년 종전 이후 재건 과정을 거쳐, 그녀가 28살이 되던 해까지를 아우르고 있습니다. 흔히 노예제 폐지가 명분으로 알려진 남북전쟁은 공업화가 활발히 진행되던 북부와 농업을 중심으로 노예제를 존속하던 남부의 경제적 이해관계도 복잡하게 얽혀 있는 전쟁이었죠.

 

우리가 알고 있는 미국 남북전쟁의 가장 큰 이유는 흑인 노예 해방이었습니다. 결국 노예 해방을 지지하는 북부군이 승리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인디언들과 전쟁하며 영토 확장과 지배를 추구하였으니, 이 또한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까요? 인간의 끊임없는 탐욕의 극단적 표현을 전쟁이라고 한다면, 영화 늑대와 춤을 던바 중위를 통해 표현하고자 했던, 탐욕의 소용돌이에 휩쓸리지 않는 화합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보게 됩니다.

 

뉴욕과 영화 이민자 중 엘리스섬


미국 초기, 많은 이민자가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며 자유의 여신상이 있는 뉴욕항에 발을 디뎠습니다. 주인공 에바와 그녀의 여동생 또한 입국을 위해 엘리스섬 입국 심사장에 도착했는데요. 입국 심사를 받던 이민자 에바와 여동생은 추방당할 위기에 놓이게 됩니다. 1900년대 초기 이민자들에 대한 처우, 경찰의 부패 등을 보여주는 이민자 이민자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하는 영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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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국 심사장에서 동생 마그다가 추방당할 위기에 처한 장면

 

 

영화 셀마


영화를 통해 오늘날 미국이 형성되는 과정은 계속해서 전개됩니다. 영화셀마는 마틴 루터 킹, 셀마의 흑인들, 그리고 그들의 인권의 역사를 그린 영화인데요, 셀마는 미국 남부의 소도시로, 남북전쟁 당시 노예제도 철폐를 주장한 북부군의 승리가 확정된 곳이기도 하지요. 하지만, 단순히 제도가 사라졌을 뿐, 차별과 멸시는 그대로였습니다. 남북전쟁으로부터 약 100년 후인 1965, 셀마의 흑인들은 자신들을 향한 노골적인 차별에 맞서 일어납니다. 그리고 이들의 구심점에는 흑인 인권 운동의 대부였던 마틴 루터 킹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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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셀마의 한 장면

 

 

 

과거를 알아야 미래를 꿈꿀 수 있다.”

 

미국의 길지 않은 역사를 파노라마처럼 스쳐 가며 영화로 살펴본 것은 색다른 경험이었습니다. 각각의 영화 속에서 펼쳐지는 역사적인 사실과 영화 속에서 표현하고자 했던 내용들을 음미하며 천천히 살펴봤는데요. 다시금 미국이 원주민의 나라에서 세계 최강대국까지 성장해온 과정을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올해 하반기에 또다시 과정을 개설한다고 하니, 기대해 보는 것은 어떨까요?

 

50+시민기자단 구세완 기자 (swkoo021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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