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끝마을 천년고찰 미황사의 낙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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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문화유적지를 답사할 때나 박물관 유물을 살펴볼 때 아는 만큼 보인다라고 하는 말은 알려고 노력했기 때문에 그만큼 보이고 이해된다는 警句(격구).

 

국토의 끝 두륜산에서 갈라져 나온 공룡 등뼈같은 달마산 준봉 서쪽 한 줄기에 미황사라는 고색창연한 예쁜 이름의 사찰이 있다.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은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남도지방 편에서 강진, 해남의 문화유적에 대해 설명하느라 미황사는 간략하게 언급하고 말았지만 山景(산경), 野景(야경), 海景(해경)을 모두 보여준다면서 찬탄의 극치라 할 정곡을 찌르는 표현을 남겼다. ‘美黃寺(미황사)는 천년고찰이라기 보다 이름 그대로 아름다운 절이다. 미황사의 ''는 소의 울음소리로 깨우치는 아름다움을, ''은 금빛나는 부처님 지혜를 말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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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황사의 낙조

그러나 미황사에 관한 온갖 아름다운 수식어에도 불구하고 미황사 답사의 압권은 대웅보전 옆 계단에 앉아 저녁 예불 올리는 스님의 낭랑한 독송과 목탁소리를 들으면서 장엄한 낙조를 바라보는 것이다. 나는 누구인가, 삶과 죽음이란 무엇인가를 사색하기에 딱 좋은 그 자리에서 해가 떨어지는 것을 바라보면 사바세계와 극락정토의 분별이 없어지는 아득한 환영을 느낀다. 더우기 적요한 앞마당 범종각에서 울려 퍼지는 아련한 종소리가 더해지면!

 

이제 전라남도 해남 땅끝마을 최남단 사찰인 미황사로 답사를 떠나 보자.

 

미황사는 큰길 입구부터 요란하지 않게 삼거리 이정표로만 묵묵히 존재를 알려준다. 대부분의 절은 주차장 또는 매표소로부터 멀지않은 곳에 절의 시작을 알리는 일주문이 있는데, 미황사는 일주문에 이르기까지 여느 사찰처럼 흔한 식당이나 숙박업소 하나 없이 한적하다. 게다가 문화재 관람료를 받지 않으니 당연히 입구 매표소도 없다. 미황사 일주문은 현판만으로도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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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의 시작을 알리는 '일주문'

 

일주문(一柱門)은 사찰로 들어가는 첫 번째 문으로 청정한 도량에 들어가기 전에 세속의 번뇌를 말끔히 씻고 일심(一心)이 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일주문을 지나 숲으로 이루어진 진입로를 따라가면 두 번째 문인 천왕문(天王門)이 나온다. 대부분의 사찰은 천왕문에 이르는 동안 개울이 있고 이를 건너는 다리가 나오지만 미황사는 깊은 산 속에 있지 않고 규모도 크지 않아 개울도, 다리도 없고 세 번째 문인 불이문(不二門)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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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문 '천왕문'

 

천왕문 안의 사천왕은 흔히 보이는 우락부락하고 무시무시한 사천왕이 아니다. 귀공자처럼 생긴 사천왕상의 발아래에는 원숭이, , , 토끼 등이 받치고 있다. 문 안에는 다른 사찰에서는 보기 어려운 윤장대(輪藏臺)가 있다. 윤장대는 경전을 넣어놓은 책장 같은 것으로 여기에 달려있는 손잡이를 잡고 돌리면 경전을 읽은 것처럼 공덕을 쌓을 수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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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왕문에서 바라본 자하루

 

천왕문을 지나면 2층 누각으로 된 자하루(紫霞樓)가 나오는데 아래층 가파른 계단을 올라 고개를 들어야 비로소 법당이 있는 마당이 그 모습을 드러낸다. 자하루는 '보랏빛 노을 누각'이라는 뜻이다.(대부분의 사찰에서는 만세루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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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마대사 석상

 

자하루 옆에는 달마대사 석상이 달마산을 바라보며 서있다. 달마대사는 남인도 왕국의 왕자로 태어나 중국 선종의 시조가 된 선승이다. 달마대사는 수행에 방해된다고 속눈썹을 뽑고 눈꺼풀을 잘랐다는데 그래선지 석상은 무섭게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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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웅보전 전경

 

마당에 들어서면 大雄寶殿(대웅보전)과 명부전, 응진당, 요사채 등 건물 몇 채가 조촐하게 반겨준다. (법당 내 석가모니 부처님 양옆으로 모신 협시불이 문수보살이나 보현보살처럼 보살이면 '대웅전'이라 하고, 아미타부처님이나 약사여래부처님처럼 여타의 부처님을 모시고 있으면 이를 '대웅보전'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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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웅보전의 주춧돌에 새겨져 있는 게

 

미황사 대웅보전은 오래된 세월 탓에 단청이 지워져 나무 특유의 거친 질감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대웅보전 주춧돌에는 게나 거북 등 바다생물이 새겨져 있어서 창건설화와 관련된 상상력을 자극한다. 신라 경덕왕(749) 때 경전을 실은 배가 바닷가에 닿았으며 배에서 나온 검은 소가 경전을 등에 지고와서 누운 곳이 미황사인데, 대웅보전은 창건설화에 나오는 배라는 것이다. 대웅보전 내부의 대들보와 천장은 산스크리트어 문자와 천불벽화로 장식되어 있는데 그 아름다움이 인도의 아잔타 석굴 벽화와 중국 둔황 막고굴의 천불벽화에 비교되기도 한다. 대웅보전 현판은 원교 이광사의 글씨이다. 이광사의 현판 글씨는 전라도 해안지방의 사찰에서 드물지 않게 만날 수 있는데 추사 김정희는 이광사의 서체를 비판했지만 나중에는 이광사 특유의 글씨체가 갖는 수려함을 인정하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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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황사에서 바라본 낙조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황사가 가진 이 모든 보물들은 미황사의 낙조에 비하면 소품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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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웅보전의 풍경

 

서울에서 미황사 가는 교통편은 그다지 좋지 않다. 직통이 없으니 KTX나 고속버스를 타고 시외버스 등을 갈아탈 수도 있지만 승용차로도 쉬지 않고 5시간은 족히 걸린다. 그래도 올해가 가기 전에 남도답사 1번지인 해남의 땅끝마을, 남도의 금강산이라는 달마산, 거기서 한 발짝 더 나아가 미황사의 대웅보전 계단이나 응진전 마당에서 해가 저물어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 하나만으로도 먼 길을 달려갈 가치가 있다.

 

미황사 : (061) 533-3521, 전남 해남군 송지면 미황사길 164

 

 

 

 

 

[글/사진 : 50+시민기자단 4기 정종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