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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도를 넘는 이른 아침. 옛시인 ²호라티우스의 카르페 디엠을 붙잡고서 딱 여름다운 날씨구먼!’이라고 흥얼거릴 수 있으면 좋으련만, 내 현실은 딴판이다. 하필이면 강남 1번지가 썩는다라는 신문 기사 제목을 발견했고, 그 아래 실린 어마어마한 쓰레기 사진을 본 탓이리라. 불쾌지수가 하늘을 찌를 지경이다.

 

아파트 가격변동의 척도 역할을 해왔다는 강남구의 은아파트. 그곳에 자그마치 40년을 묵힌 쓰레기 난장판이 존재했다. 그저 어느 한 사람의 이기심에서 시작되었을 것이다. 그가 이사 나가면서 제집 쓰레기를 아파트 지하에 버렸고, 뒤를 이어 비슷한 사람이 하나, 둘 늘어나면서 쓰레기는 2,000t이 넘는 흉물이 돼버렸다고 한다. ‘깨진 유리창의 법칙이 떠오른다. 늘 지나치던 건물의 유리창이 깨져 있는 것을 봤다고 하자. 만일 시간이 지나도 깨진 상태 그대로 방치된다면, 사람들은 그 건물 주인이 건물에 대한 애착이 없다고 판단한다. 그리고는 자신도 돌을 던져 유리창을 깨트리는 도덕적 해이를 일컫는 말이다. ‘쯧쯧혀를 차며 신문을 접으려는데 난데없는 장미 향이 풍긴다. 덩굴장미 가득한 정원이 나타나더니 순식간에 거대한 그 쓰레기 더미를 덮어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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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담을 넘는 덩굴장미


 

사십여 년 전의 어느 토요일 오후. 동네 이웃들과 함께 여름맞이를 하던 시절이었다. 정원 한 편이 부산스러웠다. 석유 버너에 군용 반합 통이 놓였고, 옆집에서 가져온 돼지고기가 지글지글 구워졌다. 장미 향과 고기 냄새가 골목에 진동했다. 냄새에 이끌려온 동네 아이들이 집 앞에서 기웃거리자, “어서 들어오렴, 너희도 한 점씩 먹고 가.”

 

지금의 나보다 훨씬 더 젊었던 아버지는 아이들을 즉석에서 초대했다. 기분 좋게 술기운이 오른 그는 골목 요리사를 자처했다. 한 번, 두 번 고기 잔치가 이어지자 앞집, 그 옆집, 그 건넛집, 골목을 마주한 이웃들이 우리 집 정원에 들어섰다. 손에는 술 한 병, 과일 한 소쿠리, 푸성귀를 들고서.

 

영동 7단지라고 불린 그곳 청담동. 멋진 양옥들 사이에 자리한 산 67번지 골목엔 본래 삭막함이 가득했었다. 육중하고 화려한 철 대문들은 굳게 닫혀 있었다. 골목의 적막한 기세에 눌려 아이들의 목소리는 기어들어 가기 일쑤였다. 우리 집의 널따란 정원은 그런 골목을 피해 담장 안에 꼭꼭 숨어 있었다.

 

이사 온 때부터 줄곧 아버지는 쉬는 날이면 잔디며 묘목을 사 들고 왔다. 이른 아침부터 식구들을 깨워 잔디를 떼고 나무를 심고 잡초를 뽑게 했다. 아버지의 열심이 가족들 눈엔 욕심으로 비쳤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시간이 흐르면서 마당은 정원으로 거듭나기 시작했다. 푸른 잔디밭 주위로 담장석을 두르고 단을 올렸다. 담장을 따라 덩굴장미가 자리를 잡았고 정원석 사이에서는 울긋불긋 채송화가 고개를 내밀었다. 그런가 하면, 정원 한쪽에 널따랗게 단을 올려 등나무를 심고 그 밑에 둥글넓적한 경관석을 멋지게 놓았다. 두메산골이 고향인 아버지에게 정원 가꾸는 일은 사명처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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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은 그대로인데 향은 예전만 못하다 

 

 

어느 날, 옆집 아저씨와 외할머니의 아닥치는 소리가 조용한 골목을 울렸다. 아저씨는 덩굴장미들이 자기 집 쪽으로 넘어가서 담장을 더럽힌다고 소리쳤다. 높은 담장 때문에 서로 얼굴도 보지 않고 욕지거리만 주고받았다. 밤이 깊어 퇴근한 아버지는 그 얘기를 듣고 옆집으로 직진했다.

 

주말에 일찍 퇴근한 아버지 손에 붉은색 노끈이 들려 있었다.

형님! 줄을 던집니다. 잘 받으세요.”

염려 말고 던져.”

어찌 된 일인지, 전날의 팽팽한 전운은 사라졌다. (2편에서 계속됩니다)

¹재즈스캣 : 뜻이 없는 음절로 이어진 소리를 내 즉흥적으로 노래하는 재즈 창법

²호라티우스 : 풍자시ㆍ서정시로 명성을 얻어 아우구스투스 황제의 총애를 받았던 로마 서정시의 완성자

 

 

50+에세이작가단 정호정(jhongj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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