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블 아이리시 위드 어 더치 샌드위치(Double Irish with a Dutch Sandwich)’. 얼핏 식사 메뉴처럼 들리는 이 문구는 사실 글로벌 대기업들이 즐겨 쓰는 절세 수법을 일컫는 이름이다. 복잡한 절세 기법의 핵심이 아일랜드와 네덜란드에 세운 페이퍼컴퍼니라서 이런 이름이 붙었다. 구글과 애플 등 여러 유명 다국적 기업들은 이 방법을 이용해 원래 내야 했을 법인세의 4분의 3가량을 감면받아 왔다. 이를 통해 기업들이 절감하는 돈은 연간 총 300조원에 달했다.

이런 상황을 속 끓이며 바라보던 국가들이 수년간의 논의 끝에 칼을 빼들었다. 지난 7월 1일 한국을 비롯한 139개국 협의체는 2023년부터 ‘디지털세(稅)’를 부과키로 잠정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IT 대기업들이 여러 나라에서 수익을 내면서도 세금은 본사가 있는 본국에만 내거나, 조세피난처에 서류상 회사를 두고 세금을 회피하는 경우를 막기 위해서다. 디지털세의 내용과 도입 배경, 한국과 우리 기업들에 미치는 영향 등을 정리했다.

글. 한국경제신문 성수영 기자

2023년 도입되는 디지털세, 내용은

디지털세의 핵심은 글로벌 대기업들이 매출이 발생하는 국가에 법인세를 더 내도록 하고, 최저한세율을 15%로 정하는 것이다. 자세한 과세방식은 다소 복잡하다. 기업의 글로벌 매출을 합산한 뒤 이익률 10%에 해당하는 이익을 통상이익으로, 나머지 이익을 초과이익으로 분류한다. 통상이익 전체와 초과이익 중 70~80%는 기존처럼 본사 또는 사업장 소재지에 납부한다. 초과이익 중 나머지 20~30%는 매출이 발생한 시장 소재국에 과세권한을 배분해준다. 또 15% 미만으로 저율 과세하는 국가에서 사업을 하는 법인은 세금 차액을 모회사 소재국 등에 내야 한다.

디지털세 논의는 유럽연합(EU)이 구글·페이스북 등 미국을 기반으로 하는 글로벌 IT 대기업들을 겨냥하면서 시작됐다. 이들 기업들이 세계 각국에서 수익을 내면서도 세금은 본사가 있는 본국에만 내거나, 조세피난처에 서류상 회사를 두고 세금을 회피하면서 유럽을 중심으로 비판 여론이 높아졌다. EU는 2018년 디지털 세제안을 내놨고, 영국은 독자적인 안을 지난해부터 시행 중이다.

도입 필요성에 공감하는 국가들이 늘면서 디지털세 부과는 거스를 수 없는 대세가 됐다. 미국 등 IT 대기업들이 다수 소재한 초강대국도 이런 흐름을 막을 수는 없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와 주요 20개국(G20) 포괄적이행체계(IF)는 수년간 디지털세 부과 여부와 내용 등을 놓고 협상해왔고, 지난 1일 마침내 디지털세 과세 원칙과 일정 등 큰 틀의 합의에 성공했다.

G20 재무장관들은 디지털세 등에 대해 오는 9일 이탈리아 베네치아에서 논의한다. 10월까지 세부 쟁점 합의를 끌어낸 뒤 2022년 서명하고, 2023년 발효시킨다는 계획이다. 미국 일본 유럽 한국 등 주요국이 대부분 합의했기 때문에 도입 시기는 일정대로 2023년이 될 가능성이 높다.

구글·애플 ‘직격탄’, 국내 기업은 타격 없을 듯

디지털세 부과 대상은 글로벌 연결매출이 200억유로(약 27조원)면서 이익률 10%를 넘는 기업이다. 이 기준에 따르면 구글 애플 등 100여 개 글로벌 대기업들이 대상이 될 가능성이 높다. 한국 기업 중에서는 삼성전자가 해당할 것으로 전망된다. SK하이닉스도 이익률에 따라 적용 대상이 될 가능성이 높다. 현대자동차와 LG전자, LG화학은 매출액 기준을 충족하나 이익률이 낮아 디지털세를 내지 않아도 될 전망이다.

디지털세 부과시 삼성전자는 국내에 내던 세금 중 일부를 떼 매출이 발생한 해외국 정부에 줘야 한다. 예컨대 작년에 삼성전자가 국내에 냈던 조세공과금 총액 11조1000억원을 기준으로 계산하면, 디지털세 부과 이후에는 이 중 4000억원을 떼서 외국 정부에 나눠주게 된다.

구글과 애플, 넷플릭스 등 세계 각국에서 막대한 매출을 올리면서도 해당국에 거의 세금을 내지 않았거나 절세를 위한 각종 편법을 총동원했던 기업들은 각국에서 직격탄을 맞을 전망이다. 하지만 삼성전자의 전체 법인세 부담은 늘어나지 않는다. 합의체는 조세피난처 등을 활용하지 않고 정상적으로 세금을 내왔던 기업들의 경우 세금 총액을 늘리지는 않겠다는 입장이다.

다만 향후 디지털세 과세 대상 기업이 대폭 늘어날 가능성은 있다. 130개국은 이번 합의문에서 디지털세 운영 결과를 참고해 2030년 매출 기준을 100억유로(약 13조5000억원)로 낮추는 것을 검토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이 경우 과세 대상 기업은 100곳에서 수백 곳으로 늘어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한국 기업 중에서도 디지털세를 내는 기업이 급증할 가능성이 있다.

한국 정부에 들어오는 세금은 늘어나

디지털세 합의로 한국 정부는 향후 더 많은 세금을 걷을 수 있을 가능성이 높다. 삼성전자 등이 국내에 내는 법인세가 조금 줄어들 수 있지만, 구글과 애플 등 글로벌 정보기술(IT) 기업의 세금 납부가 큰 폭으로 늘어날 가능성이 높아서다.

구글과 애플, 페이스북, 넷플릭스 등 글로벌 IT기업들은 향후 우리 정부에 막대한 디지털세를 추가로 내야 할 것으로 전망된다. 국세청이 지난해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국내에서 사업하는 글로벌 IT 기업 134곳이 2019년 납부한 세금은 2367억원이었다. 지난해 매출 5조3000억원인 네이버가 낸 법인세 4500억원의 절반 수준이다. 반면 구글의 앱 거래시장인 플레이스토어의 국내 매출만 2019년 기준 6조원에 이른 것으로 추산된다. 그럼에도 구글은 지난해 국내 광고 사업만을 기준으로 매출과 영업이익을 신고했다.

글로벌 최저한세 도입 덕분에 세금을 더 걷을 수 있는 기업들도 있다. 15%의 최저한세율이 적용되면 국내에 본사를 두고 법인세율이 낮은 해외 국가에 자회사를 둔 기업에 대해서는 법인세를 추가로 부과할 수 있다. 법인세 세율이 낮은 국가에 본사 및 자회사를 두고 한국 법인의 수익을 보내는 애플과 샤넬, 에르메스에 이를 적용할 수 있다.


[상기 이미지 및 원고 출처 : 신한 미래설계포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