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은 영혼(YOLD)을 위한 습관 : 필정시저(必整匙箸)

-


시저(匙箸)란 흔히 수저를 말하는 것으로 전통적으로 제사장에 놓는 숟가락()과 젓가락()을 가리킨다. 조선시대 영·정조 때 대문장가 이덕무가 어릴 적 수저 끝이 상 밖으로 들쑥날쑥하게 놓았더니 삼촌이 일장 훈계를 했다.

 

 

tip242000570_l.jpg

 

 

필정시저(반드시, 가지런할 , 숟가락, 젓가락저)!’


식사를 준비하거나 마칠 때면 반드시 수저를 가지런히 놓아 손잡이 끝이 상 밖으로 나오지 않게 해야 한다며 그래야 상을 들일 때나 물릴 때 수저 끝부분이 문설주에 닿아 수저뿐 아니라 그릇까지 떨어지는 불상사를 막을 수 있다는 것이다. 밥과 반찬을 다 먹은 것으로 식사가 끝나는 것이 아니라 상을 물릴 때까지 염려해야 제대로 된 식사다. 고수들이 두는 바둑도 진정한 마무리는 대국의 현장이 아니라 승패의 원인을 따져보는 복기(復棋)까지다.

 

사건이 터지면 재발 방지를 위한 대책 마련에 부산을 떠나 여론이 잠잠하면 머리는 물론 몸통, 심지어는 꼬리까지 어물쩍 넘어가는 용두사미(龍頭蛇尾) 행태가 많다. 수저를 가지런히 놓는다는 것은 시작처럼 끝도 정갈해야 한다는 시종여일(始終如一)의 자세다. 삶도 마찬가지다. 흙수저든 금수저든 시시때때로 굴곡진 길을 만나게 된다. 1265년 이태리 피렌체에서 태어난 단테는 9살이 되었을 때 운명의 베아트리체를 만나고 절정기 1300년에는 피렌체 공화정을 통치하는 행정수장(Priore)직까지 오른다. 하지만 반대당(흑당)의 책략에 말려 추방되어 길고 긴 망명생활로 생을 마감한다. 단테신곡의 서막에는 그의 자족적 신세를 한탄하는 듯한 독백이 나온다.

 

 

atharva-tulsi-Uv2BaNZjjvY-unsplash.jpg

 

Nel mezzo del cammin di nostra vita / mi ritrovai per una selva oscura / che la diritta via era smarrita.

우리 인생의 인생의 중반에서 / 나 올바른 길을 잃고 / 어두운 숲 속을 헤매었네.

 

추방 이후 개인적으로 불행한 시기였으나신곡은 인류사적으로는 성경 다음으로 읽히는 인류사의 문학적 보고가 되었다.

 

당나라 시성 두보(杜甫)에게 유종(有終)을 강조한 멋진 권면이 있다. 그가 지금의 쓰촨성(四川省) 동쪽 기주라는 오지에 있을 때 친구의 아들인 소혜(蘇徯)라는 젊은이가 유배되어 실의에 찬 나날을 보내고 있을 군불견간소혜(君不見簡蘇徯)’라는 시 한수를 지어 전했다. ‘소혜, 그대는 보지 못하는가!’쯤 되는 시에서 장부개관사시정(丈夫蓋棺事始定)’라고 한 것이 그것이다. 사내대장부 일이란 관 뚜껑을 덮어야만 결정되는 것이니 실의에 빠져 원망하지 말라는 것이다.

 

 smit-shah-I-U97OozkGs-unsplash.jpg 

 

오랜 시간을 직장에서 근무하다 은퇴한 사람들을 보면 흡사 밤하늘의 별을 보는 것 같다. 위성, 행성, 항성, 유성, 소행성, 혹성, 혜성, 신성, 인공위성 등으로 이중에서 전직, 전관을 빙빙 도는 인공 위성들이 많다. 이들을 예우라는 이름으로 앉히는 사슬도 대단하다. 나는 무슨 별이고 너는 어느 별에서 왔느냐는 물음에 당당하지 못한 순간 꼰대, ‘라떼, ‘인공위성이다.

 

한때 골프황제로 불린 우즈는 골프엔 두 상대가 있다. 자기 자신과 골프 코스다. 이 둘에 승리하면 잘 되는 것이다라고 했다. 어떤 코스에 들어서면 갈등하게 된다. 잘 맞으면 온그린 하지만 잘못하면 대량 실점하기 십상이다. 이때 아쉽지만 현명한 비책은 돌아가는 것이다. 코스설계자의 보이지 않는 힘과 싸우지 말고 한풀 죽이는 것이 결국은 승리하는 것이다. 조직이나 기관에 맞짱뜨려면 자신의 실력과 기량을 셈한 뒤 판단하라. 자신과의 싸움에 무너지면 페이스를 잃게 된다. 타이거 우즈 이름을 딴 타이거의 10야드 규칙이 있다. 미스 샷이나 환상의 샷에 대해 화내거나 우쭐하지 말고 10야드, 100m를 지나치는 순간 잊는 것이다.



은퇴의 순간에도 되새겨볼 말이다. 화려했던 시절, 암울했던 기억도 다 지우고 새로운 단계에서 새롭게 출발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는 순간의 라떼터널도 빠져 나올 수 있다. ‘이라고 생각되는 순간들이 있다.

하지만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It ain’t over till it’s over)’

그러니 겸손한 가운데 초심으로 무쏘같은 기상으로 황소처럼 우보천리(牛步千里)하는 거다

 

끝이 좋으면 만사가 좋다.(All's Well That Ends Well)’ 성경에도 일렀다.

누구든지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다보는 사람은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하지 않다!’

 

 

 

50+시민기자단 황용필 기자 (yphwang@skku.edu)

 

 

 

 

20210601_서울시50플러스재단_시민기자단_웹명함_18명_수정_outline_황용필.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