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새벽 5시 10분 알람이 울린다. 아직은 동이 트기 전이라 주위는 희끄무레하다. 알림이 채 몇 번 울리기 전에 벌떡 일어난다. 꾸물거릴 시간이 없기 때문이다. 간밤에 미리 준비해둔 운동복을 입고, 햇볕 잘 받으라고 밖에 놓아둔 분재들에도 물을 준다. 어느새 5시 40분. 갈아입을 옷을 챙겨 넣은 가방을 들고 남편과 함께 집을 나선다. 같이 운동하는 동호회의 모임에 가기 위해서다.

일요일이면 15년 가까이 매주 반복하는 일상이다. 겨울에는 정모(정기모임) 시간이 30분 늦춰지는 게 전부다. 지방 마라톤 대회라도 가는 날이면 더 일찍 일어나야 한다. 비나 눈이 와서 정모가 취소되는 경우는 일 년에 서너 번 정도다.

개인적으로 뛸 때는 비도 마다하지 않는다. 여름에 비를 맞으면서 뛰는 우중주(雨中走)는 색다른 경험을 만든다. 아무 계절에나 우중주를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20도 이하에서 비를 맞으면서 뛰다가는 자칫 감기에 걸리기 쉽다.

 

[사진1] 하늘공원을 달리는 필자 일행

 

 

여름 우중주는 색다른 경험

결혼 29주년을 맞아 29km를 뛰기로 남편과 의기투합한 날에도 비가 내렸다. 낮에는 멀쩡하다가 달리기를 하러 나가려니 날씨가 꾸물거렸다. 비가 와도 고~를 외치면서 강북 쪽 양화대교 아래에 차를 세워놓고 출발했다. 2km를 달려 성산대교에 도착. 편의점에서 초콜릿 바 하나를 사서 둘이 나눠먹고 가양대교 방향으로 이어서 달리기 시작한다. 잠깐이지만 비가 내린 덕분(?)에 라이더들이 철수했고 길은 더욱 호젓해졌다. 난지캠프장 옆을 지나가는데 고기 굽는 냄새와 라면 냄새가 한창이다. 연휴를 맞아 저녁시간을 즐기는 사람들이다. 상큼한 공기와 코를 자극하는 맛있는 냄새를 동시에 즐기면서 편안한 속도로 달려간다. 출발점에서 5km 정도 지났을까. 갑자기 소나기가 퍼붓기 시작했다. 우중주도 좋지만 비를 맞는 어깨가 아플 정도라면 문제가 다르다. 발걸음을 빠르게 해 본다. 달리기를 중단하고 싶어도 어차피 차가 있는 곳까지 뛰어가야 하기 때문에 다른 대안이 없다.

가양대교를 지나 서울시와 고양시의 경계지점에서 성산대교 방향으로 되돌아왔다. 다행히 소나기가 따라오지는 않는 건지, 어느 새 비가 그쳤다. 주위는 어둑해지고 라이더들이 모두 가버린 도로는 한적하다. 소나기에 젖은 옷에서는 어느 새 후끈한 열기가 느껴진다.

편의점에서 초콜릿 바를 사서 또 다시 둘이 나눠먹고 수돗물을 마신다. 일반적으로 달리기를 할 때는 10km마다 간단한 먹을거리와 물을 마시는 게 좋다. 다행히 요즘 한강에는 곳곳에 편의점이 있는데다 적당한 거리마다 수도가 있어서 아주 편하다. 어느새 시간은 저녁 8시를 넘어서고 있다. 양화대교를 다시 지나쳐서 서강대교, 마포대교 순으로 뛰어간다. 한강에서 달리기를 한지 10년이 넘고 보니 한강 다리의 순서는 물론, 다리 사이의 거리까지도 훤하게 꿰고 있다.

시원하게 불어오는 바람 덕분에 땀도 크게 나지 않는다. 빨리 달릴 필요도 없으니 익숙한 주변 풍경을 즐기기로 한다. 편안한 기분으로 동호대교를 통과해 500m를 더 가서 턴 한다. 여기서 돌아서야만 29km를 딱 맞출 수 있다. 동호대교 아래 편의점에서 이번에는 초콜릿 바와 이온음료를 사서 다시 둘이 나눠 먹었다.

슬슬 피곤해지기 시작했지만 주변 풍경을 즐기는 데는 큰 지장이 없다. 한강 달리기 코스 주변에는 꽃양귀비를 비롯해 온갖 이름 모를 꽃들이 한창이다. 29km 목표에서 남은 거리는 5km. 오락가락 하던 빗방울이 다시 거세지기 시작한다. 소나기를 뚫고 조금 더 빠르게 달려 차가 주차돼 있는 양화대교에 도착했다.

 

 

[사진2] 한강 달리기 코스에서 본 동호대교

 

사실 마라톤대회 풀코스(42.195km)를 일 년에도 여러 차례 뛰는 나와 남편에게 29km가 크게 먼 거리는 아니다. 거리보다는 결혼기념일에 남편과 나만의 이벤트를 했다는 점에서 의미를 두기로 했다. 시간은 어느 새 밤 10시가 다 됐다.

완주 기념으로 남편과 하이 파이브를 하고 곧바로 집으로 돌아왔다. 밤늦게 문 여는 식당을 찾을 수야 있겠지만 왠지 마무리는 집에서 해야 할 것 같아서다. 간단한 상차림에 소주 한잔을 더해 결혼기념일을 축하하고 나니 밤 12시다. 시간은 늦었지만 호텔 뷔페가 부럽지 않은 결혼기념일 만찬이었다.

 

 

행복은 돈으로 살 수 없어

우리 돈으로 100조원의 재산을 지닌 워런 버핏 버크셔 해서웨이 회장은 “행복은 돈으로 살 수 없다”고 말한다. 자신의 재산이 갑절로 늘어난다고 해서 그만큼 행복해지는 건 아니라는 것이다.

버핏이 최근 미국 CNBC와의 인터뷰에서 말한 요지는 이러하다. “당신이 지금 10만 달러를 지니고 있다고 하자. 당신은 불행하다고 생각하며 당장 100만 달러를 갖게 된다면 행복해질 것으로 기대한다. 하지만 만약 100만달러를 갖게 되면 상황은 또 달라질 것이다. 주변을 둘러보면 200만 달러를 지닌 사람들이 나타난다. 그 순간 당신의 행복은 사라지고 만다“

실제로 국내의 한 금융기관에서 비슷한 내용을 발표한 적이 있다. 하나은행이 부동산을 제외한 금융자산 10억원 이상을 가진 한국의 부자들 1000명을 조사했더니 “10억~30억원 부자들은 평균 86억원, 30억~50억원 부자들은 평균 100억원, 50억~100억원 부자들은 140억원이 있어야 부자”라고 응답했다. 부자일수록 돈이 더 많은 다른 부자들을 부러워한다는 사실을 그대로 나타낸 셈이다.

버핏은 지금도 50년 전에 구입한 오마하에 있는 아담한 주택에서 살고 있다. 점심으로는 매일 햄버거를 먹는다. 그는 돈으로 행복을 살 수 없다는 사실을 일찌감치 깨달았기 때문에 ‘오마하의 현인’으로 불리는지도 모른다.

미국 컬럼비아대학 엘리자베스 던 교수는 “돈보다는 시간이 행복의 잣대로 떠오르고 있다”고 말한다. 행복의 관점에서 보자면 돈이 아닌 시간의 가치가 더 크다는 것이다. 던 교수는 미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강조했다.

“사람들은 돈을 무제한 지닐 수 없다. 한 가지를 사면 다른 것을 사지 못하게 된다. 이럴 때는 관점을 바꾸면 된다. 돈을 더 많이 벌게 해 달라고 기도하는 대신 지금 가진 돈으로 나를 더 행복하게 해주는 것에 사용하는 방법을 찾으면 된다.”

우리나라에서는 ‘소확행’이 유행이다. 소확행이란 일상에서 느낄 수 있는 작지만 확실하게 실현 가능한 행복을 뜻한다. 달리기로 누리는 소확행은 어떨까. 반드시 달리기가 아니라도 좋다. 걷기든 여행이든 미술관람이든 자신만의 소확행을 한 가지씩 찾아보면 삶이 풍요로워질 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