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부에서 작가가 된 욕망 중년…“이제야 내 삶의 주인공이 됐다” 

<명랑한 중년_웃긴데 왜 찡하지?>의 문하연 작가를 서울 동작구 사당동에서 만났다. / 사진 = 정혜선

 

이름 세글자를 지키고 사는 일은 절대 쉽지 않다. 결혼을 해 아이를 낳아 키우는 동안 누구의 엄마, 누구의 아내, 그리고 누구의 며느리로 살아간다. 그 안에서 ‘나’라는 존재는 희미해져 간다. 물론 남자도 마찬가지다. 그러다 자녀가 자라 부모의 품을 떠나면 헛헛함에 우울감이 몰려오는 게 우리내 중년들의 삶이다. 그런 중년의 삶을 살다 이름을 찾겠다고 나선 이가 있다. 주부에서 당당히 작가로 거듭난 그는 이제 드라마 작가를 꿈꾼다. 욕망 중년의 삶을 살고 있는 문하연 작가가 오늘의 주인공이다.

 

사십대 중년의 엉뚱 발랄하고 때로는 뭉클한 삶의 이야기를 담은 에세이를 언론사에 연재하면서부터 그의 글은 독자들로부터 큰 호응을 얻었다. 누구나 공감 가능한 중년의 삶이 담긴 이야기였기 때문이었으리라. 그리고 그 에세이는 <명랑한 중년_웃긴데 왜 찡하지?>라는 제목으로 세상에 나왔다. 지난 3월 3일 서울 동작구 사당동에서 만난 문 작가는 그야말로 명랑한 중년이었다. 그를 만나 주부에서 작가가 된 여정에 대해 들어봤다.

 

 

 

- 만나서 반갑다. 간단히 자기 소개 부탁드린다.

 

“저는 문하연이다. <다락방 미술관>으로는 여러 번 인터뷰를 했는데, <명랑한 중년_웃긴데 찡하지?>(이하 <명랑한 중년>)로 인터뷰하는 것은 첨이다.”

 

 

 

- <명랑한 중년>이라는 책 제목이 너무 인상적이다. 제목은 누가 지었나.

 

“‘명랑한 중년’은 언론사에 글을 연재할 때 제목이다. 이 제목은 내가 지었다. 책을 출간하게 되면서 ‘명랑한 중년’만으로는 심심한 것 같아 첫째 아들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그때 아들이 요즘 흔히 쓰는 말 중 ‘웃프다(웃긴데 슬프다)’라는 말이 있다고 알려줘 그 말을 응용해 ‘웃긴데 찡하지’로 지었다. ‘찡하다’는 말에 중년이 주는 쓸쓸함을 담고 싶었다.”

 

 

 

- 글을 연재할 당시 독자들의 반응이 폭발적이었다고 하던데, 책은 많이 팔렸나.

 

“사실 <명랑한 중년>이 나오기 전에 <다락방 미술관>이 먼저 출간됐다. 첫 책이었는데도 반응이 좋아 6쇄를 찍었다. 그 책을 통해 제 책을 찾아서 읽어주는 팬층이 생긴듯하다. 그분들 덕분에 두 번째 책 <명랑한 중년>도 잘됐다. 책의 내용을 언론사에 연재할 때, 중년 독자들로부터 메일을 많이 받았다. 갱년기 우울증에 걸려 힘들어하던 차에 저의 글을 보고 위안이 됐다는 메일도 있었다. 그런 메일을 받으면 힘이 나고 살아있음을 느낀다.”

 

 

 

- 돈도 많이 버셨을거 같다(웃음).

 

“사실 책으로 큰돈을 벌기는 힘든 거 같다. 그저 글을 써서 돈을 벌 수 있다는 사실이 신기했다. 책보다는 강연을 해야 돈을 벌 수 있다. 돈이 아니어도 강연은 삶의 또 다른 활력소다. 강연장에 가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하다 보면 아무것도 아닌 내 존재가 주인공이 된 느낌을 받는다. 사람은 이래서 사랑을 받아야 하는구나, 를 느꼈다. 그게 행복이라는 것을 50살이 다 돼서야 알게 됐다.”

 

 

 

- 요즘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어서 그런지 50대로 안보인다.

 

“주로 사랑을 주는 역할에 익숙해져 있다가 사랑을 받아서 그런지 요즘 회춘하는 거 같다(웃음).”

 

 

 

- 주부로 살다 작가가 됐는데, 그 과정이 궁금하다.

 

“정말 상상도 못 했던 일이다.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은 47살부터다. 우연히 신문을 통해 은유 작가를 알게 됐고, 그분의 책을 도서관에서 찾아 읽었다. 책의 내용이 마치 나의 삶을 이야기하는듯해 공감되는 게 많았다. 그래서 은유 작가에게 선생님의 글쓰기 수업이 있다면 참여하고 싶다고 페이스북 메신저로 연락했다. 이를 계기로 은유 작가의 글쓰기 수업에 참여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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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사 연재로 탄생한 <명랑한 중년-웃긴데 왜 찡하지?>는 지금까지 300만 뷰 이상의 누적 조회수를 기록하고 있다. / 이미지 = 평단

 

 

 

- 글쓰기 수업을 듣는다고 해서 모두 작가가 되는 것은 아닐듯하다.

 

“그렇다. 은유 작가 글쓰기 수업에서 40대 후반의 아줌마는 나밖에 없었다. 대부분 20·30대였다. 글쓰기 수업은 매주 주제와 상관없이 글을 써와서 발표하는 수업이었는데, 하루는 제가 써온 글을 은유 작가가 보더니 오마이뉴스라는 언론사에 내보라고 했다. 당시에는 오마이뉴스가 뭔지도 몰랐다(웃음). 그렇게 오마이뉴스에 글을 써서 보냈는데, 편집기자가 연락해 왔다. 글이 유머 있고 찡해서 좋다며 연재하자고 하더라. 그렇게 연재를 시작하게 됐다.”

 

 

 

- 처음 연재 제안을 받았을 때 어땠나.

 

“정말 너무 떨리고 긴장됐다. 2주에 하나씩 글을 써야 한다는 부담감도 있었다. 내가 글의 소재를 무한하게 발굴할 수 있을지에 대한 걱정도 됐다. 또 일기 같은 내 글을 읽고 난 뒤 사람들의 반응이 두렵기도 했다.

 

 

 

- 실제로는 반응이 너무 좋지 않았나.

 

”물론 공감해주고, 격려해주는 메일을 많이 받았지만, 여기가 일기장이냐는 식의 악플도 많이 달렸다. 처음 연재를 시작하고서는 악플 때문에 힘들었는데, 6개월 정도 지나서부터는 댓글을 안 보게 되더라.

 

 

 

- 작가가 된다고 했을 때 가족들의 반응은 어땠나.

 

“남편은 저를 완전 우습게 알았다(웃음). 제가 글쓰기 수업을 다닌다고 했을 때, 속으로 쓸데없이 돈 쓰러 다닌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제가 연재를 할 때도 무슨 주제로 글을 쓰는지도 몰랐다. <다락방 미술관>이 출간되자 그때부터 인정하고 도와주기 시작하더라.”

 

 

 

- 지난해 새로운 도전을 했다고 들었다.

 

“맞다. 가극 프로젝트를 맡아 집필했다. 한국 최초 가극집 ‘아파트’다. 지난 2월 28일 네이버TV에서 초연했다. 올 7월 세종문화회관에서 공연한다. 가곡은 처음 써보는 거라 수없이 썼다 지웠다는 반복했다. 그리고 작곡가 선생님을 자주 만나 그분의 머릿속에 담긴 이야기를 알아내려 했다. 좋은 경험이었다.”

 

 

 

- 작가로 활동하면서 이른바 ‘문학 중년들’에게 상담 요청을 많이 받았다고 했는데, 주로 어떤 내용이었나.

 

“공적인 글쓰기와 개인적인 글쓰기의 차이가 무엇인지, 공적인 글쓰기를 준비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이 많았다. 저는 언론사를 통해 글쓰기를 시작했는데, 생각해보면 접근성이 좋은 방법인듯해 많이 권한다. 해당 언론사에 회원가입을 한 후 글을 보내면 된다. 물론 뽑힐지, 안뽑힐지는 알 수 없지만 시도를 해보는 게 좋은 것 같다. 글이 괜찮다면 주제에 대해서는 편집기자가 방향을 잡아주기도 하더라. 저도 그 과정을 통해서 글이 많이 성장했다. 창피하다고 글을 계속 감추면 계란 반숙 같은 존재로 남는다. 내놓아야 단단한 완숙이 된다.”

 

 

 

- 작가님이 생각하는 중년의 욕망이란 무엇인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저는 욕망대로 사는 게 제 욕망이다. 그동안 욕망을 억누르고 욕망대로 살지 못했기에 앞으로는 욕망이 이끄는 대로 살고 싶다. 글을 쓰면서도 더 잘 쓰고 싶다는 욕망, 글과 관련된 새로운 분야에 도전해보고 싶은 욕망들 말이다. 물론 이 욕망이 가족 등 주변에 상처가되거나 피해가 돼서는 안되겠지만, 이제 무조건적인 희생도 없다(웃음).”

 

 

 

- 작가님은 중년이 되면서 욕망을 다 풀고 있는 듯하다. 올해 클래식 관련 책 출간을 앞두고 있으며, 드라마도 쓰고 있다고.

 

“올 1월부터 드라마를 쓰고 있다. 16부작 미니시리즈다. 드라마를 쓰기 시작하면서부터는 밖에 잘 안나온다. 오늘처럼 나왔다 들어가면 이야기에 다시 들어가는 데 시간이 걸리더라.”

 

 

 

- 드라마는 어떻게 쓰게 됐나.

 

“글을 쓰면서 제 욕망을 찾아간다고 했는데, 드라마도 그 욕망 중 하나다. 드라마 작가가 되고 싶어서 <명랑한 중년>을 연재하면서부터 드라마 작가 아카데미에 다녔다. 아카데미에 같이 다닌 작가와 함께 일주일에 한 번씩 줌으로 쓴 내용을 공유하며 크로스 체크를 해주고 있다. 요즘 드라마 <펜트하우스>의 인기가 높은 것을 보고 우린 개연성은 생각하지 말자, 그냥 지르자고 서로 이야기한다(웃음). 갈구치면(방해하면) 죽여버리고, 아쉬우면 점하나 찍어서 살리면 된다고 우스갯 소리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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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작가는 현재 '여군'을 소재로 한 드라마 각본을 쓰고 있다.

드라마 작가로의 새로운 도전을 하고 있는 문 작가의 행보가 궁금하다. / 사진 = 정혜선 


 

 

- 드라마는 어떤 내용인가.

 

“여군이야기다. 지난해 미술치료를 하는 친구의 프로젝트를 도와준 적이 있다. 그 친구를 따라 군부대에 여러 번 갔었다. 군대에 막 들어온 이등병을 상대로 친화력 강화프로그램을 진행했다. 그림을 보면서 자기 이야기를 하며 서로를 알아가는 건데, 8주 프로그램이 끝나면 전우애가 생겨 똘똘 뭉치더라. 그들을 만나면서 여군을 다룬 드라마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됐고, 이들에 관한 이야기를 쓰게 됐다. 여간부들하고 인터뷰도 하고, 유튜브나 국방부 홍보 동영상 등을 통해 분석하며 글을 쓰고 있다. 혼자 다 하려니 버거운 면이 있긴 하다.”

 

 

 

- 로맨스도 있나.

 

“우리 삶의 50%가 로맨슨데, 로맨스가 없어서 되겠나(웃음).”

 

 

 

- 글이 안써지거나 아이디어가 안떠오를 때는 어떻게 하나.

 

“안써질 때 하는 방법이 하나 있다. 반려견과 산책하러 나간다. 한두 시간 정도 산책을 하고 왔는데도 안 써지면 그땐 집안일을 한다. 이야기의 꼬리를 놓지 않고 일을 하다 보면 문득 떠오를 때가 있다. 그것마저도 안되면 펜트하우스를 본다(웃음).”

 

 

 

- 하고 싶은게 이렇게 많았는데, 그 긴세월 어떻게 누르고 살았나.

 

“욕망이 용수철처럼 눌러있다 한 번 튀어 오르니까 주체가 안 된다. 저도 용수철에서 한 발을 뗐을 땐 진통이 있었다. 당시 둘째가 고3이어서, 엄마 손이 가장 많이 필요할 때라 작가가 되는 게 맞는지 스스로 갈등이 많았다. 그런데 임계점에 도달한 상태여서 그런지 포기가 안 되더라. 지금은 제가 있어야 할 자리를 찾은 듯한 느낌이다.”

 

 

 

- 작가님처럼 풀지 못한 욕망을 품고 있는 중년들에게 힘이 되는 한마디를 해준다면

 

“조금 더 기다리라고 말하고 싶다. 누가 뭐라 해도 포기할 수 없는, 기다릴 수 없는 때가 오더라. 계속 안 되는 이유를 찾고 있다면 내 욕망이 아직은 접어지는 단계라는 것이다. 더는 안 되겠다는 단계에서 시작해야 폭발력도 있고, 장애가 생겼을 때 쉽게 그만두지 않는다. 그 시기를 기다리면서 소소하게 돌파구가 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하라고 말하고 싶다.”

 

 

 

- 이 책의 부제가 ‘흔들리고 아픈 중년을 위한 위로와 처방’이다. 중년은 왜 위로가 필요할까.

 

“여태 남을 위로만 하고 살아서 그렇다. 위로만 하고 살다 보니 정작 본인은 텅텅 비어가는 거다. 그러니 누군가가 나를 반짝이는 눈으로 쳐다만 봐도 설레고 행복해지는 게 중년이다.”

 

 

 

- 앞으로 쓰고 싶은 책이 있다면.

 

“올해 드라마 각본을 완성해 끝마친 후엔 미술관 책을 다시 쓰고 싶다. 기존에 썼던 <다락방 미술관>은 기사 형식을 써서 대중적이었다면, 이번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숨은 작가들에 대한 이야기를 쓰고 싶다. 작가의 서사는 빼고 그림에 관한 이야기를 담고 싶다.”

 

 

 

-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제가 이제 50대인데, 저 스스로 나이에 갇히는게 많더라. 나이에 맞는 행동, 나이에 맞는 처신, 나이에 맞는 옷차림 등…. 그런데 나이에 맞는게 아니라 커피맛 하나라도 ‘나’에게 맞는 것을 찾아서 행복을 느끼라고 말하고 싶다. 행복은 멀리 있지 않다는 것을 저와 같은 중년들이 알았으면 좋겠다.”

 

 

[상기 이미지 및 원고 출처 : 라이프점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