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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사마에게>

 영화 <사마에게> 포스터

아이들을 보고 싸우면서 큰다고 하듯이 인류는 전쟁하면서 변화하고 성장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미시적 관점에서의 전쟁은 비극을 넘어 끔찍하다. DMZ 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에 출품한 ‘사마에게(For Sama)’는 다큐멘터리라는 날 것 그대로의 모습으로 전쟁을 들여다본 영화로, 영화를 보는 내내 힘들었으며 충격과 여운이 쉽게 사라질 것 같지 않다. 

영화는 2016년 여름 시리아 정부군에 포위되었던 6개월간 알레포에 남아있는 단 하나의  임시 병원에서 벌어진 일들을 6개월 된 아기를 키우는 엄마의 눈으로 필름에 담은 목격담이다. 영화의 감독이자 카메라맨이며 내레이터인 와드는 알래포 대학에 진학한 후 시리아의 독재자인 아사드 대통령을 향한 저항운동에 참여하면서 시민군을 치료하는 의사 함자를 만나고 천사 같은 딸을 낳아 키우게 된다. 반군 마을의 주민들이 몰살된 장면과 친구들의 죽음을 목격한 와드는 핸드폰을 시작으로 카메라, 친구에게 빌려 온 드론까지 사용하면서 병원과 그 주변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을 필름에 기록한다. 이 같은 기록이 와드가 자신과 딸의 죽음을 무릅쓰면서 알레포를 떠나지 않는 중요한 이유다. 그녀가 죽어도 전쟁의 기록은 남게 되니까.

첫 장면부터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 카메라가 흔들리며 폭격이 시작된다. 깜깜한 화면 속 공포에 질린 사람들 소리와 그 와중에도 환자를 위해 최선을 다하는 의료진 사이로 사마를 찾는 여인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린다. 그리고 분홍색 재킷을 입고 평온하게 젖병을 문 사마의 모습이 나타난다. 지하 방공호 안에서 카메라를 향하여 젖병을 던지며 보채는 아기와 아기를 달래는 아빠의 모습이 밖의 세상을 파괴하는 어른들의 공격적인 모습과 대비된다. 사마는 와드가 전쟁이라는 극한의 상황에서 낳은 딸의 이름이다. 

한 여인이 아들의 이름을 울부짖으며 병원으로 들어온다. 엄마는 죽은 아들을 부둥켜안고 절규한다.

“모하메드, 엄마가 왔어. 너에게 줄 우유를 구해 엄마가 왔어.”

엄마는 그 모습을 필름에 담는 카메라를 쳐다본다. 

“지금 상황에서 카메라를 들이댄다고?”라며 소리치다 말고 

“필름에 담아!”라고 외친다. 

엄마는 자신의 비극을 세상에 알리고 싶었고 와드는 그 일을 했다. 

만삭의 산모가 의식을 잃은 채 병원으로 실려 온다. 의사들은 급하게 제왕절개를 시작한다. 렌즈의 초점은 양수를 뒤집어쓴 채 축 늘어진 생명 없는 아기에 맞춰진다. 폭격으로 죽은 신생아의 모습에 속이 메슥거렸다. 수술용 장갑을 낀 커다란 손이 아기의 가슴을 누르며 심폐소생을 하지만 희망이 없어 보인다. 의료진은 아기를 거꾸로 들어 흔들고 때리고 관객은 미끈거리는 회반죽으로 범벅을 한 아기를 그만 놔 주었으면 할 때, 아기는 눈을 뜨고 울기 시작한다. 아기를 통하여 우리는 희망을  본 것이다(산모도 목숨을 건졌다.).

이 밖에도 동생의 시체를 안고 오는 어린 형, 얼굴 한쪽이 함몰되거나 여기저기가 찢겨나간 피투성이 부상자들의 모습, 한 명이라도 살리려고 분주히 움직이다 그 역시 폭격의 희생자가 되는 의사들, 이러한 다양한 모습들이 연출이나 분장 없이 그대로 노출된다. 그러나  때로는 농담을 하며 히히덕거린다든지, 파괴된 통학버스 안에서 노는 아이들의 순진한 모습들도 보인다. 공습으로 급히 지하로 피신한 세 아이의 엄마는 자는데 머리로 물이 쏟아져 수도관이 터졌나 했더니 어린 딸이 공포에 질려 오줌을 싼 것이라며 웃으며 이야기한다. 

2016년 12월 알레포에 남아있는 사람들에게 러시아로부터 최후의 통첩이 날아든다. 알레포를 떠나라고. 와드는 사마에게 묻는다.

“사마, 알레포를 기억할 거니? 너는 여기 남아있는 엄마를 원망할 거니? 아니면 지금 여길 떠나는 엄마를 원망할래?”

크리스마스 나흘 전 와드 가족은 결국 알레포를 떠났다. 남편 함자와 함께 와드가 세상으로 가져 나온 것은 사마와 5개월 된 뱃속의 둘째 딸, 그리고  시리아의 참상을 담은 12개의 하드 드라이브였다.  

영화의 배경인 시리아 북부 도시 알레포(Aleppo)는 지금 재건 중이라고 한다. 하지만 찬란했던 역사 유적과 삶의 터는 철저하게 파괴되었고 아사드는 여전히 철권통치를 하고 있다. 그리고 그곳에 살던 사람들도 죽거나 살아있다 해도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회복 불가능한 상태로 남아 있다. 기적적으로 살아남았던 산모와 아기는 아직 살아있을까? 혹시 운 좋게 난민선을 타고 탈출하다 죽지는 않았을까? 혹은 겨우 살아남아 유럽 곳곳을 비참한 모습으로 떠돌고 있지는 않을까?

그리고 우리의 광주를 떠올렸다.

 

이 글은 9월 27일자 오마이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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