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하면서 배운 할머니의 지혜

 

TV스페셜 프로그램에 소개된 손자 Y는 평범한 성적에도 초등학교 4학년을 그만두고 검정고시를 1년 만에 고등학교 졸업하는 최연소 기록을 세웠다.

손자 Y가 그렇게 도전할 수 있었던 것은 할머니의 칭찬을 기억하며 ‘나는 혼자서 이만큼 해낼 수 있는 아이다’라는 자신감이 있어서였다.

조기교육, 선행교육보다 더 효과적이었던 것은 바로 자신에 대한 믿음이다. 그러면서 손자 Y는 할머니랑 어린 시절을 보낸 걸 다행이라 생각한다. 

 

 

손자 Y : 할머니 나 시험 봤다고 보여드리면 좋아하시더라고요. 잘했다. 10개 중에 4개나 맞았구나. 내가 가르쳐준 것도 아니고 혼자 공부했는데도 이 정도면, 더 열심히 하면 더 잘 하겠구나. 그래서 전 정말 제가 잘 한 줄 알았어요.

 

손자 Y : 엄마를 만나 자랑을 했죠. 엄마 나 10문제에서 4개나 맞았다. 그런데 곧장 꿀밤을 때리시더라고요.

 

할머니는 이미 부모 세대와 손자 Y 이전의 손주들 성장까지 지켜본 경험이 있었다.

그래서 아이들의 발달 단계는 모두 다르고, 아이를 가까이서 지켜보며 기다려주는 지극한 관심이 필요하다는 걸 경험으로 알게 되었다고 할머니는 말씀하신다.

 

할머니는 손자 Y를 기다려주며 항장 자신감을 심어주셨다.

그래서 성적에 두각을 나타내지는 않았지만 매사에 자신감이 넘치고 자신이 결심한 것을 해내고야 마는 손자 Y의 성격은 무엇이든 기다려줬던 할머니가 있어 가능했다.

 

이제 성장한 손자 Y는 할머니와 어린 시절 많은 시간을 보낸 걸 다행이라고 스스로 생각한다.

나쁜 성적을 받아올 때마다 엄마가 야단을 쳤다면, 자신감을 잃었을 것이라고 손자는 말한다. 그리고 할머니도 말씀하시길 큰 손주들이 클 때 많은 실수를 하고나서야 손자 Y를 기다려주고 긍정의 말로 느긋하게 격려할 수 있었다 한다.

 

 

영국의 의사출신 스토퍼드 할머니가 [The Grandparents' Book, 2007]에서 자신의 경험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주변을 보면 손주가 원하는 것을 잘 들어 준다는 이유로 자신을 좋은 할머니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즉 손주들에게 대부분 풍족한 용돈이나 값비싼 선물을 주면 모두 해주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고리타분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손주에게 가장 중요하고 의미 있는 것은 결코 물질적인 선물이 아니다. 부모도 그것을 바라지 않는다.(너무 물질적인 선물에 치중하면 아이의 버릇이 나빠질까봐 조부모를 멀리 할 수 있다).

자식과 손주가 원하는 선물은 사랑을 느끼게 하는 행동과 말, 즉 ‘사랑의 표현‘ 이다.

 

아이에게 부모가 보육자로서 훈육과 책임의 의무를 안고 관심 갖는 것과는 달리 할어버지 할머니는 온전히 사랑과 따뜻한 눈길로 관심을 보인다.

아이들은 이러한 무조건적인 관심을 받으면서 서서히 할아버지 할머니를 다른 주변 사람들과 분리해서 인식한다.

 

 

 

내 손주가 원한 관심은 훈육이 아닌 정다운 친구였다.

처음에는 내게도 육아에 욕심이 있었다.  하지만 받아들이는 손주의 입장에서는 할머니와 멀리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을 것이다.

어느 순간부터 내가 욕심을 버리고 그저 손주들의 친구로 접근하기 시작하자 모든 관계가 훨씬 편해졌다.

 

아이들에게 중요한 의미 있는 친구가 되려면 함께 놀이를 해야 한다. 바닥에 엎드려 집을 짓고, 탑을 함께 쌓는 것이 어린 손주들에게는 소중한 경험이고 공유할 비밀이다.

 

손주가 다 쓴 종이컵으로 로켓을 만들자고 하면 통조림 깡통을 구해서 종이를 찢어 붙인다.  깡통 로켓을 만들어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장난감을 만들어 우주선 놀이를 할 수 있다.

함께 그림을 그릴 수 있고, 땅을 파고 씨앗을 심을 수 있으며, 놀이터에서 흙장난을 할 수 있고, 쇼핑놀이 등 함께 할 수 있는 놀이는 참 많다. 아이들에게 놀이는 사랑과 관심을 받는 느낌을 받는 최고의 선물이다.  그래서 손주와 놀아주는 할머니 할아버지는 손주에게 가장 좋은 친구이다.

 

이탈리아에는 이런 속담이 전해진단다.

‘잘 되는 일이 아무것도 없으면, 할머니를 찾아라.’

 

사람은 누구나 힘들 때 무조건 나를 안아주는 사람을 찾기 마련이다.

무슨 일이 일어났을 때 아이가 할머니를 찾는 것은 평소 할머니가 최고 따뜻했기 때문이다.

무슨 고민거리라도 있을 때 “할머니, 있잖아요 ···” 하며 남에게 털어놓지 못한 이야기를 한보따리 풀어놓을 할머니가 있는 손주는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