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노인의 편이 아닌 것처럼

젊은이의 편도 아니지.

 

시간은 결국

살아 있는 모두를 배신할 걸세.

― 소설 『당신의 노후』 中

 

노인을 혐오하는 ‘혐로’가 확산되고 있다. ‘꼰대’라는 소리는 차라리 애교에 불과하다. 벌레 ‘충’을 붙여 노인을 비하하는 단어를 일상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연금충’, ‘틀딱충’, '할매미'란 말이 청년층에게 회자되고 있다.

 

 

이 말은 노인 세대를 비하하는 말로 틀니를 딱딱거리는 노인, 시끄러운 매미에 할머니를 비유하는 말이다. 심지어 '노인들에게서 투표권을 박탈했으면 좋겠다.'고 인터넷에 글을 올리는 이도 있다. '노인'이라 말조차 점잖은 표현이고 ‘늙은이', '냄새 나는 노인네' 등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세대 갈등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말로 노인으로 살아가기 참 힘든 세상임을 증명한다. 노인과 청․장년 사이에서 대화가 통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이런 세대 갈등이 얼마나 많은지 보여주는 국가인권위원회의 ‘노인인권종합보고서’가 발간되었다.

 

보고서에는 전국 18~65세 청·장년층 500명과 65세 이상 1000명을 대상으로 세대갈등에 대한 설문 조사를 했다. ‘노인과 청년 사이의 갈등이 심하다’고 생각하는 문항이 있었다. 노인 세대들은 44.3%, 20, 30대 사람들은 81.9%가 그렇다고 대답했다. 대부분의 사람이 ‘세대갈등이 심하다’고 생각한 것이다. 청년층은 더 크게 느낀다. 온도의 차이가 심하다.

 

이런 현실을 반영하듯 청년층의 설문 조사 결과 56.6%가 ‘노인 일자리가 늘어나면 청년 일자리가 줄어들 수 있다’고 대답했다. 노인을 위한 복지가 늘어나면 청년층의 세금도 늘어난다고 설문 조사에서 77.1%의 청년층이 그렇다고 응답했다. 이런 현상은 생계문제와 경제가 어려워질수록 더 심해질 것이다.

 

전체 인구 중 65세 이상이 14.2%를 넘어 선 현 상황에서 정부는 더 늘어날 노인을 위한 ‘노인 일자리’를 만드는 것이 불가피하다. 불안한 경제사정으로 일자리를 찾아나서는 노인들이 많다. ‘2018 한국의 70~74세 고용비율은 33.1%로 OECD국가 중 압도적 1위다. OECD 평균 15.2%에 비해 두 배 가까운 비율이다. 65세 이상 인구의 상대적 빈곤은 43.7%로 전년(43.4%)보다 0.3%포인트 올랐다.

 

이처럼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노령화가 진행되는 한국은 많은 문제를 양산하고 있다. 청년들의 고뇌와 더불어 노인을 바라보는 시각이 심각한 반면, 노인층에 해당되는 당사자들의 생각은 과연 어떨까? 그들은 행복지수나 복지제도의 편의가 늘어났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정작으로 노인 4명 중 1명은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는 조사결과가 나왔다. 65세 이상 응답자의 26%가 죽고 싶다고 했고 23.6%는 ‘고독사’때문에 걱정이다.

 

한국중앙자살예방센터에 따르면 2016년 기준 60세 이상 자살은 전체 자살 25.6명보다 두 배나 높고 연령대가 높을수록 올라간다고 한다. 70대 남성 자살은 90.3명, 80대는 150.5명으로 급증하여 한국의 노인 자살률이 OECD 국가 중 가장 높다고 한다.

 

우리 모두 결국에는 노인이 된다. 노인을 싫어하는 사람들도 늘어날 것이고 지금의 ‘혐로’현상도 곧 우리의 미래일 수 있다. 노인이 많아지는 현상은 막을 수 없다. 그러나 고령사회는 일부의 노인이 많아지는 것이 아닌 사회가 전체적으로 함께 늙어간다는 개념이다.

 

50플러스 세대에게 ‘노인 문제’는 곧 ‘내 문제’다. 그러므로 세대 갈등해소를 위한 중요한 다리 역할을 하는 50플러스 당사자들은 청년층의 생각과 고민에 더욱 귀 기울여야 힐 것이다. 그러므로 언제까지 이런 세대갈등을 외면 할 수는 없다. 갈등을 완화할 특별한 배려와 노력이 필요하다. 배려에는 희생이 따른다. 이를 위해 50플러스 세대는 이전의 노인세대가 받지 못한 선배시민으로서의 정신을 확산시킬 필요가 있다.

 

한 때 농경사회는 농사의 지혜를 더 많이 알고 있는 노인은 중요한 역할을 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현대사회는 노인이 되면 돌봄 수혜자로서 늙은이 대접 받고 체념하며 늘 그런 이처럼 살아간다. 이런 연민의 삶보다 선배시민으로 청년에게 멘토가 되는 방법을 연구하고 더 적극적으로 스스로를 위한 교육과 공부가 필요하다. 자기 계발이 더욱 필요하다. 돈이 없다고 품위가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돈 없다고 기죽을 일도 아니다. 돈으로 해결할 수 없는 지혜를 선배 어른들은 많이 가지고 있다.

 

그동안 기존의 유교정신을 비롯한 관념 때문에 전달하는 방식이 문제가 되어 갈등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그러나 세상은 급격히 변하고 있는데 미처 의식하지 못하는 사례들이 있다. “요즘 젊은 것들” 하면 “요즘 늙은 것들”로 돌아온다. “너희는 늙어 봤니”라고 하면 “늙은 게 벼슬이냐”고 한다. '혐로'를 유발시키는 많은 이유가 있지만 노인들의 <사회적 배려 교육>이 부족했던 것도 사실이다.

 

최근 한 노인이 임산부의 배를 발로 차거나, 아르바이트생을 때린 일도 있었다. 자리를 양보하지 않고 예의 없게 행동했다는 이유 때문이다. 어른이라는 이유로 마음대로 행동해도 된다는 생각을 가진 분들이 많다. 부디 가르치려 말고 소통하는 대상으로 관계를 유지하는 것. 젊은이들에게도 배우려는 태도. 다가올 때 따뜻하게 말없이 품어주는 태도를 취해야 할 것이다. 공공장소에서 자리 양보하지 않는다고 야단치거나 큰 소리로 전화하는 태도, 안방처럼 경로석에서 떠드는 태도는 삼가야 할 것이다.

 

지하철에서 서있는 사람이 있으면 한 두 구역 먼저 일어서는 작은 운동도 필요하다. 젊은 사람들도 여러 이유로 피곤하다. 같은 공간에는 우리가 모르는 사연이 많다. 밤새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편하게 누울 곳 없는 고시원으로 갈 수도 있다. 상을 당한 사람도 있을 것이고 실직한 사람도 있을 것이다. 무거운 가방에 어깨가 너무 무거운 학생도 많고 직장상사에게 야단맞고 쓰러질 지경에 있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독거 어르신 전화 상담을 하면서 깜짝 놀란 사실은 가난의 문제보다 고립의 문제가 심각하다는 점이다. 자식에게 해줄 것 다해주고 명절이 되면 오갈 데 없는 현실을 스스로 유발해서는 안 될 것이다. 명절날 집에 있기 불편해서 종로 거리에서 좌판을 깔고 음식을 먹거나 바둑을 두는 모습이 현실이 되어 가고 있다. 그나마 가족과 관계를 잘 유지 하는 사람들은 이런 지경에 이르지는 않는다.

 

세상은 급격히 변하고 있다. 아이들도, 청년들도 힘든 시대를 살아간다. 어른이라는 이름으로 대접받기보다 당당하고 멋진 선배시민으로서의 솔선수범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어떨까 싶다. 복지제도 수혜자로서가 아닌 지혜의 공급자로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필요하다.

 

청년들이 하찮게 여기는 공공일자리라도 일의 가치가 소중해서 경제적 명분보다 앞세울 수 있는 멋진 선배 어른의 모습을 보여준다면 그 성실성을 젊은이들은 배울 것이다. 나이 들어 일하는 모습이 그저 초라하게만 여기지는 않을 것이다.

 

40대에 익힌 취미는 50대의 취미에 영향을 주고, 60대 이후는 새롭게 배우기보다 자신의 취미영역을 줄여 선택활동하기 마련이다. 치매예방을 위해 외국어도 배우고 생존을 위한요리와 관계를 위한 즐거움을 위해 요리도 배워야 한다. 세대 공감을 위한 글쓰기 등 청년과 함께하는 많은 활동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세대를 뛰어 넘은 예절교육이 필요할 때이다. “이 나이에 무슨”이라고 변명하지 않는 자기 계발이 필요하다.

 

화단을 가꾸고 동네 주변을 돌아보고 보살피며 간단한 청소도 하고 장 담그는 법, 막걸리 담그는 법 등등 다양한 삶의 지혜와 생활의 지혜도 전수해보자. 젊은이들이 잘 알지 못하는 영역들에서 자신만의 비법을 전수하는 것이다. 무료강의나 저렴한 경비로 기관에서 배울 수 있는 기회가 늘어나고 있다. 선배시민으로 가르쳐 주기도 하고 끊임없이 배우기도 하는 모습은 매우 고무적일 것이다. 이를 위해 공공기관은 좋은 시설 만들기에 애쓰지 말고 세대 공감을 위한 장소활용 방법을 더 많이 찾아야 할 것이다.

 

경제적 여유가 좀 있는 중산층 이상의 어른들의 의식 전환도 시급하다. "재산을 물려주네. 안 물려주네."라는 논의보다 집과 육아 문제로 고민하는 청년들에게 꿈을 주는 더 많은 방법에 대해 논의가 있어야 한다. "내가 대접을 받네. 안 받네"라는 고민보다 손자세대들이 더 잘 자랄 수 있는 육아환경조성활동을 전개하는 것이 어떨까 싶다. 저의 대학원 학위도 돌아가신 시할머니의 조력 덕분이었다.

 

내 자식의 문제가 해결되었다고 이 사회가 잘 돌아가는 것은 물론 아니다. 주변을 돌아보는 것이 힘들다. 적어도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우리의 경제력으로 가난한 젊은이들을 좌절시키는 부동산을 투기를 하지 말아야 합니다. 당장의 월세에 욕심내다 "아이 낳지 않는 미래"가 도래 한다면 그 뒷감당은 우리 모두가 져야 한다.

 

노인 뿐 아니라 젊은이들조차 오랜 동안 OECD국가 자살률 1위의 불명예를 안고 있는 우리나라에서 어른들이 다양한 분야에서 선배시민으로 멋진 삶을 살아간다면 미래를 향한 작은 통로가 열릴 것이라 생각한다. 기존의 노인 정신이 아닌 새로운 어른으로 끊임없이 노력하는 선배시민 모델이 있다면 노인 비하로 이 사회를 어둡게 물들 지는 않을 것이다.

 

 

이를 위한 끊임없는 의식전환과 자기계발 교육에 동참하는 선배 어른, 예의 없다 부르짖지 말고 매너 있는 어른으로 모범을 보이는 새 어른. 연민을 받는 늙은이에서 넉넉함을 베푸는 선배시민, 부단한 노력으로 차세대와 문제를 함께 해결해가는 멋진 선배시민이 되기를 우리 모두 꿈꾸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