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4월 이건희 삼성그룹회장의 자산이 2조 3천억 원 증발하여 세계부호 순위가 44위로 7단계 하락했다는 뉴스가 여기 저기 보도되었다. 일반인에게는 1조가 아닌 일천만원만 줄어도 엄청난 손실과 충격을 받지만 이들에게 이런 순위 하락이 얼마나 영향을 줄지 가늠키 힘들다. 지금 현재 병석에 있는 그 분에게 '돈과 행복의 의미'는 어떤 것일까. 다양한 상상의 나래가 펴진다.

 

단테의 <신곡>에서 지옥문에 'Lasciate ogni speranza, voi ch'entrate(라샤떼 오녜 스페란자, 보이 낀뜨라떼: 모든 희망을 버려라, 들어오는 그대들이여)'는 말이 있다. 절망조차 용납되지 않는 것이 지옥이다. 이 말은 어떤 희망도 없으면 곧 지옥이고, 희망이 존재하는 한 지옥이 아닐 수 있다. “어떻게 살까와 어떻게 죽을까”는 궁극적으로 같은 지점이다. 그러나 ‘죽음’이란 말을 터부시하는 한국의 준비되지 않은 수명연장은 그리 달갑지만은 않은 현실이 존재한다. 경제적 리스크와 동시에 건강리스크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한국인이 사망 전 병석에 앓는 시간이 선진국에 비해 너무 길다. 국내 65세 이상 11만 2천 420명을 추적 분석한 2016년도 결과, 사망 전 10년 동안 1인이 요양원에서 267일, 요양병원에서 347일 평균 20개월을 보낸다고 인당 평균 2천 800여만 원을 지출한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은 이 중 재원 및 재 입소 일수가 3천일 이상은 1천 464명이고 사망 전 10년을 요양기관에서 보낸다고 한다.

 

우리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할까. 지난 시간을 돌이켜 볼 때 많은 기회가 있었고 많은 시간이 있었다. 어떻게 하면 행복이란 단어를 우리 가슴 속에 새기고 아름다운 마지막 시간을 맞이할 수 있을까. 누구나 행복하게 인생을 마감했다고 하지는 않는다. 한 조사에 의하면 죽기 전 큰 두려움 중의 하나가 자식에게 폐를 끼치는 것이다. 스스로 대소변을 해결 못하고 타인에게 의지할까봐 두렵다고 한다. 또 자신이 평생 살아 온 집을 떠나 사는 것도 두렵다고 한다. 많은 다양한 이유로 우리는 마지막 모습을 두려워한다.

 

버나드쇼의 유명한 묘비명이 있다. '우물쭈물 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다'('I knew if I stayed around long enough, something like this would happen'). 외국엔 이런 독특한 묘비 글이 많다.

"이제야 조지타운에서 주차할 장소를 찾았네!" "난 여기서 행복해...." "이틀만 있으면 나아질 거야." "이제 더는 할 말이 없다." "... 흠, 안 좋아." "내가 지금 이걸 읽고 있다면 좋을 텐데" "염병할 일은 옵니다." "지랄 맞은 인생, 결국은 죽습니다..." "나는 잃고, 그대는 얻고" "그렇게 멍청한 말 좀 지껄이지 마." "망할, 여기 밑은 어둡네." "로버트 클레이 앨리슨. 그는 죽일 필요가 없는 사람은 절대로 죽이지 않았다." "이제 난 네가 모르는 걸 알지롱." "살아생전 마음에 안 드는 초콜릿은 본 적이 없노라." "@kurtmarkoneill의 사랑스런 메모리, 트위터 팔로워 672명, 클럽카드 포인트 1천673점, 6천59만 칼로리 섭취, e베이 판매자 신뢰도 92%, 틴더(데이트 앱) 매칭 횟수 184건, 조깅한 거리 7만6천928km" "웃지 마. 다음 차례는 너야." (출처 http://www.hefty.kr/laugh-at-a-graveyard/ )

우리도 이처럼 묘비에 무엇을 쓸 것인가에 대해 한 번 생각해 볼 일이다. 행복을 말할까. 실패를 말할 것인가. 우리의 행복은 하루아침에 오는 것이 아니다. 습관처럼 작은 행복연습을 하다보면 바람처럼 스며드는 것이라 생각된다. 운명은 습관의 또 다른 이름이라고 한다. 생각은 행동을, 행동은 습관을, 습관은 인격을, 인격은 운명을 낳는다. 건강도 습관이고 정신 건강도 더욱 그러할 것이다. 우리가 무심코 내는 분노 같은 표현은 성격이 아닌 습관인 것이다.

 

나이를 먹다보면 좋은 점은 남의 시선에 신경 쓰기보다 점점 내 마음이 시키는 일에 몰두가 된다. 남은 시간이 짧다고 느낄수록 의미 없는 일도 줄이게 된다. 지나온 시간 자체가 교훈이고 행복하고 가치 있는 일에 시간을 쓰고 싶어 한다. 곁에 있는 사람의 소중함도 더 많이 깨닫고 웬만한 일도 너그러이 넘어갈 수 있다. 전보다 더 많은 여유와 농담도 할 수 있다. 비극보다 희극이 더 많다는 사실도 알게 된다.

 

살다보면 절로 구세대가 된다. 열심히 살아도 구세대가 되기 마련이다. 마음의 성장 없이 성공신화에만 매여 있다면 죽을 때까지 쫓기는 삶을 피할 수 없다. 이제는 현재의 위치에서 돌아 온 생을 인정하고 진짜 하고 싶은 일로 버킷리스트를 실천해보자. 실천하다보면 의외로 많은 돈이 필요치 않는 일들이 많다. 습관의 문제인 것이다.

 

나이 들면 입은 다물고 지갑을 열라는 말이 있다. 돈은 소유의 대상이지 목적이 아닌 것을 우리는 잘 안다. 귀중한 보석도 죽고 나서 주게 되면 상속이지만 살아서 주게 되면 선물이 된다. 결국 적든 많든 물질은 나를 표현하는 수단이 된다. 종로 3가에서 어르신들 사회에서 사장이 되고 회장이 되는 법이 있다고 한다. 용돈으로 술을 한 잔 사면 사장님, 식사를 한 끼 사면 회장님이라 한다. 적은 용돈을 함께하는 모습을 재미나게 표현했다.

 

바쁘게 살아 온 그동안의 삶을 다시 한 번 돌아보자.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된다"는 우리 속담처럼 결과만을 향한 우리의 습관처럼 굳어진 생각들을 내려놓고 마주해보자. 그런 생각들이 우리에게 어떤 결과를 가져 왔는지 우리 세대는 잘 안다. 그래서 우리는 죽을 때까지 포기할 수 없는 것은 행복이다. 행복하기 위한 나만의 습관은 내가 선택한다.

 

어차피 생에 있어 돈, 명예, 사랑을 다 갖추며 살기 힘든 세상이다. 모자란 듯 살다 보면 작은 행복은 곳곳에 널려 있다. 과정 속의 피어난 가치는 한 송이의 꽃이다. 행복은 스스로의 절제와 인내 속에 출발하여 자족하며 사는 삶이다. 스스로의 마음에 피어난 꽃을 외면하지 말고 작은 성공들을 즐기자. 세상과 꾸준히 공감하는 법을 잃지 않는다면 마음속엔 계속하여 꽃을 피울 것이다.

 

<죽어도 행복을 포기하지 마라>

산꼭대기에 오르면

행복할 거라 생각하지만

정상에 오른다고

행복한 건 아니다.

 

어느 지점에 도착하면

모든 사람이 행복해지는

그런 곳은 없다.

 

같은 곳에 있어도

행복한 사람이 있고,

불행한 사람이 있다.

 

같은 일을 해도

즐거운 사람이 있고,

불행한 사람이 있다.

 

같이 음식을 먹지만,

기분이 좋은 사람과

기분 나쁜 사람이 있다.

 

좋은 물건, 좋은 음식, 좋은 장소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것들을 대하는 태도이다.

 

무엇이든 즐기는 사람에겐 행복이 되지만,

거부하는 사람에겐 불행이 된다.

 

정말 행복한 사람은

모든 것을 다 가진 사람이 아니라,

지금 하는 일을 즐거워하는 사람,

자신이 가진 것을 만족해하는 사람,

하고 싶은 일이 있는 사람,

갈 곳이 있는 사람,

갖고 싶은 것이 있는 사람이다.

 

- 김홍식 <죽어도 행복을 포기하지 마라>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