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인터뷰] 인생 후반전은 평화롭게 그리고 단단하게

 

인천시 강화군 양도면의 어느 한적한 마을. 탁 트인 들판 너머로 마치 결계를 친 듯 산봉우리들이 해무(海霧)에 갇혀 있는 풍광이 그림처럼 펼쳐져 있다. 섬은 평화로움과 격동이 쉴 새 없이 교차하는 곳이다. 대지를 가르는 시원한 바람이 가는 빗줄기와 함께 날아들자 한여름의 더위가 이내 사라진다.

그 바람을 느끼며 황덕명 씨 집으로 들어섰다. 대문이 없는 집이라 앞마당이 곧 들판으로 향하는 작은 길이다. 그 길 옆으로 작은 가옥 두 채가 나란히 서 있다. 오른쪽은 도장리 마을도서관이란 작은 간판이 걸려 있고, 왼쪽 가옥엔 목재로 된 작은 문이 보인다. 왼쪽 가옥이 바로 황덕명 씨의 사무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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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덕명 씨 앞마당에서 바라본 전경. 탁 트인 들판 너머로 산봉우리들이 보인다 시민기지단 권무혁 기자

 

 

24년 전 강화도에 정착한 이유,

매일 밤 별빛이 쏟아지는 곳에서 후반전 인생을 꿈꾸며

 

밤이면 별빛이 쏟아지지 않냐고 물었더니 대뜸 그렇다.”면서 너털웃음을 터뜨린다. 황덕명 씨는 올해 만 60세다. 어느 날 문득 서울 생활을 접고 강화도에 내려온 때는 24년 전인 1999년이다. 갑작스럽게 강화행을 택한 이유를 물었더니 서울 생활을 벗어나 고향 같은 곳에서 일하고 싶은 충동이었다고 한다. 그 충동이 24년째 이어지고 있는 것일까? 몇 가지 질문을 던졌다.

 

Q : 왜 강화도를 선택했나요? 어찌 보면 강화에 귀농한 것 같기도 하고요.

A : 강화에 내려오기 전에 서울에서 출판사를 운영했어요. 강원도 촌놈 출신이어서 그런 것인지 숨 막히는 서울 생활이 힘들었어요. 강화도가 고향 같은 느낌이 들었었는데 서울과도 멀리 않은 곳이라 어렵지 않게 결정했어요. 그러니까 처음에는 일터를 옮긴 거죠. 그러다가 출판사마저 직원에게 넘겨주고 농사일을 시작했어요. 이전과는 전혀 다른 삶을 시작한 셈이죠.

 

Q : 그렇다면 2009년 그때가 은퇴를 하고 인생후반전 출발점에 섰다고 볼 수 있겠네요? 그 이후 지금까지 15년을 어떻게 보내신 건가요?

A : 생업을 중단했으니 은퇴라 할 수 있죠. 재정적인 면을 고려하지 못한 결정이었고 그 때문에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기도 했어요. 사실 이윤을 만들어 직원들 월급 챙기고 회사를 키우는 비즈니스 활동 자체에 염증을 느꼈고, 농어촌에서 노동하는 삶을 살겠다는 생각이 강했던 거죠. 하지만 현실은 엄혹한지라 농사를 지으면서 최소한의 생활비를 벌어야 했고 목수 일도 하면서 버텼어요. 아내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여기 이 도서관을 짓는 데에도 아내 역할이 절대적이었어요. 교육 문제에 관심이 많아 강원도 춘천과 홍천에서 몇 년간 대안학교 활동도 했어요. 어찌 보면 이곳 강화에 완전 정착한 것은 2019년부터라 할 수 있어요.

 

Q : 24년 동안 강화에 터를 잡았는데, 2019년부터가 완전 정착이라는 의미는 무엇인가요?

A : 나름의 과정이었던 것 같아요. 2002년에 도서관 건물을 짓고 생활학교를 개설해 체험학습 프로그램을 활발하게 진행하기도 했어요. 그렇지만 그런 활동들을 사업화한다거나 장기적인 프로젝트로 연결하려는 시도는 못했어요. 그러다가 많은 시간이 흐른 후 202341일에 도서관을 재개관하게 되었어요. 지난해에는 도서관에 화재가 나 많은 책들을 버리는 아픔을 겪기도 했고요.

 

Q : 그러면 앞으로 도서관 운영계획은 무엇인가요? 그리고 인생 후반전 목표는요?

A : 2002년부터 진행했던 직장인, 시민단체, 대학생, 중고생들을 위한 체험학습 경험을 살려 소박하나마 의미 있는 일들을 계획하고 있어요. 도서관이라는 열린 공간을 통해 삶의 지혜를 나누는 인문학 강좌, 초청 강연회 등을 열고 있어요. 중고등생이나 대학생들을 위한 체험학습 프로그램도 준비하고 있고요. 무엇보다 도심을 떠나 자연의 소리를 들으며 하룻밤을 보낼 수 있는 공간으로 개방하고 있어요. 실제로 옛 지인들을 중심으로 많이들 와서 지친 육신을 달래며 서로를 위로하는 시간을 갖곤 합니다. 인생후반전이란 말은 좀 부담스럽네요. 올해 만 60세가 되었는데, 말 그대로 이제부터가 시작인 거죠. 구체적인 계획은 하나씩 만들어가고 있는 중인데, 큰 방향을 얘기하자면 평화롭게 사는 겁니다. 그리고 더 단단하게 내 삶을 꾸려서 나누고 소통하는 삶을 살고 싶어요. 이런 마음들을 모아 몇 권을 책을 쓰려고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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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에서 강연회와 강좌를 진행하고 있는 모습. 황덕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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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덕명 씨의 활동상을 살필 수 있는 자료들. 황덕명

 

가장 효율적인 워케이션,

자연을 벗하며 일과 쉼을 나누는 삶

 

황덕명 씨 집 앞마당 앞에는 저 멀리 병풍처럼 서 있는 산봉우리까지 들판이 펼쳐져 있다. 그중 800여 평 정도의 밭이 그가 매일 농사를 짓는 일터다. 올해는 들깨, 옥수수, 감자를 재배해 일부는 판매하고 나머지는 지인들에게 보낼 예정이다. 지난해 화재 때 도움을 준 사람들에게 보내는 작은 보답이다. 인터뷰 말미에 워케이션(worcation)을 물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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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밭일을 마친 후 하트 포즈를 취하며 웃고 있는 황덕명 씨. 시민기자단 권무혁 기자

 

 

일과 휴가를 함께한다는 워케이션이라는 단어 자체가 낯설긴 해요. 그만큼 일의 효율이나 삶의 질을 추구하려는 뉴노멀 시대에 부상하고 있는 하나의 트렌드겠죠. 그런데 저는 일찍 강화에 내려온 탓에 그런 트렌드와는 좀 거리가 있죠. 다만 제 일터가 저 들판이고 노동이 끝나면 제 사무실과 도서관에서 자유롭게 쉼과 즐거움을 찾아요. 아름다운 자연이 늘 가까이 있고, 틈이 나는 대로 자전거를 타면서 강화를 느끼곤 해요. 그런 면에서 보면, 제가 가장 효율적인 워케이션을 하고 있죠. 하하하···.”

 



시민기자단 권무혁 기자(km651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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