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북50+캠퍼스가 야심차게 준비한 개관기념 특강 '50+의 시간' 두 번째 시간이 시작했습니다.

7시 전부터 강당을 가득 채운 시민들이 기다리는 오늘의 강사님은 '개저씨는 왜 혼자가 되었나'라는 주제의 이승욱 박사님이에요.

 

외모부터 범상치 않은 이승욱 박사님 

 

이승욱 박사님은 서촌에서 '닛부타의숲 정신분석클리닉'을 운영하는 정신분석가이자 사람들의 마음 속 고민을 함께 나누는 정신분석 팟캐스트 '공공상담소'의 진행자이기도 합니다. '오늘의 이야기는 보편적 진실이 아니라 박사님이 생각하는 하나의 레퍼런스라고 생각하고 들어달라'는 당부로 본격적인 강의가 시작되었습니다.

 

 

개저씨가 뭐에요?

그런데 오늘 제목에 들어가는 자극적인 단어 '개저씨'는 누구를 가르키는 걸까요? '개'가 들어가는 걸 보니 어쩐지 좋은 의미는 아닌 것 같은데... 

맞습니다. 개저씨는 50대 이상의 '개 같은 아저씨'의 줄임말로 쓰이는 신조어에요. 

사실 '개저씨' 뿐만 아니라 한국사회는 특정 계층이나 부류를 비하하는 단어가 많아요. 자기 아이만 최고라고 생각하고 민폐를 끼치는 엄마들을 벌레에 빗댄 '맘충', 개저씨의 여성 버전인 '김여사', 젊은 여성들을 비하하는 '김치녀' '된장녀', 개념없는 초등학생을 가르키는 '초글링' 등등. 내 마음에 들지 않는 행동을 한다고 해서 한 집단을 싸잡아서 비하하는 것도 문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개저씨의 정의에 폭소가 터진 후 박사님은 '개저씨 자가 체크 리스트'를 보여주셨는데요. 리스트가 화면에 뜨자마자 수십 명의 참가자들이 동시에 핸드폰을 들어 사진을 찍는 재밌는 모습이 연출됐습니다.  여러분도 한 번 재미삼아 체크해 보세요. 

 

개저씨 자가체크 리스트

  1. 카페나 식당의 (여자)종업원이 나보다 어려 보이면 반말을 한다

  2. 술 마시고 공공장소에서 큰 소리로 떠든 적이 있다.

  3. 길거리에서 주변 사람을 신경 쓰지 않고 담배를 피운다.

  4. 길거리나 대중교통에서 여성의 특정부위를 자주 쳐다 본다.

  5. 여자에게 윽박지르다가 남자가 나타나면 다른 태도를 보인다.

  6. 내 생각이 틀렸는데도 일단 자존심으로 버틴다.

  7. 마음만 먹으면 자신보다 훨씬 어린 여자와 사귈 수 있다고 생각한다.

  8. 유흥업소에 갈 때 ‘이건 모두 사회생활의 일부일 뿐’이라고 여긴다.

  9. ‘우리 때는 말이야!~’라는 말을 종종 쓴다.

 

 혹시 이 중에 5개 이상이 '내 얘기다' 싶은 분들은...음..오늘과 다음 블로그를 꼭 읽어보시고, 개저씨에서 벗어나 보시는게 어떨까요?^^;

 

 

왜, 개저씨는 혼자가 됐을까?

'세상에서 가장 힘든 인생도 내 인생', 동시에 '세상에서 가장 열심히 산 인생도 내 인생'이라고 생각하는, 모든 것이 나 중심으로 돌아가는 분들을 나르시시즘(Narcissism),  '자기애성 성격장애자'라고 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자꾸 남을 가르치려고 하는 성향이 있어요. 

 

회사 근처에 있는 식당이나 술집에 가 보면 50대 부장님급으로 추정되는 분들이 젊은 직원들을 앞에 두고, 끝도 없이 본인의 어려웠던 얘기를 하는 광경을 자주 보게 됩니다. 물론 좋은 의도라곤 하지만, 아시죠? 듣는 사람은 얼마나 지겹고, 싫은지...ㅠ_ㅠ

 

박사님은 이런 모습이 대표적으로 잘 '못' 늙고, 점점 혼자 남게 되는 개저씨의 시작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뜨끔할 정도로 직설적이었지만 공감이 가는 지적이었어요.

 

시종일관 유쾌한 웃음과 진지함이 오고갔던 강의장

 

개저씨의 과거와 오늘

 

아버지로서의 개저씨

그럼 직장을 벗어나 가정에서의 개저씨는 어떨까요? 박사님은 20대 청년들이 부모에 대해 갖고 있는 생각을 들려주셨습니다. 

 

 

     "아빠요? 얼굴 없는 남자죠. 고등학교 때, 중학교 때 아니면 훨씬 전부터 서로 얼굴 쳐다보고 얘기 해 본적이 별로 없을걸요. 이젠 말 걸면그게 불편해요. 일요일 날 같을 때 가끔 엄마가 외출하고 아빠랑 둘이면 있으면 대개 어색해요. 가끔 대화한답시고 이야기거시면 간섭하는 것 같고 그냥 마음이 닫혀버려요. ‘언제부터 나한테 관심 있었다고 친한척하세요’이런 생각이 들어요. (남 20세)"

     "아버지랑 얘기하다 보면 꼭 무슨 신문사 논설위원하고 얘기하는 것 같아요. 완전 교과서 같은 말씀만 하세요. 엄마도 지겨워하고 우리도 지겹죠. 사실 그런 식으로 얘기한다고 뭐 해결되는 건 하나도 없거든요. 아빠 혼자 잘난 척하고 혼자 좋은 거 한다는 생각이 많이 들어요. 좋은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가슴에는 하나도 안 와 닿아요. 차라리 아무 말도 안 했으면 좋겠어요. (남, 24세)"

"내가 평생 엄마의 감정 쓰레기통으로 살았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어요. 오빠한테는 항상 오냐 오냐, 네 오빠 힘들다, 네 오빠 챙겨줘라, 그러면서 나한테는 엄마가 겪는 모든 스트레스를 나한테 다 털어 놓고 하소연해요. 클 때까지는 엄마가 너무 불쌍하고 아버지랑 할머니가 너무 미웠는데, 어느 날 문득 곰곰히 살펴보니까 내가 엄마의 감정 쓰레기통이라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정말 살 떨리고 소름이 돋아서 같이 못 살겠더라구요. (27세, 딸)"

   

많은 분들이 '우리집 얘기다'라며 공감하지만 그냥 웃고 넘기기엔 어쩐지 슬픈 얘기들. 아버지들은 그 동안 자식들을 위해 정말 열심히 살았다고 생각합니다. 근데 왜 자녀들은 부모에 대해 이렇게 생각하고 있을까요?  부

 

박사님은 그 원인을 '열심'만 있고 '마음'이 없기 때문이라고 하셨습니다.

 

 

아버지가 아버지로 느껴지는 순간=생활의 지혜를 알려주던 아버지

아버지와 얘기하다 보면 '신문사 논설위원'하고 얘기하는 것 같다는 자녀의 고백처럼 사실 우리에게 아버지가 가장 '아버지'답게 느껴졌을 때는 뭐 세계경제 전망하고 남북통일 논하는, 그런 대단하고 엄청난 주제에 대해 얘기할 때가 아니거든요. 

 

오히려  낚시 가서 아버지가 미끼 끼우는 법을 알려줄 때, 판을 바꿔가며 먹어야 하는 모밀국수 먹는 법을 알려 줄 때, 그런 소소하지만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할 그럴 때 우리는 아버지의 존재를 느낍니다. 

 

아버지가 내가 필요로 하는 무언가를 가르쳤다는 것, 내가 그 순간에 아버지를 찾았다는 것, 우리가 같이 있었다는 사실이 중요한거죠. 그런데 우리는 그런 일상의 경험과 경험이 없다고 합니다. 신분이 세습되던 100년 전만 해도 아버지가 농부면 아들도 농부였고, 농사를 가르쳐주는 사람은 당연히 아버지였던 것처럼 삶의 스승은 곧 아버지였거든요. 하지만 근대 들어 '학교가 모든 지식을 알려주는 곳'이 되어 버렸죠. 정작 지금의 학교는 좋은 회사에 취직해서 돈 많이 벌게 할 수 있는 기관이 됐지만요. 결국 '정말 필요한 지식'을 알려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사회가 된거죠. 실생활의 지혜를 알려주는 아버지의 귀환이 필요한 때인 것 같습니다.

 

결국 내 삶을 믿지 못해서 

그 동안 내 자식 잘 먹고 잘 키우려고 열심히 일하고 가르쳤다고 생각했는데, 정작 가르쳐 준 것이 없다니. 뭔가 아득하죠?

 

나도 모르게 개저씨가 되어 혼자가 되고, 자녀와 소통이 안되어 친밀감이 형성 안되는 건 결국 자녀들을 진정으로 믿지 않아서일겁니다. 10대에는 입시 걱정, 대학가면 취직걱정, 취직하면 결혼걱정, 심지어 결혼하면 부부생활까지 자녀들에게 대해 갖는 요즘 부모들의 끝없는 불안감은 아이들을 믿지 못해서가 아니라 결국 내 삶을 믿지 못해서 그런 것이 아닐까요? '나에 대한 신뢰가 없으니 타인에 대한 신뢰가 없는 것'이라는 박사님의 말씀에 고개가 끄덕여집니다.

 

 

명퇴자들의 분노, '결정권'의 주체

이승욱 박사님은 대기업에서 명예퇴직을 앞둔 임원 상담을 많이 해보셨다고 합니다. 박사님이 만나 본 퇴자들이 갖는 분노의 이유는 간단했어요. 평생 열심히 일하며 내 삶을 스스로 결정하며 살아 왔는데, 가장 중요한 순간의 결정(퇴직)을 회사가 해버리는 것에 대한 자존심의 상처였죠. 

 

사실 대한민국에서 자기 인생을 자기가 결정하는 사람이 얼마나 되냐고들 해요. 하지만 조금 반대로 생각하면 오히려 우리가 우리 인생의 결정권을 가질수도 있다고 하셨습니다. 예를 들어, 회사에서 점점 감봉을 하며 퇴사를 압박하는 낌새가 보이면 나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눈치만 보면서 기다리지 말고, 오히려 먼저 내가 퇴사조건에 대한 옵션을 사측에 제시하는 거죠. '내가 먼저 결정한 퇴사'와 최종 통보를 받고 나가는 퇴사는 완전히 다르게 다가올 겁니다.

 

 

어쩌면 50대에겐 이제부터가 사춘기

사람들은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한 피해 가해 경험을 상담사에게는 다 털어놓곤 하는데요, 이승욱 박사님이 만난 사람들의 절반 가까이가 배우자의 불륜 혹은 자신의 외도에 대한 얘기라고 합니다. 남녀 불문하고, 그 수가 얼마나 많은지 이제 한국에서는 1부 1처제가 현실적으로 끝난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느껴졌다고 할 정도에요. '참, 대체 왜들 그러는거야'라고 저도 모르게 얼굴이 찌뿌려지려는 순간, 박사님이 한 마디 던지셨어요.

 

"어쩌면 50대에겐 사춘기가 없었나 싶어요"

 

50대는 먹고 사는게 힘들고, 뭐든 국가에서 정해주는 대로 따라야 하는 시절을 보냈습니다. 국가가 뭘 먹어야 할지 먹으면 안되는지도 정해주고, 일할 곳도 정해주고, 입어야 할 옷, 살 집도 정해져 있었습니다. 

 

일탈이요? 일탈을 하기에는 너무 가난하고, 사는 게 엄중해서 일탈은 꿈도 못 꾸는 사치였지요. 그래서, 이제 좀 먹고 살만해진 지금에서야 뒤늦게 사춘기가 왔나 싶은 거에요. 사춘기란 말 그대로 '춘정'이 발동하는 시기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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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대한민국 개저씨들의 과거의 현실을 돌아봤습니다. 일탈마저 허용되지 않는 젊은 시절을 보내고, 최선인줄 알았더니 개저씨가 되어버린 지금. 어떻게 하면 미래는 달라질 수 있을까요? 나이를 먹고, 삶의 후반기를 맞은 시점에서 우리는 어떻게 인생을 '잘' 살아볼 수 있을까요? 그리고 자꾸만 찾아오는 우울증과 무기력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이 모든 질문에 대한 '이승욱 박사의 레퍼런스', '개저씨는 왜 혼자가 되었나' 두 번째 후기도 기대해 주세요!

 

9시가 넘도록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들었던 오늘의 강의

 

 

 개관특강 ‘50+의 시간’ 은 6월 말까지 매주 목요일마다 정치, 주거, 성과 연애, 미래사회, 지역, 여행, 일 등을 테마로 진행하고 있습니다.

 다음 시간(5월 19일 목요일)에는 정치평론가 박성호(닉네임:물뚝심송)님께서 '어쩌다 한국 베이비붐세대는'이라는 제목으로 한국사회 정치와 50+세대에 대해 강연합니다. 많은 관심 바랍니다.

 

   

 

글: 서북50+캠퍼스

사진: 나종민(바라봄사진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