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설이 있는 도보여행

돈의문박물관마을을 찾아, 해설과 함께한 도보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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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고 지나칠 수 있었던 동네 역사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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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4대문 중 「서대문」이라고 하면 익숙한데, 「돈의문」이라고 하면 조금은 생소하다.
「돈의문」은 바로 「서대문」이다. 서울의 4대문은 사람의 다섯 가지 도리인 오행의 글자를 한 자씩 품고 있다.

동대문은 흥인지문으로 인(仁)을, 남대문은 숭례문으로 예(禮)을 갖추고 있다. 
북대문은 처음에 홍지문(숙정문으로 바뀜)으로 지(智)가 있다. 신(信)은 보신각에 적혀 있으며, 의(義)는 서쪽의 돈의문 차지가 됐다.

돈의문은 일제 강점기 시절 일본에 의해 없어졌다.
돈의문은 처음 지어졌을 당시 새 문이라고 불렀다. 그래서 돈의문 안쪽 마을은 새 문 안마을이 됐다.

돈의문 박물관 마을은 바로 그 새문안마을 주변이다. 위치상으로는 경향신문 본사에서 강북 삼성병원으로 올라가는 언덕길 오른편 일대이다.

 

 

▲중앙의 붉은 색 간판은 돈의문이 있었던 터를 표시한다.                                           ▲1890년대 돈의문과 세문안마을의 모습.                    

오른쪽으로 보이는 건물 뒤편으로 박물관 마을이 조성되어 있다.                       (마이클 힐리어 소장으로 돈의문박물관마을에 전시되어 있음)      


■ 서대문사거리 주변의 역사 이야기

6월 16일 일요일 오후 2시, 5호선 서대문역 8번 출구에서 출발한 도보여행팀은 모두 10명이었다.

안내와 해설은 김원경 전문 해설사가 담당했다. 김원경 해설사는 출발도 하기 전 서대문사거리 주변에 산재해 있는 역사 이야기부터 풀어 놓는다.

서대문사거리에서 독립문 방향으로 뻗은 길은 옛날 청나라를 갈 때 길목이다. 현재 적십자병원이 있는 자리 주변은 과거 경기감영이 있던 곳이다.

그리고 맞은편에서 독립문 방향으로 100여 미터를 가면 최초의 외국공관이라고 할 수 있는 일본공사관이 자리했던 금화초등학교가 있다.

그만큼 이 일대가 역사적으로 할 얘기가 많은 곳이라는 것이다. 

도보여행 최초의 방문지는 이화여고 정문이었다. 이곳이 관심을 끄는 것은 경인선의 시발역이었던 서대문정거장이 있던 자리이었기 때문이다.

경인선은 우리나라 최초의 철도로 인천에서 노량진을 오갔다. 이후 한강철교가 완공되면서 이곳 서대문정거장까지 구간이 연장된 것이다.

 

▲도보여행팀이 서대문역 8번 출구에 모여 전문해설사로부터 서대문 4거리 지역의 역사 이야기를 듣고 있다. 


■ 김종서, 이기붕, 김구의 집이 있던 자리

이화여고에서 새문안로 방향으로 우회전을 하면 바로 농협박물관이 나온다. 농협의 성격을 말해주듯이 쌀 박물관도 같이 있다.

이곳은 조선 세종 때 문신으로 변방의 6진을 개척한 김종서의 집터가 있던 자리이다.

농업박물관 옆의 문화일보 자리는 최초의 연극 전용 극장이었던 동양극장이 있었던 곳이다. 동양극장은 1935년에 설립됐다.

단성사, 우미관 등의 극장이 영화 상영을 위주로 할 때 연극 전용 극장으로 문을 열어 연극계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킨 장소이다. 
농업박물관 맞은편에는 4·19혁명 기념회관이 있다. 이곳은 이승만 정권 시절 권력의 최고실세인 이기붕과 부인 박마리아가 살던 서대문 집이 있던 자리다.

4·19혁명 이후 이기붕 일가는 자살을 했고, 이곳에는 지금의 4·19혁명 기념회관이 자리하게 된다. 
4.19혁명 기념회관 뒤편에는 김구선생이 머물렀던 경교장이 있다. 김구선생은 해방 후 귀국, 이곳 경교장에서 지내며 임정인사들과 함께

나라의 미래를 준비하고 있었다. 경교장은 훗날 고려병원이 본관 건물로 사용해 오다가 지금은 서울 역사박물관 경교장(사적 제 465호)으로 운영되고 있다.  

 

 

           ▲김종서 집터와 동양극장이 자리했던 곳                                   ▲경교장 내부 거실모습. 김구선생의 흉상이 보인다       

 

■ 경희궁과 돈의문박물관마을

「해설이 있는 도보여행팀」의 다음 여정은 경희궁 주변과 돈의문박물관마을이다.

경희궁 정문 인흥화문 오른편에는 서울 역사박물관이, 왼편에는 돈의문박물관마을이 각각 자리 잡고 있다. 
그래서 이 지역 역시 이야깃거리가 많은 곳이다. 경희궁은 조선 시대 인조부터 철종까지 10명의 왕이 살던 곳이다.

법궁인 경복궁의 서궁으로 불렸던 곳이다. 경희궁이 서궁이 되면서, 최고 통치기구인 비변사와 왕실 재정담당 기구인 내

수사, 관 상감 등 많은 관청이 주변에 모여들었다. 그러나, 현재 남아있는 흔적은 별로 많지 않다.

대원군 집권 시에는 경복궁 중건을 위해 경희궁이 훼손됐다. 일제 강점기에는 일본인 전용 학교가 세워지면서 경희궁은 왕궁으로서의 면모를 잃고 말았다.

 


▲일제 강점기 경희궁 정문인 흥화문은 장충동 지금의 신라호텔 입구로 옮겨졌다. 

 

경희궁과 바로 이웃한 돈의문박물관마을도 지금의 모습으로 자리 잡기까지 어려움이 있었다.

경희궁 주변 개발계획에 따라 철거까지 고려됐지만, 이곳에도 도시재생의 개념이 적용되었다.

즉, 파괴가 아니라, 보존할 것은 보존하면서 거기에 문화적 가치를 접목, 새로운 탄생을 도모하자는 것이다.
다시 태어난 돈화문박물관마을은 「마을전시관」,「체험교육관」,「마을창작소」로 나뉘어 각각 문화적인 가치를 제시해 주고 있다.

집마다 청사초롱을 매달아 놓은 한옥마을은 체험교육관으로 일반인에게 개방되어 있다.

이곳에 가면 한지공예, 서예, 복식, 자수공예, 닥종이공방, 미술 등 많은 장르의 예술활동을 체험할 수 있다.

마을전시관에는 과거 모습 그대로 삶의 현장들이 재현되고 있다.

서대문여관, 극장, 컴퓨터게임방, 만화방, 이발소 등을 돌아보면서 60년대부터 80년대 초까지의 우리의 모습들을 본다.
특히, 이곳 극장에서는 고교얄개, 돌아오지 않는 해병, 맨발의 청춘, 고래사냥 등 이른바 옛날 영화들이 상영되고 있다.

부모세대에게는 향수를, 자식 세대에게는 신선한 감성을 불어 넣어준다. 

 

 

▲동네꼬마 녀석들 뛰어놀던 골목길도 이젠 박물관                           ▲한옥마을은 각종 체험교육관으로 활용되고 있다.

 
       ▲그 시절엔 구강위생의 달(포스터)도 있었다                               ▲자개농, TV, 재봉틀, 돗자리 등 다시 보니 새롭다

 

■ 우리 동네 이야기, 그것이 궁금하다.

돈의문박물관마을 도보여행은 예정시간보다 30분이 늦게 끝났다. 이야깃거리가 참 많은 지역에 비해 2시간의 약속된 시간은 너무 짧았다.

경교장 앞 쉼터에서 김원경 해설사는 이날의 여정을 정리해 주었다. 미처 가보지 못한 홍난파가옥, 배화여고를 세운

캠밸의 가옥, 3·1운동을 세계에 알린 미국인 기자 알버트 테일러의 딜쿠샤가옥 등에 대한 설명도 빼놓지 않았다. 
노원구에서 남편과 함께 온 안명순 씨는 “모르고 지나치던 장소인데 해설을 들으며 새로운 것을 알게 되어 좋았고, 다른 곳도 꼭 가보고 싶다”라고 한다.

서대문지역에서 40년간 직장생활을 했다는 그의 남편도“그동안 어렴풋이 알았던 것들을 확실하게 알게 되어 감회가 새롭다”고 한다.
성북구에서 초등학교 6학년 딸과 함께 온 박형규 씨는“아이에게 좋은 역사 공부가 될 것 같아 함께 했다.”라고 하였다.

딸 박지우 양은 친구들에게 말할 자랑거리가 생겼다고 좋아한다. 

 

▲여정이 끝나는 경교장 앞 쉼터에서 김원경 해설사의 설명을 듣고 있는 도보여행팀 

 

모르고 그냥 지나친다면 숨겨졌던 사실들이 해설이 있는 도보여행을 통해 알게 됐을 때의 기분은 경험하지 못한 사람들은 알 수 없다. 
도시재생의 일환으로 새롭게 탄생하는 마을을 볼 때마다 우리가 살고 있는 동네는 옛날에 어떤 모습이었을까 궁금해진다.

지금은 흔적조차 남아있지 않지만, 쓸만하고 문화적 가치가 있는 것들도 꽤 있었을 것 같은데 말이다.

이제 우리가 모르고 지냈던 우리 동네 이야기를 한번 찾아보는 것도 의미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