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의에 참석하지 않아도 될 수 있게 배려한다.

부분적으로 재택근무를 할 수 있게 한다.

전화통화는 되도록 이 메일로 대신한다.

구두 지시보다 서면 지시를 이용한다.

어떤 형태든 귀마개 사용을 허락한다.

조명을 조절해준다(이를테면 형광등을 없앤다)

동료 직원들에게 아스퍼거 증후군의 특성을 미리 알려서 그가 담소나 회식을 거절해도 마음이 상하지 않도록 미리 조처한다.

 

당신에겐 숨 쉬는 것만큼 쉬운 일이겠지만, 나에겐 온 힘을 써야 가능해요

이것은 회사에서 자폐인이나 아스퍼거인을 채용할 때, 그들의 업무능력과 특수성을 고려해 조정해야 할 업무환경 사항이다. 소음에 특히 예민한 아스퍼거인을 위해 귀마개를 할 수 있게 하고 눈이 부신 형광등을 없애는 것, 사람들과 대화를 어려워하니 회의참석을 강제하지 않는 것, 특히 전화보다는 이메일로, 구두보다 서면으로 지시하라는 배려가 인상 깊다. 직설적으로 짧게 말하고 일관성 있게 행동하는 그들의 특성을 미리 알아두어 동료직원이 마음상하지 않도록 한 조항은 더더욱. 장애와 병은 알리고 말해야 이해와 배려를 받을 수 있는 게 당연한 일, 아스퍼거인들은 오랫동안 그 증상을 오해받아왔다.

“저는 아스퍼거 증후군을 갖고 있어요. 겉으로 봐선 잘 모르시겠지만 알아두셔야 할 것 같아서요.” 거의 십 년 전에 일을 같이 진행하던 이가 내게 말했다. 그 때 처음 아스퍼거 증후군을 가진 사람을 만났다. 말이 없고 정해진 일을 철저하게 수행해야 하고 수시변경을 못견뎌하고 대충, 대충을 싫어하고 혼자서, 조용히 있지 않으면 견딜 수 없다!!는 그 사람의 증상을 들었다.

“누구나 그렇지 않나요? 나도 그래요.” 배려하고 이해해달라는 의미였을 그에게 내가 한 말이었다. 병증이라기보다는 성격이 까다롭거나 성정이 까탈스러운 정도의 다름 아닌가, 가볍게 여겼다. 잘못한 일이었다. 지금은 알 것 같다. 힘겹게 자신의 상황과 증상과 아픔을 설명하는 사람에게 ‘나도 그렇다.’고 대뜸 뱉는 말은 공감이나 이해가 아니란 것을. 나도 너 정도는 아프니 입 다물라는 몰이해의 폭언이었다는 것을. 어떤 병증은, 어떤 증상은 흔히 오해받거나 무시당하거나 비웃음을 당하기도 한다. 아픔의 크기와 깊이를 평가받는다.

 

제가 좀 별나긴 합니다만. 아스퍼거 증후군 이야기. 커버.

 

<제가 좀 별나긴 합니다만...>을 읽으면서 그 때 ‘아스퍼거 증후군’에 대해 거의 아무 것도 몰랐다는 것을 깨달았는데, 사실은, 이 책 중간까지 보면서도 저자가 왜 이렇게까지 자신의 증상에 이름을 받으려고 애쓰는지 의아하기도 했다. 꼭 정확한 진단을 받아서 병명을 붙여야 할 이유가 그토록 절박할 게 뭘까, 하고 가볍게 봤다는 이야기다.

 

직장생활에서는 업무 능력만 중요한 게 아니야, 처세도 중요하지

‘아스퍼거 증후군 이야기’라는 부제의 그래픽 노블 <제가 좀 별나긴 합니다만...>의 원제목은 <LA DIFFEERENCE INVISIBLE>이다. 안 보이는 다름, 보이지 않는 다름이 ‘별난’으로 번역되었다. 글을 쓴 쥘리 다셰는 아스퍼거 자폐증을 앓는 사람이고 그림을 그린 마드무아젤 카롤린은 세 차례의 심각한 우울증을 겪은 사람이다. 이 두 사람은 ‘정상’이라는 것에 대한 신념의 횡포를 용납할 수 없는 당신에게 이 책을 바친다고 했다. 당신은 치료받을 필요도, 변해야 할 필요도 없다고도 말했다.

 

그래픽노블 제가 좀 별나긴 합니다만 속 커버. 마드무아젤 카롤린이 사인을 해주었다.

 

십 년 전에 ‘나는 아스퍼거 증후군을 앓고 있다’고 말했던 그 사람처럼, ‘나도 당신과 똑같은 증상이 있다’고 말했던 무신경했던 나처럼 <제가 좀 별나긴 합니다만>의 주인공 마그리트도 겉보기엔 그리 달라보이진 않는다. 이것이다.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 것. 잘 안 보이는 것.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는 병을 앓고 있는 아스퍼거 인 마그리트. 그저 조금 다를 뿐이다.  아스퍼거인 마그리트의 가장 행복한 시간, 혼자 집에서 개와 고양이와 있을 때

 

마그리트는 회사에도 다니고 맡은 바 일을 성실하게 수행하며 빵을 사고 먹고 개와 고양이를 기르고 남자친구를 사귀고 동거한다. 평범하고 발랄하고 똑똑하고 젊다. 달라봤자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말을 하고 정해진 길로 가고 정해진 것을 먹어야 편하다는 정도다.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하고 인간관계가 서툴 뿐 그저 내성적이고 소심한 성격의 마그리트는, 그러나 만나는 모든 이에게서 별종이나 비정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으레 하기 마련인 무심한 아침 인사, 별 의미 없는 사람들끼리의 어울림, 수다와 소음을 못 견딜 뿐인데도. 남들은 그저 행하는 모든 일상의 일들을 그녀는 비지땀을 흘리며 겨우 수행한다. 숨 쉬기 위해 종종 화장실에 숨어들고 천신만고 끝에 집에 혼자 있어야만 비로소 편안해진다. 도무지 인간관계에서 무해하지 그지없는 마그리트의 다름은, 도처에서 비난받는다. 친구랑 술 한 잔 하자는 게 그렇게 어려운 일이야? 회사에서 휴식시간에 가벼운 이야기 좀 하는 게 그렇게 못 견딜 일이야? 어울려서 음악 좀 듣고 춤추는 게 나쁜 일이야? 사람관계에서는 참을 줄도 알아야지, 스몰 톡도 나누고 웃기도 하고 좀 그래야지, 매사 혼자만 있으려면 인간관계는 다 파탄 나는 거지. 처세도 중요하잖아. 마그리트는 외로운 섬처럼 존재한다.

 

 

인간관계에서의 작은 섬. 네가 자폐증 환자라니 말도 안돼. 그녀는 이해를 받지 못한다

 

그까짓 걸 그렇게 못하냐? 그럴 때 내가 얼마나 난처할 줄 알아?

 

동거하는 남자친구 플로리앙도 이해해주지 않는다. 마그리트의 언행을 끊임없이 비난한다. 파티에 가지 않는 것도 일찍 자리를 뜨는 것도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것도 ‘내가 난처해진다’는 이유로 불평한다. 친구들도 별난 여자 친구를 두었다고 도리어 플로리앙을 안쓰러워한다.

 

사람들과 웃고 떠드는 걸 힘들어하는 마그리트의 증상에 대해 짜증내고 다그치는 남자친구의 말. 그만 좀 울 수 없어

 

외출 좀 하라고 햇볕을 쏘이라고 돌아다니라고 어울리라고 웃으라고 옷차림을 신경 쓰라고 몸을 좀 굴리라고, 수십 가지 충고와 비난이 이어지다가 심지어 유머를 배워라, 마음을 열어라, 다그치는 친구와 연인과 회사사람들에게서 마그리트는 마침내 일어선다. 자신의 증상을 이해받고 진단받고 정확한 병명을 받으려고 움직인다. 상담사와 의사까지 이름 붙여주지 않는 괴로움의 정체를 찾아간다. 사회성 결핍, 서투름, 인간관계의 피로, 청각 과민증, 루틴이 깨어질 때의 불안, 자폐에 가까운 혼자. “아스퍼거 증후군은 대인관계와 의사소통장애, 관심의 편중이 특징인 자폐증이다.”이란 ‘병의 자격증’을 받으려 고군분투한다.

자폐정보센터에서 지능검사, 정신운동 검사, 특수교육 전문가 면담, 자폐증 진단 관찰 척도 검사까지 마치고서야 마그리트는 병명을 받아낸다.

“여러 검사 결과에 따라 우리는 결론에 이르렀어요. 당신은 분명히 아스퍼거 자폐인입니다” 라는 말을 듣고 ‘검증완료’의 기쁨에 환호한다. 만세!! 춤까지 춘다. 자기의 병명을 알았다는 것만으로, 자기의 증상에 정확한 이름을 붙여줄 수 있다는 것만으로 저렇게 기뻐할 수 있다는 게 믿어지지 않을 만큼, 행복해한다.

책을 다 읽고서야 마그리트를 정확하게, 거의 완벽하게 이해하게 되었는데, 그건 아스퍼거 증후군보다도 덜 경미해 보일 내 증상에 정확한 병명이 붙었을 때의 내 심정과 같았기 때문이다. 이름 붙지 않아 설명할 수 없었던 내 병증. 가볍고 크지 않아 오해받았던 증상, 나는 오랫동안 전화를 안 받고 못 받고 싫어하고 괴로워하고 비지땀을 흘리는 증상을 겪고 있었다. 이른바 콜포비아, 전화로 말을 못 하는 병. 이름이 붙으니 편안해졌다.

 

전화로 말 못하는 병, 콜포비아(Call Phobia) 증후군 이야기

오래전부터 전화로 말을 잘 못했다. 전화 받기를 좋아하지 않았다. 전화기를 귀에 대고 보이지 않는 상대에게 말을 하는 것이 그렇게 어려웠다. 허공에 말하는 게 도무지 익숙해지지 않았다. 하도 전화를 안 받거나 못 받거나, 해서 수없이 많은 사람에게 해명을 해야 했다. 여러 사람들에게 지청구를 들었고 변명까지 해야 했는데, 스스로도 도대체 이 ‘병증’이 어디서부터 온 걸까 궁금했다. 마그리트처럼 어떤 증상에는, 납득이 될 만한 병명이 붙어야 이해받을 수 있으니까.

어릴 때 우리 집에는 전화기가 없었다. 전기도 일곱 살 무렵에 들어온 산골이었다. 전화기라는 게 집집마다 놓고 살 때가 아니어서 전화기는 이장 집에만 있었다. 도시에 나간 언니오빠들이 전화를 걸 일이 있을 때 이장 집으로 전화를 걸었다. 이장님은 삐익삐익 마이크를 열고 방송으로 알려주었다. 누구네 집 누구 딸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전화요금이 무서워 받는 이도 하는 이도 벌벌 떨던 시절이었다. 동네방네 그 목소리가 울릴 때마다 마음이 불안했다. 별 일 없이, 사건사고 없이, 그냥 전화를 걸어 수다를 떤다는 것은 그 시절,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좀 더 자라 유학을 와서 남의 집에 살 때는 주인집에만 전화가 있었다. 내게 전화가 오면 “학생, 전화 받아요.” 하면서 바꿔주었는데 문간방에 사는 나에게 전화 왔다고 소리치는 주인의 목소리는 상냥한 적이 없었다.

전화 받을 준비가 되어 있는 상태가 아닌 때가 대부분이었다. 옷차림을 정비하고 남의 집 마루에 올라가 그 집 주인이 다 듣는 곳에서 무슨 말을 편하게 나눌 수 있으랴. 어떤 집은 안방에 전화기가 있었고 어떤 집은 내 또래의 남학생이 전화 받으러 들어오는 내 온 몸을 훑었고 어떤 집은 흰 러닝셔츠만 입은 주인아저씨가 옆에 서 있거나 널브러져 있었다. 남의 집 안방이나 거실에서, 또는 마루 끝에 끌어내어준 전화를 들고 안 보이는 누군가와 말하는 것이 불편해 죽을 지경이었다. 심지어 내가 하는 말과 전화기 저 편의 목소리를 주인이 다 듣고 있었다. 전화를 걸어온 사람자체가 미워질 만큼 힘들었다. 전화를 받아서 이 전화로 제발 전화하지 말라고 말하는 것이 용건이 된 시절이었다. 전화는 불안하고 사생활이 벗겨지고 몸이 떨리는 불안을 주는 물건이 되었다.

 

 

바보 같고 무례해 보일 수 있지만, 그저 나는 이런 사람일 뿐이에요

내 집이 생기고 내 전화를 갖고도 전화 받기 어려운 마음 내지 버릇은 바뀌지 않았다. 왜 벨이 울리면 하던 일을 멈추고 딱 전화를 받아야 하는지 스스로 납득을 못했다. 전화를 거는 사람이야, 딱 전화할 준비가 된 상태니까 걸었을 테지만 받는 이는 그렇지 않잖은가. 전화가 울릴 때 나는 목소리가 안 나올 때도 있고 슬픔에 잠겨 있을 때나 잘 때도 있었다. 대화할 수 없는, 무방비의 상태일 때가 태반이었다. 엿듣는 이가 없어도 얼굴을 보지 않고 말을 한다는 게 세월이 가도 편해지지 않았다. 그렇다. 나는 심지어 사랑하는 누군가가 그냥 안부를 물어본다거나 목소리 듣고 싶어 전화했어, 라고 말하는 것까지도 좋아하지 않았다. 만나서 이야기하는 것은, 여전히 좋았다.

이메일이 생겼을 때, 또 카톡이 생겼을 때 그래서 환호했다. 편지는, 메일은, 문자메시지는 언제라도 좋았다. 전화가 오면 못 받고 뜨거운 무엇을 쥐었을 때처럼 놓치거나 내려놓는 일이 많아졌다. 부르르 울리는 전화기를 끊어질 때까지 물끄러미 쳐다만 보는 일이 잦아졌다. 이름을 보고 받을 전화를 선별하는 게 아니라 모든 전화가 그랬다. 끊어진 연후에야 문자를 보냈다.

저 책 속의 마그리트처럼 오해를 받기 시작했다. 전화로 안부를 묻고 위로하고 용건을 전달하는 것은 인간관계에서의 일종의 예의인데, 그것을 어기는 무례한 사람으로 여겨지기도 했다. 나는 전화기가 울리는 게 불안하고 꺼려진다는 것, 전화로 말을 잘 못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사람들에게 알리기 시작했다. 제가 전화로 말을 잘 못해요, 문자나 메일로 해주세요. 얼굴 보고 말하는 건 잘 할 수 있지만, 전화로는 정말 말하기가 어려워요. 일종의 병이라고 생각하고 너그럽게 이해해 주세요. 메일 태그에 ‘문자메시지를 아주 좋아합니다. 만나는 것도 좋아합니다.’라고 써 놓았다. 이십 년도 더 된 일이다.

 

오래 알아온 이들은 조금 흉을 보면서도 이해해 주긴 했지만 다 그런 것은 아니었다. 저 사람은 전화를 안 받아. 전화도 절대 안 해. 어떤 이는 섭섭해 했고 어떤 이는 욕을 하며 멀어져갔다. 좋아하는 사람이 아무 때나 전화를 걸어오면 내 지병에 대한 이해가 하나도 없는 게 오히려 서운할 지경이 되었다. 아니 좋아하는 사람일수록 그가 또 전화를 걸었다는 것이 화가 나서 더 안 받게 되기도 했다. 너무하잖아. 수십 번을 말했는데.

한 때 참 좋아하던 사람이 이 모든 내 증상과 성정을 알면서도 전화를 걸 때가 있었다. 그 사람이 운전을 하는 시간이었다. 카톡을 두드릴 수도 없으니 문자를 보낼 수도 없으니 그것보다 목소리를 듣고 싶으니 전화를 하는 거라 했지만, 나는 아니잖은가.

당신의 자투리 시간에, 가장 한가한 시간에, 당신 볼 일은 하나도 놓치지 않으면서 내가 가장 어려워하는 일을 아무렇게나 생각하고 함부로 써먹지 말라고, 소리 없이 아우성쳤다.

 

팔뚝에 awareness를 새기고 내 자신의 차이를 받아들이다

전화 때문에 욕도 많이 먹었다. 결혼한 어린 여자였을 때는 시부모님한테 제일 먼저, 많이 혼났다. 신혼일 때 매일 전화 한 통씩을 하라는 압력을 받고 그 때는 매일 했다. 먼저 걸어서 만나서 얼굴을 맞대도 어색한 분들에게 그냥 안부를 여쭤야 한다는 게 납득이 안 되면서도 새아기니까, 며느리니까, 하긴 했다. 전화 한 번 할 때마다 식은땀이, 진땀이 다 났다.

진지 드셨어요? 밥 먹었나? 편히 주무셨어요? 잘 잤나? 정도의 말들을 하는 것이 너무 어려워 병이 다 생길 즈음 전화 올리는 횟수를 줄였다. 일주일에 한 번으로, 보름에 한 번으로 줄여가다가 점점 예의가 없다는 소리를 들어야 했다. 문자로 보내도 되겠구나 싶을 때부터 조심조심 문자로 안부를 전했는데 이해는커녕 더 큰 화를 불러왔다. 이제 눈 어두운 어른한테 ‘문자나 띠익 보내는 애’가 되었다. 전화를 할 때는 ‘전화나 띠익 한 통 하는 애’였는데 말이다. 얼마나 힘들어하는지, 이 증상의 고통은 누구에게나 경미해보여서 누구도 이해하지 않았다. 전화로 말을 잘 못하는 사람의 증상, 콜포비아라는 이름이 생긴 후에야 조금 이해를 받았다.

각설하고 마그리트는 자기가 그냥 못되고 참을성 없고 마음을 열지 못한 비정상적인 사람이 아니라 다만 아스퍼거 증후군을 가진 조금은 다른 사람이라는 것을 자각하고 팔뚝에 깊은 문신을 새긴다. awareness. 자신이 어떤 것을 겪었고 어떤 길을 걸어왔는지 잊지 않으려는 흔적을.

그리고 새 친구들을 사귀고 공부를 시작한다. 고기를 못 먹고 손소독제를 꼭 두 번 씩 써야 하고 정해진 곳에서만 잠들어야 하는 ‘보이지 않는 다름’을 가진 무해한 (비)정상의 사람들을. 강박장애를 가진 사람을, 커피를 못 마시는 사람들을, 여럿이서 대화를 하면 못 알아듣는 사람들 속에서 마그리트는 그제야 편안해하고 자유롭다고 느낀다.

 

안 보이는 다름, 비정상으로 평가받는 마그리트옆에 다정하게 다가오는 친구. 그대로의 마그리트를 품어주는 사람

 

별 소리를 다 들으면서 세월이 다 갔는데도 전화로 안부를 전하고 전화로 인사를 전해야만 마음이 있는 것을, 관심을 보이고 예의가 있는 사람으로 여겨지는 것을 아직도 납득을 못하는 채로 나도 콜포비아가 있는 사람으로 말하고 나서야 아주 약간 이해를 받는다. 같은 증상을 겪는 이들도 참으로 많다. 아무튼 나는 전화로는 말을 잘 못하지만 얼굴을 맞대면 언제라도 좋아하고 잘 웃는다는 것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사람들 앞에서는 봇물처럼 할 이야기가 터져 나오는 사람이라는 것을, 마그리트처럼 말하고 싶다. 마그리트처럼 팔뚝에 awareness라고 새길까싶기도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