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때 해외이민 바람이 분 적이 있다. 이민 홍보업체의 광고에는 휴양리조트인지 고급 호텔인지 구별이 잘 가지 않는 주거단지의 모습이 등장했다. 생활비도 국내보다 훨씬 더 적게 든다고 홍보했다. 이런 환상에 빠져 꿈 같은 삶을 살겠다고 이민을 떠났던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그들 중에 생각했던 환상과 너무도 달라서 다시 귀국한 사람들이 많다. 나이 들어서 평생 살던 곳과 환경도 다르고 문화도 다른 타국에서 새로 적응하면서 살아간다는 것이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우선 경제적인 문제가 발생했다. 실제 가서 살아보니 예상보다 훨씬 많은 생활비가 필요했던 것이다. 이민 홍보업체의 계산과 다른 지출들이 발생했다. 기후도 맞지않고 환경도 달라 적응하는데 시간이 걸렸다. 문화가 다른 것도 스트레스로 작용하고, 음식이나 물이 다른 것도 시니어들에게 쉽게 적응이 어려운 문제로 다가왔다. 무엇보다 그들이 힘들어했던 것은 문화가 다르고 말도 잘 통하지 않는 사람들과 새로 관계를 형성하는 일이었다. 정착해서 사는 것과 여행의 차이는 크다. 여행은 이러한 문제들조차 더 이국적이고 여행의 재미로 여길 수 있다. 그러나 정착해서 산다고 할 때 발생하는 이러한 문제는 해결하거나 참고 살아야 하는 피할 수 없는 과제로 남는다. 해결도 쉽지않고 참고 살기에는 너무 큰 스트레스로 작용해서 결국 다시 돌아오기로 결심하는 것이다.

 

반대로 오래 전에 외국으로 이민간 사람들을 대상으로 노후에 다시 고향으로 돌아와서 살 수 있는 마을 프로젝트를 진행하기도 했다. 대표적인 예가 남해의 독일 마을이다. 1960~70년대 경제적으로 어렵던 시기에 광부, 간호사로 독일에 파견된 분들이 고국으로 돌아와 노년을 보낼 수 있도록 한다는 취지로 조성되었다. 독일 마을에 가보면 주택의 형태가 독일식 집이다. 실제 붉은 기와나 벽돌을 독일에서 가져와서 독일식 디자인으로 집을 지었다. 남해에서 살면서 독일 집을 지은 것은 어쩌면 독일 생활에 더 익숙해서인지도 모른다. 몸은 왔지만 마음은 아직 그곳에 있는 것이다. 그 분들에게 젊은 날의 시련과 극복의 시간을 함께한 추억이 남아있는 곳은 독일이다. 그래서 이제는 독일식 집이 더 정감이 가는 삶의 공간일 것이다. 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언덕 위에 외딴섬처럼 만들어 놓은 독일풍 작은 마을은 고향도 아니고 독일도 아닌 어정쩡한 모습을 하고 있다. 관광버스를 타고와서 잠시 골목을 누비며 호기심어린 눈으로 집안을 기웃거리는 사람들은 많다. 그러나 그들 중에 늘 그리워하던 고향사람은 없다. 이렇게 조성한 마을 중에는 일본마을도 있고 아메리카 마을도 있고 스위스마을도 있다. 독일 마을과 비슷한 컨셉으로 만들어진 이런 마을들은 그러나 목적했던 바 대로 이민갔던 사람들이 돌아오지 않는다. 시간이 흐르면 이러한 취지도 관심에서 사라지고 만다. 이민을 떠난 사람들은 어떤 이유로 타국에서 살게 되었던지 간에 그들은 오랜세월 그곳에서 관계를 형성하고 살고 있다. 그 관계망을 떠나서 다른 지역으로 이주하고 또 새로운 관계망을 형성한다는 것은 그리 쉽지 않다. 이민을 갔던 사람들이 꿈에도 고국을 잊지 못할 거라는 단 하나의 논리로 이러한 마을을 만든다. 그러나 그들은 돌아오지 않는다. 고국을 그리워하는 것과 다시 고국으로 돌아오는 것은 다른 차원이다. 그들이 돌아올 거라고 확신하고 이러한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것은 지자체 장이든 개발업자든 간에 결국 공급자의 일방적이고 허무맹랑한 상상력의 결과인 것이다.

 

경상남도 남해군에 위치한 독일마을 (사진출처 : 한국관광공사)

 

한 때 동호인주택이 유행 한 적이 있다. 특히 고등학교 동창들 몇 명이 모여서 땅을 사고 집을 짓고 같이 모여사는 꿈을 꾸었다. 어떤 조직보다도 고등학교 동창들이 이런 모의를 하기에 끈끈해보인다. 초등학교나 중학교 동창들은 고등학교를 진학하면서 대부분 뿔뿔이 흩어진다. 반면 고등학교 동창들은 이과, 문과로 구분되어 어느정도 동질성을 가지게 되었고 졸업해서 사회생활을 하면서도 서로 연관성이 있고 교류도 많다. 그렇게 수십 년 끈끈한 관계로 지낸 그들이 같이 모여사는 꿈을 꾸는 것도 어쩌면 당연하다고 하겠다. 동창들 중에 특히 자주 모이는 소그룹이 있다고 가정하자. 그들은 집안 경조사도 서로서로 챙겨온 형제같은 친구들이다. 그들이 결혼해서 자녀를 낳고 그 자녀들이 이제 자라서 결혼할 나이가 되었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 동창들은 이제 은퇴를 했거나 은퇴를 앞두고 있다. 그들 중에 누군가 제안한다. 더 나이들기 전에 모여살자고... 같이 모여 살면서 주말마다 바비큐 파티도 하고 여행도 하고 취미 생활도 같이하면 좋겠다는 꿈을 꾼다. 그러나 그들이 꿈꾸는 동호인주택은 결정적인 문제에 봉착하면서 그야말로 꿈이되고 만다. 아내의 생각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들이 간과한 여자들 간의 관계문제는 어쩌면 모여사는데 있어서 가장 우선적으로 논의했어야 한다. 그들은 형제보다 더 끈끈한 관계겠지만 여자들은 그 관계와 아무 관계가 없다. 남편 친구 가족들과 모여 사는 것을 불편해 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오히려 잘 모르는 사람들과 공동체를 형성하고 사는 것이 더 편하다고 느끼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공동주택은 넘쳐나도 공동체 주택은 찾아보기 힘든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도시보다 공동체가 잘 유지되던 지방 마을은 이제 마을소멸을 걱정하게 되었다. 작은 마을은 대부분 초고령 사회로 바뀌었고 젊은 층을 찾아보기 힘들게 되었다. 고령자들은 외출도 힘들고 동네사람들과 서로 교류할 기회도 줄어든다. 그결과 지방 노인들이 심한 우울증에 빠질 가능성이 많고 실제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는 노인비율이 늘어가고 있다는 사실은 공동체가 무너지는 것과 상관관계가 크다고 본다.

 

위의 사례에서 보듯 공동체의 삶은 ‘어디서 살 것인가’ 보다 ‘누구와 살것인가’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행복한 삶의 절대명제가 된다. 그 명제를 풀어나가는 방법으로 두가지 관점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 하나는 새로 공동체를 형성하려는 그룹이다. 이 경우는 좀 느슨한 관계를 만드는 것이 좋겠다. 즉, 공간적인 접근보다 관계의 문제부터 접근하는 것이 우선이다. 대체로 공동체주택을 꿈꾸는 사람들도 관계의 문제를 가장 두려워한다. 관계의 문제도 학습이 필요하다. 그러므로 관계의 문제를 다루는 전문과정이 필요하다. 또 하나의 경우는 기존 지방 마을처럼 오랜세월 형성되어 온 공동체가 무너진 경우다. 이 경우는 이미 형성된 관계망이 있으므로 그 관계망을 살릴 수 있는 공간적인 해결이 필요하다. 해법의 하나로 경로당이나 마을회관의 기능과 프로그램을 활성화 할 수 있는 여러 가지 방안을 연구할 필요가 있다. 마을회관이나 경로당 공간을 공동생활이 가능한 공간으로 리모델링 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빈집 활용 아이디어도 필요하다. 이러한 여러가지 공간적인 해결책은 오랜세월 형성된 관계가 바탕이 되어야 한다. 결국 행복한 삶의 조건은 사람과 사람 간의 관계에 달려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