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은퇴 후의 삶에 대해 아름다운 상상을 하면서 살고 있다. 도시를 떠나 전원 속에서 살고 싶은 것은 많은 사람들에게는 버릴 수 없는 꿈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겐 이루기 힘든 꿈으로 남아있지만 그 꿈을 현실로 옮긴 사람들도 많다. 그들은 퇴직하기 전부터 전원주택의 삶을 차근차근 준비한다. 준비한대로 퇴직과 동시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전원으로 들어간다. 친구나 친지의 방문을 염두에 두고 집을 크게 짓는다. 마당에는 잔디를 깔고 언제든 바비큐파티가 가능하도록 장작도 준비해 두었다. 도시에서 평생 살아온 탓에 전원생활의 모든 것이 새롭고 가슴 벅차게 느껴진다. 주말이면 친구들이 찾아오고 전원의 저녁은 아름답게 저물어간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찾는 이들의 발길이 줄어든다. 전원의 겨울은 도시보다 더 삭막하고 적막하다. 눈이라도 내리면 통행하는 사람도 보기 힘들다. 부부만 덩그러니 살고 있으니 난방도 최소한으로 하고 집은 더 썰렁해진다. 지금 우리나라 지방마을은 이미 초고령 사회로 접어든 곳이 많다. 머잖아 소멸될 가능성이 있는 지자체 지도를 보면 결국 언젠가 도시만 남고 마을 단위는 다 사라질 것 같다. 이 문제는 가상이 아닌 바로 닥친 현실의 문제다. 일본의 경우처럼 초고령 사회가 겪은 문제를 우리도 그대로 답습해 나가기 시작했다. 인구가 줄어들고 그나마 고령자들만 사는 마을은 그 이유로 인해 여러 가지 생활환경의 문제가 나타나기 시작한다.

 

 

우선 쇼핑환경이 열악해진다. 지방 고령자들은 대부분 식재료를 자급자족한다. 도시처럼 마트에서 장만할 이유가 없다. 식재료 이외의 여러 생필품도 소비를 거의 하지 않는다. 수요가 없으니 상점 하나 없는 마을이 생기고 그 결과 꼭 필요한 생필품이나 식재료를 구입하려면 근처 도시까지 멀리 이동해야 하는 상황이 된다. 이런 상황을 쇼핑난민이라고 하는데 일본에서는 이미 지방 마을에 사는 고령자들이 겪고 있는 쇼핑고통의 현실이다. 이렇게 쇼핑을 위해 먼 거리를 왕복하려해도 교통 환경이 열악해서 고통이 가중된다. 최근에 지방뿐만 아니라 수도권에서도 버스노선이 폐지되는 지역이 많다. 주민들이 버스노선 폐지에 항의하는 시위를 하는 모습을 뉴스에서 종종 접한다. 고령자가 많아지고 그들의 이동 빈도가 적어지면서 버스 적자가 더 심해진다. 그러니 손해를 보면서 버스를 운행할 수도 없다. 쇼핑난민들이 된 고령자들이 버스를 이용해서 인근 지역으로 쇼핑을 가려해도 버스 배차시간이 줄어들고 심지어 노선이 폐지되니 그 고통이 가중된다. 본의 아니게 쇼핑난민, 교통난민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자가용을 운행하는 전원생활자에게 대중교통 환경은 별 문제가 안 되겠지만 쇼핑환경은 주민들보다 더 심각할 가능성이 있다. 원주민들과 달리 그들은 아직 식재료 자급자족이 불가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장마철 폭우로 도로가 막히거나 겨울 폭설로 차량 이동이 불가할 경우 생필품, 식재료를 준비해 두지 않았다면 그야말로 쇼핑 난민이 될 가능성이 많다. 이런 비상상황을 당해보면 전원생활이 자칫 악몽이 될 수도 있다는 얘기다.

 

 

지금 지방마다 겪고 있는 가장 심각한 문제는 의료 환경이다. 지방마을에는 병원은 고사하고 작은 의원조차 없는 곳이 많다. 앞서 살펴 본 바와 같이 쇼핑시설이 떠나고 버스 노선이 폐지되는 것은 불편의 정도로 생각할 수 있겠지만 의료시설이 없다는 것은 상황에 따라 죽고 사는 문제와 직결된다. 의료시설도 인구가 자꾸 줄어드는 지방에 있을 이유가 없다. 의사들도 지방 근무를 기피한다. 최근 뉴스를 보니 어느 지방 병원에서는 간호사를 구하지 못해 응급실을 폐쇄했다고 한다. 그럴 수밖에 없는 현실이라고 생각한다. 어느 지역에서는 병원이 멀어서 응급실로 가는 도중에 위급환자가 사망하기도 했다. 지방 중소도시에 병원이 있다고 해도 의료진과 시설이 부족해서 환자에게 적절한 대응이 안 되는 경우도 많다. 좀 아는 시골 사람들은 근처 대도시 병원으로 가고 제대로 아는 사람들은 서울 대형 병원으로 간다는 이야기는 지방 의료현실을 적나라하게 표현하고 있다. 실제 서울 대형 병원들은 전국에서 모여 든 환자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다. 의료 환경이 좋은 대도시에 사는 고령자 중에는 거의 매일 병원을 찾아다니는 고령자들도 생겨났다. 소위 의료쇼핑족이라 칭한다. 최근 통계를 보니 1년에 300일을 진료 받은 고령자가 있었다. 매일 병원으로 출퇴근 했다는 이야기가 된다. 이런 특수한 경우는 예외로 하더라도 도시의 편리한 의료 환경에서 살다가 동네에 의원하나 없는 의료오지에서 사는 것은 심리적으로 상당한 불안요인이 될 수 있다. 그것은 심리적 불안 요인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실제 위급상황일 때 살고 죽는 문제로 직결 될 수도 있으니 섣불리 전원으로 가기가 겁나는 것이다.

 

 

전원생활을 하다가 도시로 유턴한 사람들은 대부분은 그 지역 토착민들과의 갈등 상황을 견디지 못하고 돌아온 경우가 많다. 많은 경우 토박이 동네사람들은 도시에서 내려온 사람들에게 우호적이지 않다. 농어민들은 평생 자연의 힘과 계절의 변화, 날씨에 가슴 졸이며 살았던 사람들이다. 자연은 그들의 삶 속에서 극복해 나가야만 했던 거대한 힘이며 그로인해 모진 세월을 살기도 했고 혜택도 보았다. 그렇게 살아온 그들에게 풀 한포기 나무 한그루의 의미는 도시에 사는 사람들의 그것과 많이 다르다. 그런 그들의 터전 근처 야산을 밀고 나무를 없애고 축대를 쌓아 집을 지으니 그리 좋아 보이지 않는 것이다. 전원생활을 하려고 오는 사람들이 전원을 망가뜨리는 역설적인 상황이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더 심각한 것은 오랜 세월 공동체를 형성하고 있는 원주민들과 전원생활을 하고자 그 공동체 속으로 들어 온 도시 사람들과의 화학적 결합이 쉽지 않다는 것이다. 따지고 보면 토착민들과 전원으로 내려 온 사람들이 공통의 관심사를 찾기가 쉽지 않다. 상호간에 살아 온 방식도 다르고 사고도 다르다. 그럼에도 주인행세를 하려드는 원주민들이 많다. 전원생활을 하겠다고 마을에 이주해 온 사람이 동네 어른들을 찾아뵙지 않는다는 이유로 그 동네를 떠나라고 데모를 하는 곳도 있었다. 텃세의 끝판을 보는 것 같다. 이렇듯 관계의 문제는 어느 지역에서 계속 정착 할 수 있느냐 없느냐를 결정하는 절대적 요인이 된다. 이런 텃세는 전원생활을 꿈꾸는 도시인들의 의지를 꺾어 버리고 그 결과 지방고립, 지방소멸을 더 가속화할 것이다. 이렇듯 전원생활은 그리 녹녹치 않다. 도시 사람들이 꿈꾸는 전원생활은 지금 우리나라의 현실로 볼 때 한여름 밤의 꿈으로 그칠 가능성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