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락한 은퇴 생활을 위한 노후대책이 있든 없든 간에, 장수시대를 사는 50+ 직장인들에게 ‘정년퇴직’이라는 단어는 가장 두려운 현상으로 치부되고 있다. 유교적 대가족제도가 해체된 한국사회에서, 은퇴 생활이란 자식들이 떠난 빈 둥지에서 노부부만이 쓸쓸히 살아가는 백수생활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은퇴제도는 산업화사회 이후에 생겨난 것이다. 그전에는 나이 많은 사람도 평생 장인(CRAFTSMAN) 정신으로 일했다. 기술혁신 즉 변화가 없는 사회에서는 가장 오래 종사한 경력자가 최고의 기술자였다. 장인은 작업과정과 산출물을 모두 통제하고, 일을 통해 만족감과 자기 자신을 확인하는 사람이었다. 산업화 시대와 함께 분업-협업을 통해 일하는 근로자는 일을 통한 정신적 보상은 사라지고, 월급(SALARY)만이 유일한 보상이었다. 천직(VOCATION)은 직업(OCCUPATION)으로 바뀌었다.

 

또한 산업사회의 경쟁적 상업 환경에서는 진보만이 무기인데, 나이 먹은 근로자는 환경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는 진보의 장애물이었다. 경쟁에 이기려면 진보를 가로막는 60세 이상 고령근로자를 강제퇴직 시키는 ‘정년퇴직’이 해결책이었다. 더 젊은 조합원들에게 안정적 일자리가 확보되는 정년제도에 노동조합도 적극적으로 동조했다. 단지 산업인력이 퇴직자들을 먹여 살리는 것만이 문제였다. 그 해결책으로서 등장한 것이 대개 65세부터 지급되는 오늘날의 노령 연금제도이다.

 

 

21세기 들어 고령화시대를 맞은 베이비붐 세대의 대량은퇴와 저출산율로 인해 새로운 노동인력 공급이 감소하자 사정이 달라졌다. 은퇴와 연금지급시기를 늦춰야 한다는 국가정책이 지구촌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뉴욕 타임스는 지난해 12월 연말 특집에서 세계 주요 국가별로 정년과 연금문제에 대한 정책변화를 소개하면서 미국의 변화를 촉구하고 나섰다. 뉴욕타임스가 예시한 9개국의 정년퇴직제와 연금제도의 최근 변화추이를 소개한다.

 

일본: 세계에서 가장 빠른 고령화 사회이자 세계 최장수 국가이다. 연금계정의 적자누적과 함께 저출산으로 인한 인구 감소와 노동력 부족으로 고령 노동자의 퇴직 연기를 국가가 장려한다. 이에 따라 정년퇴직연령을 넘긴 노령인구의 과반수가 현업에 종사하고 있다. 미국, 유럽 등 전 세계를 통틀어 노령취업률이 최고 수준이다. 아베 총리는 정년퇴직연령을 65세로 늘리고, 70세 이후 연금수급자에게는 특별한 혜택을 줘야 한다는 구상을 지난해 10월 닛케이(日經)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밝힌 바 있다. 노인들의 고독사가 연간 수천 건에 달해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브라질: OECD에 따르면 남자 56세, 여자 53세가 브라질 근로자의 평균퇴직연령이다. 최종 수입의 70%를 55세부터 지급하는 연금제도 때문이다. 조기퇴직과 조기연금지급이 국가재정파탄의 원인이 되고 있다. 세계은행은 연금개혁이 없으면 국가파산상태가 올 것이라고 경고했다. 미세우 테메르 브라질 전임 대통령은 연금지급시점을 10년 연기하는 연금개혁안을 국회에 제출했지만, 입법에 실패했다. 자이르 보우소나루 대통령의 새 정부가 연금개혁을 추진 중이지만 쉽지 않다.

 

독일: 현재 65년 7개월인 평균 퇴직연령이 점차 늘어나 10년 후인 2029년이면 67세로 추산되고 있다. 2016년 연방의회는 정년퇴직연령을 지나서도 연금을 납부하거나, 중도에 찾을 수 있도록 연금법을 개정, 유연한 수급제도를 마련했다. OECD는 독일 은퇴자의 평균연금 수급비가 51%에 불과해, 비슷한 선진국에 비해 낮은 수급률을 보여주고 있다고 발표했다.

 

프랑스: 근래 정년퇴직 연령이 60세에서 62세로 늘었다. 국가가 지출하는 연금이 GDP의 14%나 차지해, OECD 국가 평균 8.2%를 훨씬 넘어서고 있지만, 정부의 연금법 개정 노력에 대한 반대시위가 정치 불안의 중요 요소가 되고 있다. 이로 인해 사르코지 대통령이 물러났지만, 마크롱 대통령의 개정안이 2025년부터 시행되게 된다. 이 개정안은 공공과 민간부분 등으로 나뉘어 있는 복잡한 연금제도를 하나로 통합하게 되어 있다. 프랑스는 65세 이상 노령층의 소득이 국민평균소득보다 높다고 OECD가 밝혔다.

 

중국: 자녀 1명만 허용하는 가족정책이 2015년까지 40년 이상 시행되어 왔고, 더불어 농촌 거주자에 대한 특혜로 인해 노동력의 공급 감소와 함께 공적 연금계정의 파탄을 가져왔다., 정부가 연금기금의 운용을 위한 주식투자를 허용하고, 사적 연금보험가입을 권장함으로써 정부의 부담을 경감하고 있다.

 

영국: 근래 정부의 긴축재정으로 사회복지부분 지출이 계속 줄어들어 75세 이상 노령층의 빈곤율이 OECD국가 중 최고치이다. 또한 근로자의 연금 수급률이 평상임금의 3분의1에 불과한 수준이다. 영국정부는 정년퇴직제를 시행하지 않고 있지만, 60세부터 지급하는 여자들의 연금수급연령을 남자들처럼 65세로 올렸다. 이와 함께 2020년에는 연금수급연령이 66세, 2026년에는 67세로 늘어난다.

 

캐나다: 65세부터 받는 노령연금을 67세로 올리려던 전임 보수당 하퍼 수상을 총선에서 패배시키고 집권한 트뤼도 수상은 수급연령을 올리는 대신 연금기금 운용의 규제를 완화해 효율성을 제고시키는 한편 연금공제율을 4.95%에서 5.95%로 올렸다. 또한 캐나다 국민의 40% 이상이 공적연금 외에 다른 연금저축에 가입하고 있고, 무료의료제도 덕분에 은퇴자의 생활비 부담이 경감되고 있다.

 

호주: 호주의 연금제도는 퇴직 후 소유재산 정도에 따라 연금이 차등 지급되는 한편 고용주는 근로자 임금의 9.5%를 연금기금으로 조성하도록 의무화하고 있다. 연금저축의 근로자에게는 세제 혜택도 주어진다. 정부 통계청 발표에 의하면 퇴직여성들의 연금이 남성보다 37%나 적다는 것이 문제다. 호주에서는 정년퇴직제가 실시되고 있지는 않지만, 최소한 55세 이상 퇴직자에게만 연금수급자격을 준다. 연금수급 연령을 2023년까지 현행 65세에서 67세로 늦추려던 정부여당의 계획은 지난해 10월 모리슨 총리가 공식 철회했다.

 

네덜란드: 근로자는 수입의 18%를 회사 연금기금에 납부해야 하며, 이 기금은 네덜란드 법에 따라 고용주, 또는 회사자금으로부터 분리되어 엄격히 관리된다. 네덜란드인의 정년퇴직연령은 최근까지 66세이지만, 평균수명이 늘어나는 2021년이면 67세가 될 것으로 예견된다. 정년퇴직자는 현역시절 임금의 100%를 연금으로 받기 때문에 고령자의 빈곤율은 거의 0%에 가깝다고 OECD가 발표했다.

 

청년실업난과 노인 일자리 주선이 가장 화급한 사회적 이슈로 등장한 우리에겐 위에 나열한 국가들의 사례가 다소 '먼 나라 이야기'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인구고령화와 저출산 속도에서 세계 신기록을 세우고 있는 우리나라에서도 정년연장과 연금개혁으로 인한 정쟁 불안은 머지않은 장래에 겪어야 할 시련이다.

 

참고자료: Why the world needs to rethink retirement By Katie Robertson, NY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