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턴가 유니버설 디자인이라는 용어가 만능처럼 사용되고 있다. 장애인을 위한 제품뿐만 아니라 공공디자인이나 일반 제품에도 유니버설 디자인이라는 단어를 붙인다. 유니버설 디자인 개념을 만든 미국의 로널드 메이스는 자신이 휠체어를 타고 다니는 장애인이었다. 처음엔 신체가 불편한 사람들이 편하게 사용하는 제품 디자인에서 출발하였으나 곧 누구나 사용하기 편리한 제품이나 건축, 환경, 서비스 등을 구현하는 디자인으로 개념이 발전했다. 유니버설 디자인의 7가지 원칙은 누구나 이용할 수 있고, 사용이 자유로우며, 사용법이 쉽고,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고, 실수가 발생해도 위험하지 않으며, 적은 힘으로도 사용 가능하고, 사용하기 쉬운...등의 개념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누구나이다. , 연령이나 성별, 개인의 능력이나 신체적 차이, 심지어 국적이나 언어를 초원한 보편성을 지닌 디자인 개념이다. 핸디캡을 가진 사람들만을 위한 디자인이 아니라는 얘기다. 그러므로 유니버설 디자인 개념 안에 무장애 공간 디자인 개념, 즉 베리어프리[Barrier Free]개념이 포함된다.

 

 

 

주변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무장애 공간 사례로는 휠체어를 탄 사람들이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도록 인도의 턱을 없애고 건물 진입부에도 계단 외에 경사로를 설치하는 것 등이다. 특히 주택에서 문턱을 없애고 욕실바닥을 미끄럽지 않은 재료를 사용하고 변기나 욕조 주변에 손잡이를 설치하는 것도 유니버설 디자인의 범주에 들어간다. 요즘 건축전시회나 의료기기박람회에 가보면 핸디캡을 가진 사람들을 위한 다양한 제품들을 접할 수 있다. 유니버설 디자인이 표방하는 궁극적 목표는 모든 사람들, 달리 표현하면 누구나의 삶을 더 행복하게 하는데 그 지향점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공공 디자인은 기능적인 면에서 보편적이어야 하고 그에 더해 오감만족 디자인이어야 한다. 그런 관점에서 우리 주변에 산재해있는 공공시설을 바라보노라면 유니버설 디자인에 반하는 것이 많다.

 

그 한 예로 지하철 승강장에 있는 승객용 의자를 들 수 있겠다. 승강장 의자는 열차를 기다리는 동안 잠시 앉아 쉬는 곳이다. 그런데 그 의자에 앉을 수 있는 인원수를 제한하듯이 중간 중간에 팔걸이를 만들어 둔 의자가 있다. 그런데 그 팔걸이의 높이가 낮아서 팔걸이의 용도라기보다는 의자에 눕지 못하도록 중간에 팔걸이 모양의 장애물을 만들어둔 것으로 보인다. 지하철 승강장 의자에 누워있을 사람들이 얼마나 될지 모르겠지만 설혹 누군가 잠시 누워 있을 수밖에 없다면 그는 많이 지쳤거나 삶에 힘겨운 사람이겠다. 호텔로비에 비치된 푹신한 소파에서 편한 자세로 쉬려면 최소한 말쑥한 차림을 하고 있어야 쫓겨나지 않는다. 커피숍 구석자리에서 음악을 들으며 졸고 싶으면 커피 한잔을 앞에 놓아야한다. 그러나 많은 이유로 절박한 상황에 내몰리게 된 사람들이 우리 주위엔 너무도 많다. 어느 순간 잠시라도 누워서 쉴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한 사람이 편하게 누울 수 있는 의자는 우리 주변에 그리 많지 않다. 우리의 공공디자인은 유니버설 디자인을 표방 하면서 정작 쉬고 싶은 사람들이 눕지 못하게 의자에 칸칸이 턱을 만들거나 움직일 수 없는 돌 의자를 띄엄띄엄 놓아두었다. 지친 그들에게 잠시 쉼을 제공할 수 있는 의자가 누구나를 위한 공공디자인이고 이것이 유니버설 디자인 개념이다.

 

에스컬레이터나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지 않은 지하철 출입구를 개선하는 작업이 한창이다. 급격히 고령사회로 바뀌면서 지하철을 이용하는 고령자도 많아지고 그에 따라 엘리베이터 이용객이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지하철 역사의 엘리베이터 앞에 고령자가 길게 줄을 서 있는 모습을 자주 보게 된다. 그런데 엘리베이터의 숫자는 턱없이 적다. 그나마 운행하는 엘리베이터 중에는 크기가 작은 엘리베이터가 많다. 다리가 불편하신 아버지를 모시고 지하철 엘리베이터를 타보니 그 불편함을 실감할 수 있었다. 내부 크기가 작아서 어린아이들과 함께 타도 7~8명이 타면 더 들어갈 수 없는데도 엘리베이터 제품 설명서에는 15인 승이라고 적혀있었다. 누군가 휠체어를 타고 들어오면 여유 공간이 거의 없다. 만원이 되어 엘리베이터 문을 닫으려 해도 닫히지 않는다. 닫힘 버튼을 눌러도 출입문 작동이 안 된다. 30초 동안 기다려야 문이 닫히도록 조작이 되어있기 때문이다. 거의 30초가 되어서 문이 닫히려고 할 때 누군가가 밖에서 버튼을 누르거나 안에서 실수로 버튼을 누르면 또다시 30초를 기다려야 한다. 이러한 문제로 인해 일정이 바쁘거나 마음이 급한 고령자들 간에 다툼이 자주 일어난다는 것이다. 실제 엘리베이터에 탈 수 있는 인원과 제품설명서에 수용인원이 다르게 표기된 것은 엘리베이터 제작업체에서 답변을 들어야 하겠지만 문 닫힘 기능을 30초로 제한해 놓은 것은 이용객에게 상당히 불편해 보인다. 문 닫힘 기능을 일정시간 제한하는 것이 엘리베이터 이용객의 안전에도 별 이득이 없어 보여서 엘리베이터 관리 업체에 전화해 보았다. 그러나 관리업체에서도 문 닫힘 시간을 정해둔 이유를 알지 못했다. 문 닫힘 시간제한으로 민원이 많이 발생하고 이용객 간에 다툼이 많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무슨 이유인지 모르면서 문 닫힘 시간이 30초로 제한되어 있는 것은 그대로 방치하고 있었다. 지하철 승강장에 비상사태가 발생하여 지상으로 시급히 대피해야 할 경우에도 엘리베이터 문은 30초를 기다려야 닫히게 되어있으니 이런 경우에는 고령자나 장애인에게 더 위험한 시설이 될 수 있다. , 공공시설의 잘못된 매뉴얼로 인해 이용객이 평소에 불편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이용객에게 오히려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 유니버설 디자인은 이렇게 이용객의 서비스에 대한 것도 포함한다. 고속도로 휴게소나 기차역, 공연시설 등의 화장실은 유니버설디자인이 실종된 대표적인 예다. 특히 공연장처럼 특정시간에 이용객이 몰리는 시설에서의 여성용 화장실 부족은 심각하다. 행락 철이나 명절처럼 사람이 몰리는 시기에 고속도로 휴게소의 화장실 앞에 죽 서있는 여성들을 보면 마음이 불편하다. 남성과 여성의 화장실 이용시간이 차이가 나는 것은 당연하고 그에 맞게 여성용 화장실을 대폭 늘려야한다. 이렇게 아주 상식적이고 당연한 것이 반영되지 않은 공공시설이 많다.

 

서울시는 2013년에 WHO '고령친화도시네트워크에 가입되었다. ‘고령친화도시란 고령화 되어가는 시민들의 안전과 건강뿐 아니라 사회·경제적 참여가 자유로운 도시환경을 만듦으로써 평생을 살고 싶은, A.I.P[Aging In Place]가 가능한 도시를 말한다. 그러려면 기장 우선적으로 공공시설부터 누구나를 위한 디자인, 즉 유니버설 디자인 개념에 충실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