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매일 기쁜 맘으로 건강하게 오래 오래 우리와 같이 살아가요. 내 아이가 여러분들의 모습이니까요. 사랑합니다, 여러분.”

“저희 오빠에게 이식받으신 건 아니지만, 그래도 오빠 대신 잘 살아주세요. 이식받은 장기로 100년 넘게 사세요!”

“내 자녀가 소중했던 만큼 당신의 삶도 소중하고 아름답습니다. 항상 용기와 희망을 품고 오늘도 열심히 살아가기를 소망합니다. 사랑합니다.”

“오늘 예쁜 바다를 보고 왔습니다. 제 누나는 이런 바다를 볼 수 없지만, 여러분은 오래 볼 수 있으면 좋겠어요.”

“장기를 이식받은 당신이 계시기에 저희 기증자 가족들은 행복합니다. 진정한 사랑을 주고받은 우리 모두 감사의 생활을 합시다. 사랑을 듬뿍 받으시고 나누는 귀한 생명이 되시기를…”

“항상 보고 싶다는 그리움으로 가슴 속에 묻고 살아온 긴 날들이었습니다. 이제는 마음을 열고, 누군가 건강하게 대신 살아준다면 우리 아들 역시 충분히 빛나게 살아주었다는 것을 기쁘게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당신의 사랑을 영원히 기억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당신들의 숭고한 결정이, 열세 살부터 당뇨합병증으로 고생하다가 혈액투석 10년으로 일상생활을 할 수 없었던 제게 제2의 새로운 인생을 선물해 주셨습니다. 사랑하는 가족을 잃으셨지만 그 분의 몸은 죽지 않고 우리들 몸 안에서 여전히 생생하게 살아 숨 쉬고 있습니다. 죽을 때까지, 아니 죽어서라도 은혜 잊지 않고 당신들의 가족이 살아 숨 쉴 수 있도록 열심히 관리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당신의 사랑을 항상 기억하며 생명을 소중히 여기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지난 11월 3일과 4일 설악산에 있는 한 콘도에서는 ‘뇌사장기기증인유가족(도너패밀리)’과 ‘신∙췌장이식인(신장, 췌장을 이식받은 환자)’이 한 자리에 모여 서로를 위로하고 감사의 마음을 주고받는 <생명의 물결 1박2일 캠프>가 열렸습니다. 눈부시게 파란 하늘 아래 시원한 바람을 쐬며 설악산 단풍 구경도 하고 맛있는 밥도 먹고 재미있는 레크리에이션도 함께 하면서 모처럼 마음을 열고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였습니다.

도너패밀리들이 가족 단위로 참석했기 때문에 아주 어린아이들부터 머리 하얀 어르신들까지 연령도 다양했고 사는 곳이며 하는 일은 물론 장기기증까지의 사연들도 다 달랐지만, 한 가지 공통점은 깊고 아픈 고민 끝에 가족의 장기를 기증하기로 결정을 내렸고 그 결정으로 다른 사람들의 생명을 살렸다는 점이었습니다.

그날 특별히 눈길을 모았던 행사는 이식인들이 기증인 한 사람 한 사람의 영문 이름 이니셜이 새겨진 팔찌를 직접 만들어, 가족 개개인에게 채워주는 시간이었습니다. 우리나라는 아직 법적으로 도너패밀리와 이식인이 서로를 알 수 없고 편지 교환조차 할 수 없기 때문에 기증인과 이식인이 직접 짝을 이룬 것은 아니지만, 누군가에게 생명을 선물하고 또 누군가로부터 생명을 선물 받았기에 작은 팔찌 한 개 한 개에 새겨진 이름과 그 정성만은 모두를 울리고도 남았습니다.

캠프에서 제가 맡아 진행한 프로그램의 제목은 ‘괜찮아, 괜찮아!’였습니다. 조별로 둘러앉아 원형의 큰 도화지를 다양한 모양으로 잘라 한 장씩 나눠가진 후, 도너패밀리는 이식인에게 이식인은 도너패밀리에게 짧은 편지를 쓰고 자신의 마음을 간단한 그림으로 표현한 다음 색칠해서 꾸밉니다. 이 글 맨 앞에 소개한 것이 바로 그때 쓴 몇몇 분의 편지입니다.

조각 그림을 다 모으니 둥글고 커다란 전체 그림이 되었는데 각기 다른 글씨와 그림, 색깔이라 안 어울릴 것 같았지만 모아놓고 보니 세상 어디에도 없는 독특하고 아름다운 그림이 완성되었습니다. 그 위에 각자 자신과 도너패밀리(혹은 이식인)을 뜻하는 두 개의 목각인형을 앉히거나 세우거나 눕혀놓고는, 그 사이에 작은 촛불을 밝힌 채 서로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를 돌아가며 나눕니다. 한 사람이 말을 마치고 나면 함께 둘러앉은 같은 조 식구들이 다 같이 나지막하고 다정한 목소리로 “괜찮아, 괜찮아!”라고 말해줍니다.

깜깜한 공간, 각자 밝힌 작은 촛불 사이로 서로를 위해 말해주는 “괜찮아, 괜찮아!” 소리가 번갈아 들려오고 훌쩍이며 우는 소리도 들립니다. 누군가는 우는 사람의 손을 가만히 잡아주고, 누군가는 등을 쓸어내리며 안아줍니다. 아무리 숭고한 일이라 해도 사랑하는 사람의 장기를 누군가에게 주기로 결정하기까지의 고뇌와 아픔, 왜 자식을 갈기갈기 찢어놓았냐는 주위의 몰이해와 모진 질책들. 세상 그 누구도 모를 수많은 이야기들이 서로의 가슴 속으로 깊이 스며듭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이 마음 누구보다 잘 아는 우리들이니까요.

그러면서 우리 모두는 알게 되었습니다. 눈물이 나면 울어도 된다는 것을, 큰 소리로 울어도 된다는 것을. 소리쳐 이름 부르고 싶을 때는 큰 소리로 이름 불러도 된다는 것을. 미안할 때는 미안하다고 말해도 된다는 것을. 보고 싶어 죽을 것만 같을 때는 보고 싶어 죽을 것 같다고 말해도 된다는 것을. 그리움이 차고 넘칠 때는 그립다고 말해도 되고, 외롭고 힘들 때는 외롭고 힘들다고 말해도 된다는 것을. 슬픔 속에만 머물러 있지 않고 웃음이 나올 때는 웃어도 된다는 것을. 일상 속에서 작은 행복이 느껴질 때는 맘껏 행복해해도 된다는 것을. 사랑이 찾아오면 망설임 없이 사랑한다고 말해도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속으로 속으로만 집어넣지 않고 꺼내놓고 말해도 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배웠습니다.

그래서 나 자신을, 내 가족을 마음으로 안아주며 말하기로 했습니다. 목각인형이 되어 앉아있는 우리와, 그런 우리를 따뜻하게 밝혀주는 촛불을 바라보며 모두가 한 목소리로 다정하게 말했습니다. “괜찮아, 괜찮아!”

그리고는 두 개의 목각인형을 가만히 바라보았습니다. 나와 당신은 이렇게 연결되어 있음을 깨닫습니다. 목각인형은 집에 가지고 가서 잘 보이는 데 놓고 “괜찮아, 괜찮아!”를 기억하기로 약속하고, 동시에 자기 앞의 촛불을 불어서 끕니다. 촛불마저 꺼진 새카만 어둠 속에서 또 다시 우리는 깨닫습니다. 지금 눈앞에 있는 촛불은 꺼졌지만 우리들 가슴 속 사랑의 촛불은 꺼지지 않은 채 언제나 우리를 따뜻하게 지켜주리라는 것을 말입니다.

그날 밤 우리 모두는 함께 울었고, 함께 웃었습니다. 서로 눈빛을 나누었고, 서로 마음을 주고받았습니다. 아픔의 시간을 함께 겪고 살아남은 자의 마음이 꼭 이럴 것만 같았습니다. 자신의 모든 것을 남김없이 주고 떠난 기증인, 어려운 결정을 내리고 그 마음을 평생 안고 살아가는 도너패밀리, 귀한 생명을 받아 새롭게 삶을 얻은 이식인들. 각자 자기 앞의 삶을 살아갈 뿐이지만, 그래도 장기기증이라는 소중한 인연으로 묶여 생명과 사랑 나눔으로 하나가 된 사람들입니다.

 

 

물질 나누기, 관심과 사랑 나누기, 지혜와 마음 나누기, 재산 나누기, 생명 나누기. 어느 것 하나 소중하지 않은 나눔은 없겠으나 하나 뿐인 생명 나눔을 실천한 분들 곁에서 많은 생각으로 한층 깊어진 가을입니다. 하여 저도 무엇이라도 나누며 살기로 다시 한 번 결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