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지타노: 그것은 사랑 - That’s Amore Ⅱ

 

아말피로 가는 해안 절벽 위에 서 있는 포지타노
 

나폴리를 떠나서  폼페이를 지나 해안가 절벽길을 달리다 보면 소렌토가 절벽 아래로 보이고 아말피  직전에 아름다운 작은 마을이 있다. 길에선 잘 안 보이지만 이곳은 유럽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여름 휴양지 포지타노다.

괴테는 1987년 9월 3일 새벽 3시에  35세 생일 파티 후 몰래 나와 이태리로 도망치듯 떠났다. 괴테는 시칠리아를 여행하기 위해 배를 타고 나폴리를 떠나 팔레르모로 갔는데, 230년 지나고 2018년 9월 3일에 새벽 6시에 딸과 나는 팔레르모를 떠나 배를 타고 새벽에 나폴리에 도착했다. 괴테를 모방하려는 나도 생일이 9월 5일이어서 2일 뒤다.

팔레르모 항을 떠나 밤새 배로 여행한 우리는 나폴리 항에서  배를 내린 후 나폴리 역으로 갔다. 포지타노까지 셔틀버스를 탈 장소를 살펴보고 온 딸의 손에 들려 있는 것은 나폴리 피자와 빵이었다. 스포리아텔라라는 빵인데 조개 모양의 페스튜리 안에 치즈가 차 있다.

 
나폴리의 디저트로 유명한 스포리아텔라: 속에 치즈가 차있다
 

딸이 없었더라면 이번 여행이 가능했을까 의문이 든다.

 
 

| 딸의 이야기

 

결혼하고 또 남보다 더 돈도 모으고 성공도 하고 싶은 나이지만 엉뚱하게 워킹홀리데이(Working Holiday: 해외 방문 중 여행과 여행 비용을 충당하기 위한 취업을 허가하는 비자이며, 방문하는 각 국가에서 발급한다)로 파리에 가서 살다 오겠단다. 유럽에서 장기 체류를 처음 해보는 것은 아니다. 대학생 때도 워크 캠프(Work Camp:  다국적 참가자 10~15명의 청년들이 2~3주간 함께 생활하며 봉사활동과 문화교류를 하는 96년 역사의 국내 최대 국제 교류 프로그램)로 프랑스를 다녀왔다. 딸은 프랑스어를 고등학교 때 배웠다.  그 당시도 워크캠프를 마치고 곧바로 돌아오지 않고 친구와 여행했다. 프랑스 남부에서 워크캠프하고 이태리 피사부터 우리의 여정을 거꾸로 훑어 내려오다 다시 로마로 갔다가 스페인까지 여행하고 귀국했다. 그 여비는 휴학하며 아르바이트로 마련했다. 당시 딸은 포지타노 해안에서 반나절 놀다가 떠났다. 포지타노는 워낙 좁은 지역이라 사람들이 몰리는 여름철에는 빈 방이 없고 또 비싸다. 대학생으로는 포지타노에서 묵을 여유가 없어 바다에서만 수영하고 떠났지만 이 아름다운 해변을 엄마와 다시 오고 싶다는 마음을 먹었다고 했다.

그런데 딸의 꿈이 이루어졌다. 사실 여행 앞두고 두 달 전부터 묵을 숙소를 인터넷으로 찾고 있는데, 우연히 어느 날 집 하나가 올라왔다. 그것도 예상보다 훨씬 싼 가격에. 아마도 누군가 예약했다가 취소해서 갑자기 방이 빈 것 같다. 우리는 행운이라고 생각하고 바로 예약했다.

 

 

|이번 여행에서 행운은 항상 우리 편이었다.

 

나폴리에서 탄 셔틀 택시 기사가 우리를 포지타노 언덕을 내려오다 포사포사 호텔 앞에서 내려준다. 그리고 바로 위의 길을 가리키며 두 번째 집이 우리가 묵을 집이라고 말한다. 전화를 하자  중년의 주인 여자가 달려 내려와서 덥석 내 가방을 들고 간다. 길게 이어진 계단을 걸어 올라갔다. 그리고 세 채가 나란히 절벽 위에 서있는 집 첫 번째 문을 열고 정원으로 안내했다. 아래 해안과 반대편 해안까지 바라보인다. 주인 마리아는 여기가 식당이고 매일 아침 식사를 할 수 있다고 말하며 우리가 묵을 곳으로 안내했다. 밖으로 나가 골목 위 세 번째 대문을 열었다. 하얀 복도를 들어가 첫째 방이었다. 하얀 침대 옆에 열린 창문으로 해안 풍경이 보인다. 그리고 침대 발치엔 화장대와 옷장 그리고  옆엔 샤워장과 화장실이 있다. 며칠을 지내기엔 안락한 방이다. 게다가 오래된 나무 덧창을 열면 아래로 골목길이 보이고 멀리 바다가 보인다.

 
아침마다 바다를 바라보며 식사를 한 정원

 

아침에 해뜨기 전 창밖의 풍경
 
포지타노 해변으로 가는 지름길
 

절벽길을 오르내리면 이런 사진을 연출할 수 있다

 

아순타 성당의 돔의 타일이 햇빛에 반짝인다
 

포지타노에서 매일 바닷가에서 파라솔을 빌려 일광욕도 하고 수영하고 맛집도 찾았다. 더 절벽을 위로 올라가 해안 전체를 내려다보이는 맛집에서 해물 튀김과 맥주를 먹었다. 우리는 해안까지의 내려갈 때나,  또는 그 절벽 위의 도로까지 오를 때 계단을 이용했다. 이태리의 모든 여행이 그렇지만 특히 포지타노 같은 해안 마을은 튼튼한 자신의 두 다리로 걸을 수 없으면 다닐 수 없다. 45~60도 정도의 경사진 좁은 계단을 다녀야 한다. 처음 마을이 만들어질 때 차를 고려하지 않고 세웠기 때문이다.  아주 좁은 길로 차가 들어와도 중간에서 끝나고 게다가 교통체증으로 3~4배의 시간이 걸린다. 2년 전 교통사고로 입원했을 당시는 다시 이런 여행을  생각도 못 했는데 잘 오르니 딸은 물론  나 스스로도 신기했다. 그 골목길  담벼락 좁은 사이에서 아름다운 아순타 성당이 여며  잠시 그곳에서 스케치를 했다.

 

 

|샤르르~  샤르르르~ 아름다운 파도소리

 


파란 지중해와 검은 자갈 해변 그리고 파란 비치 의자

 

바다에서 수영을 하고 나온 딸이 “물속에서 자갈을 스치는 파도소리가 들려.”라고 말한다. 그 소리를 듣기 위해 그 다음날도 또 수영을 했다. 나도 그 소리를 들었다. 귀를 물속에 잠그려면 배영을 하면 파도가 자갈해변의 굵은 모래를 스칠 때 나는 아름다운 소리가 들린다. 파란 지중해 바다 위에 두둥실 구름처럼 뜬 채 파도에 몸을 맡기면 귓가에 “샤르릉~“ 하는 기분 좋은 소리가 들린다.

 
가족의 기념행사를 성당 앞에서 기념하는 사람들로 붐빈다
 
해안으로 내려가는 좁은 길은 상품과 구경하는 관광객으로 복잡하다
 
해안에 도착하기 바로 전 마지막 골목
 


|오늘 밤의 주인공은 바로 나

 

그리고 오늘이 엄마인 나의  생일이다. 딸은 그날 저녁에 바다에서 돌아와 샤워를 하며 나에게도 예쁘게 옷을 입을 것을 부탁한다. 유럽 여자들은 저녁이 되면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사랑스러운 여자로 변신한다. 여행 중에도 드레스를 준비해서 저녁엔 구두 신고 백과 숄을 걸치고 장신구도 장식하고 멋지게 외출한다. 반면 우리나라 여자들은 내 나이의 중장년을 지나면 대부분 중성적으로 변한다.

딸의 안내를 받으며 간 곳은 숙소 바로 옆 포사포사 호텔이다. 보통 4성급 호텔이라면 우리나라에선 새로 지은 멋진 호텔로 생각하겠지만, 이태리에서는 다른 집보다는 조금 더 오래되고 좀 더 고급스럽다. 호텔의 등급을 정하는데 역사와 서비스 그리고 고객들의 평을 고려하나 보다. 입구에서 식당을 물으니 4층으로 안내한다. 베란다로 나가니 우리 집 정원에서 보이는 해안의 야경이 펼쳐져 있다. 그리고 웨이터들이 서빙을 하고 있다. 벌써 몇 개의 자리는 이미 손님이 있다. 바다까지 내려가는 길에 즐비하게 늘어선 식당과 술집이 많은데 더 비싸게 먹을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지배인이 다가온다. 그리고 딸이 예약했다며 엄마 생일이라고 말해준다.

이태리의 인심 좋은 아재 같은 그 지배인이 그때부터 나를 그날의 최고의 귀빈으로 만들어 준다. 메뉴 선정 때에도 양이 충분하니 더 시키지 말라고 충고한다. 옆의 테이블엔 비싼데 비해 양이 적으니 다른 걸 시키라고도 한다. 딸이 주문한 메뉴는 전채요리로 문어 냉채 요리와 식사로 파스타 그리고 난 해물 파스타와 와인을 주문했다. 처음 등장한 접시는 호박 냉채 요리. TV 프로그램 “냉장고를 부탁해“에 등장하는 메뉴가 내 앞에서 왔다 갔다 하는 동안 난 맛과 멋에 취한다. 그리고 마지막에 딸이 웨이터에게 귓속말로 했다. 조금 후 누군가 내 뒤로 온다고 느꼈을 때 지배인이  레몬첼로 케이크에 촛불을 켜고 생일 축하 노래를 부르며 걸어오고 있다. 그리고  손님들에게 “이 아름다우신 엄마가 오늘 생신입니다”라고 말해 그 자리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손뼉을 쳤다.

 

포지타노에서 포지타노 호텔서 받은 레몬첼로 생일 케이크
 

딸이 내게 생일카드를 준다.

 

포지타노의 밤이 하늘의 별빛과 또 해안의 영롱한 불빛으로 깊어간다

 

 


 

정리: 기획홍보실 김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