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례자들의 커뮤니티, 필그림 플레이스(Pilgrim Place)

필그림 플레이스에서 거주하는 이들은 필그림 플레이스를 시니어 주거공동체(senior living community)라 부르지만 관심은 단지내로 국한되지 않는다. 많은 이들이 은퇴 이전의 삶이 그러했듯 클레어몬트 지역사회(local community) 나아가 지구사회 전체(global community, Planet Earth)를 공동체로 부르며 관심을 끈을 놓치 않고 일상적 생활에서 참여하고 함께 고민하는 삶을 살려고 노력한다. 필그림 플레이스 주민들의 대다수는 활발하게 생태, 환경, 사회정의, 인권 등에 대한 활동을 하고 있다.

 

정건화
50+재단 이사, 한신대 경제학 교수

 

 

필그림 플레이스(Pilgrim Place) 미국 서부 캘리포니아주 LA 인근의 작은 도시 클레어몬트(Claremont) 있는 은퇴 주거단지이다.

 

활발한 커뮤니티 활동: 자치와 자조

 

가사와 간병의 보조서비스를 제공하는 인력은 필그림 플레이스 단지운영 인력을 제외하고도 200여명에 이른다. 12월호 소식지에는 이들 전체를 초대한 크리스마스 파티를 안내하는 내용이 있었다. 크리스마스 파티를 포함한 거의 모든 활동은 입주민들의 자치조직을 매개로 주민 스스로의 의사결정을 통해 이루어진다.

 

이들 스스로는 필그림 플레이스를 시니어 주거공동체(senior living community) 부르지만 관심은 단지내로 국한되지 않는다. 많은 이들이 은퇴 이전의 삶이 그러했듯 클레어몬트 지역사회(local community) 나아가 지구사회 전체(global community, Planet Earth) 공동체로 부르며 관심의 끈을 놓치 않고 일상적 생활에서 참여하고 함께 고민하는 삶을 살려고 노력한다

 

필그림 플레이스에서 가장 빈번하게 사용되는 말은 '주민 주도(resident-directed)'이다. 은퇴후 고령자들은 정신적, 육체적으로 쇠퇴(diminishing) 가는 것이 자연스럽고 당연한 과정이지만 은퇴후의 삶의 과정에서도 그동안 자신의 삶을 관통해온 가치인 사회정의와 평화, 환경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는 사회적 자원이고자 한다(“We believe that as elders we can continue to be a resource for justice, peace and the environment”). 11  컨퍼런스(한국사회의 생태적 전환을 위한 국제 컨퍼런스)에서 필그림 플레이스를 대표해서 시니어 마을 공동체의 생태적 전환을 위한 활동에 대한 발표를 해준 게일 여사의 발표문에는 필그림 플레이스 단지내 다양한 일상적 활동들이 소개되고 있다.

 

그룹활동의 사례들을 가지 들면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텃밭모임(Community Gardens), 신학연구모임(Doing Theology Group), 생태환경모임(Environmental Concerns Group), 사회참여모임(Pilgrims for Social Action), 페미니즘모임(Woman's Perspective Forum), 국제동향포럼(World Affairs Forum) 등등. 새로운 입주자들이 들어오면 이들모임에서 부지런히 멤버를 충원하려고 달려가는데 그중 가장 적극적이고 열심인 그룹이 페미니즘 관련 모임(women’s perspective)이라고 한다. 이런 모임이 단순히 논의만 하는 것은 아니다. 예컨대 수영모임에서는 매일 3명씩 번갈아가며 수영장의 운영과 관리에 참여하고 종교모임은 매일 공동점심에서의 식사기도를 책임지는 필그림 플레이스라는 공동체의 일상적 운영을 위한 일에 자신들의 시간과 노력을 들인다.  

 

압도적으로 백인 기독교인 중심의 필그림 플레이스이고 미국 사회가 인종간 공간적, 문화적 단절이 존재해서 서로를 ' 닭본 듯' 지내지만 사람들은 이러한 인종적 단절을 넘어서야 한다는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있다. 지난 2 게일 여사와 인터뷰할 당시 '필그림 플레이스의 인종 구성을 다양하게 하고자 노력하지만 생각만큼 쉽지 않다'는 말을 들었는데, 최근 뉴스레터에 실린 '인종다양성을 위한 논의(Pilgrim Place Racial Diversity Dialogue)라는 제목의 기사에는 서로 소통하여 문화적 차이를 극복하고 공동선을 함께 모색하려는 노력이 진전되고 있음이 확인된다. 필그림 플레이스내 다양성과 인력충원 자문그룹(Diversity and Recruitment Advisory Group) 인근 지역 NAACP(National Association for the Advancement of Colored People: 미국 유색인종협의회) 지부의 공동후원을 받아 인종적 다양성과 인종간 평등을 위한 모임이 129 토요일 오후 3시부터 5시까지 단지내 공용공간(Napier Common Room)에서 열린다는 내용이다. 입주자들의 종교도 조금씩 다양해지고 있다. 과거에는 주로 개신교 목회자나 선교자가 주된 구성원이었고 20여년 전만 해도 카톨릭 신자가 없었지만 지금은 많아졌고 불교도 부부도 있다

 

필그림 플레이스에 입주자가 되는 데는 경제적 부담이 따른다. 그런 점에서 필그림 플레이스는 미국 종교계 인텔리 중산층의 시니어타운이라고 있다. 기존 입주자들은 일정한 재산이나 연금 수입이 있어야 입주자격이 주어진다. 입주에 필요한 재정 요건이 점점 까다로와지고 높아져서 삶의 가치와 철학, 경험을 공유한 잠재적 입주후보자들이 들어오지 못하게 되는 것을 안타까워 한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법적 요건을 충족한 시니어 요양주거단지의 운영에 필요한 인력과 시설을 유지하려면 비영리재단이라 지라도 재정균형을 위한 고충을 이해못하는 바가 아니다. 그래서 이들은 자발적 논의를 통해 자조 프로그램을 만들어 시행하기 시작했다.

 

RAF(Residents’ Annual Fund) 불리는 기금과 거주자중 경제적 보조가 필요한 사람을 도와주는 프로그램 RHSP(Resident Health and Support Program) 그것이다. 12 소식지에는 주민 모두가 참여해서 매년 일정액씩을 모금하고 있는데 연말까지 납부하라는 안내문이 실렸다. 기금(RAF) 지원프로그램(RHSP) 사용되는데 과거 자발적인 기부에서 올해부터는 의무납부로 바뀌었다.

 

RHSP 목표는 모든 주민들이 서로 공동체의 일원으로 편안하고 존엄을 지키며 있도록 하는 ('live with comfort and dignity')이다. 재원은 크게 3 가지 경로로 충당되는데 기부 등을 통해 그동안 축적된 기금이 있고(올해 자산 총액은 70만불로 작년보다 가치는 약간 상승) 올해 모금된 기금(RAF) 20만불 그리고 페스티벌 수익금이 여기에 추가된다. 기금은 입주민 누군가가 단지 경제적 사정으로 필그림 플레이스를 떠나지 않을 있도록 하는 사용된다. 자료에 따르면 올해 독립적인 주거단지에 있는 조건은 3,300(1), 5,100(부부) 전보다 인상되었는데 이들 매월 보조금을 지원받는 가구는 12가구였다. 한해 대략 50만불( 5,500만원) 정도가 그런 용도로 사용되었다. 긴급하게 발생한 의료비 지출을 감당하기 어려운 경우 도움을 청할 있는데 지난 사이 6가구가 혜택을 보았다.

 

 

생태적 공동체를 위한 노력

 

필그림 플레이스는 적극적으로 생태적 지속가능성을 고민하고 실천하는 커뮤니티이다. 주민들은 단지내 건물이나 주택을 수리할 에너지 절약을 위해 다양한 공법을 도입, 시도하고 비록 초기 설치비용이 만만치 않지만 수백기의 태양열 패널을 설치했다. 자발적으로 월별 물사용량을 모니터링하는 모임이 운영되고 있으며 최근에는 플라스틱 용기도 재질을 나누어 세밀하게 분리수거한다. 음식물 찌거기를 자연퇴비화해서 유기농 텃밭을 가꾸는 활동도 시작되었다. 모든 활동을 주민들의 자발적 결의로 시행하고 있고 장기적 목표는 단지내 대식당에서 나오는 음식물 쓰레기들을 어떻게 체계적으로 자연퇴비화하도록 것인가이고, 비용을 최소하면서 이를 실행하기 위해 단지의 운영을 맡고 있는 관리부서와 논의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

 

오랫동안 지속되어온 관성을 깨고 캘리포니아의 자연기후에 맞지 않는 잔디깔린 마당과 정원을 과감하게 사막형 조경으로 바꾼 것도 이들의 자발적 실천이었다. 환경보호 위원회(Environmental Concerns Committee) 가장 활발하고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위원회로서 필그림 플레이스의 실제 운영에 거버넌스 형태로 참여하고 있으며 전체 주민과 관리직원들을 대상으로 하는 교육과 에너지사용 효율화를 위한 시스템 관리에 도움을 주고 있다. 이런 노력들의 결과 필그림 플레이스는 4년만에 사용량을 절반으로 줄였고 전체 주민들에 대상으로 하는 기초 에너지 사용량 평가조사도 마쳤으며 단지내 3개의 건물을 에너지 절약기준(LEED-certified buildings) 맞춰 건축하였다.

 

대외적으로는 클레어몬트를 기반으로 환경 문제해결과 교육 네트워크의 일원인데 네트워크에는5개의 클레어몬트 대학 컨소시움 대학들 그리고 클레어몬트 대학원(Claremont Graduate University) 클레어몬트 신학대학원(Claremont School of Theology) 대학과 NPO, 클레어몬트 시가 함께 참여하고 있다. 클레어몬트를 넘어서 전국적인 연대에도 참여하고 Leading Age,  Aging Services of California 그리고  'Gray is Green' 라는 슬로건으로 유명한 시니어 환경보호단(Senior Conservation Corps)과도 협력하고 있으며 Home Performance Matters (HPM), Energy Upgrade California, Hartman Energy Strategies 외부 에너지 효율화를 위한 파트너 단체들과의 협력하면서 에너지 효율적인 태양광발전의 시니어 은퇴 커뮤니티의 새로운 모델을 만들겠다는 목표를 갖고 있다.

 

 

필그림 플레이스 페스티벌

 

필그림 플레이스 페스티벌은 올해로 69회를 맞았다. 처음에는 소박하게 지역사회 주민들에게 단지를 개방하고 이들의 작품과 소장기념품, 중고서적, 입주민들이 사용하던 중고가구 야드세일(Yard sale) 등의 행사로 출발했는데 오랜 기간  지속되면서 알려진 지역축제가 되어 다채로운 행사가 일주일(113일~1110) 지속된다. 축제 기간 중에 판매되는 중고서적들은 신학, 인문 사회과학, 자연과학, 예술 과학 분야를 망라해서 수준높은 전문서적들이 많기로 소문이 나있고 필자도 작년에 10여권을 책을 거주 줍듯 구입했다.

 

페스티벌은 주민 거의 대다수가 참가해서 최소한 2-3달의 준비기간이 소요되는 필그림 플레이스 최대의 잔치이다. 올해도 사진, 그림, 스테인드 글래스, 목공품, 수공예품, 도자기, 장난감, 베개 커버 등의 직물 등등이 여러 부스에서 전시, 판매되었다. 그리고 행사 기간 동안에는 단지내 식당이 개방되어 페스티벌 참가자들을 위한 식사가 할인된 가격으로 제공되고 행사부스 주변에 어린이를 동반한 가족들을 위한 푸드코드도 마련되었다. 세대간 교류 프로그램도 마련되는데 특히 올해 페스티벌에는 오래 어린 아이 시절 페스티벌 때 필그림 플레이스를 찾은 이들이 성장해서 부모가 되어 자녀들과 함께 다시 필그림 플레이스 찾아오는 행사가 열렸다.

 

 

세대간 교류: 내피어 이니셔티브(Napier Initiative)

 

세대교류 프로그램의 대표적인 사례는 내피어 프로그램(Napier Program)이다. 프로그램은 대학의 관점에서는 지역사회와의 협력 프로그램이기도 하다. 대학도시 클레어몬트에는 리버럴아츠칼리지(liberal arts college) 불리는 교양중심 5 대학과 3개의 대학원이 캠퍼스를 맞대고 옹기종기 모여 있다. 미국 대학 랭킹에서 상위 10위권에 빠짐없이 드는 포모나 칼리지(Pomona college)외에 경제, 경영분야에서 강점이 있는 클레어몬트 매캐나 칼리지(Claremont McKenna College), 미국의 수능이라 있는 SAT 없이 학생을 선발하는 핏쳐 칼리지(Pitzer College), 오랜 역사의 여자 대학 스크립스 칼리지(Scripps College), 공학 쪽으로 특성화된 하비머드 칼리지(Harvey Mudd College) 등이 있고 여기에 개의 대학원이 추가되어 7 대학이 컨소시움을 구성해서 도서관과 커리큐럼, 그외 여러 비교과 프로그램을 공유하고 있다.

 

내피어 이니셔티브(The Napier Initiative) 필그림 플레이스와 5 클레어몬트 컨소시움 대학간 사회의 변화를 촉진하는 리더십을 격려, 지원하는 파트너십 프로그램이다. 데비 내피어(Davie Napier) 예일대학과 스탠포드 대학 등에서 신학을 가르친 학자이자 1960년대 월남전과 인종차별에 반대하여 반전운동과 인권운동에 앞장서고 사회정의와 포용, 평화, 환경보호에 일생을 헌신한 사회운동가이다. 데비 내피어와 그의 부인 죠이 내피어(Joy Napier) 은퇴후 필그림 플레이스에서 여생을 보내면서 정의와 평화, 사회적 가치에 대한 관심과 실천을 지속했다. 이들의 사후 가족과 친지, 제자들과 필그림 플레이스 주민들은 이들 부부의 실천적 삶을 기리기 위한 방법을 모색하다가 기금을 조성하고 내피어 이니셔티브를 시작했다. 내피어 이니셔티브는 매년 내피어 펠로우(Napier Fellow) 선정하여 시상하고(Napier Award), 이들을 위해서 필그림 플레이스 주민, 클레어몬트 5 대학의 교수들 그리고 클레어몬트 지역사회 대표들이 함께 참여하는 세대간 멘토링과 내피어 코스 등으로 구성된다

 

내피어 어워드(Napier Awards for Creative Leadership) 5 클레어몬트 컨소시움 대학 4학년 학생 선발하며 2010년부터 83명의 네피어 펠로우가 선발되었고 16 부문의 시상이 수여되었으며 선발된 내피어 펠로우들은 자신들의 관심과 연관해서 필그림 플레이스의 주민들의 멘토링을 받는다. 매년 5 대학에서 3명씩의 네피어 펠로우를 선정하고 이들은 여러 차례 필그림 플레이스에서 모임을 갖고 이듬 해에는 자신을 위한 멘토를 찾아서 지속적인 교류와 도움을 받는다. 필그램 플레이스의 멘토들은 내피어 펠로우들의 생각과 생활, 계획들을 듣고 조언해주고 필요한 사람이나 단체, 자원들을 찾아 연결시켜 주는 역할한다. 매년 내피어 펠로우 2명에게는 자신이 제안한 프로젝트를 수행하도록 각각 15,000불을 지원한다. 내피어 코스(Napier Courses) 교수들이 필그램 플레이스 거주 시니어들을 공동 수강자로 지정해서 학생들과 함께 수업에 참여하는 강의이다. 3개의 세대통합적 내피어 강좌(intergenerational Napier courses) 2017~2018년에 개설될 예정이고 각각의 과정은 사회정의에 관한 이슈들에 초점을 맞춰 이론과 실천적 현장경험을 두루 쌓도록 설계된다. 이들 과목들은 포모나, 하비머드, 스크립스 칼리지에서 개설되지만 5 컨소시움 대학의 모든 학생들이 선택할 있다.

 

필그림 플레이스에서는 30명이 매년 내피어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고 내피어 코스에도 12~15 정도가 참여한다. 내피어 코스를 위해서는 필그림 플레이스를 대표해서 주민 사람이 강좌의 기획단계부터 강좌개설 교수와 긴밀히 상의하며 참여하고 강의가 진행되는 중에는 매주 2일씩 12 동안 진행되는 수업에 참여한다.  

맺음말

 

필그림 플레이스는 비교적 동질적이고 비슷한 순례자적 삶의 경험을 공유한 사람들의 은퇴후 공동체이다. 필그림 플레이스라는 이름이 뜻하는 것처럼 곳은 순례자적 삶을 실천한 사람들이 새로운 여정을 준비하는 '순례자의 공간'이다. 이들의 경험은 정의롭고 평화로운 세상을 향한 헌신이라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고 이들은 필그림 플레이스에서의 일상적 삶에서도 자신들의 삶을 관통해온 가치를 실천하고 있다. 그래서 필그림 플레이스는 이타적이고 성숙한 성찰적 시민들의 공동체의 표상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필그림 플레이스는 주변에서 흔히 찾아보기 힘든, 아주 예외적인 공동체라 있다. 그렇지만 우리의 자체가 순례자의 여정과도 같은 것이기에, 필그림 플레이스를 관찰하는 시간은 낯설면서도 친근한 시간이었다. 그리고 우리가 함께 만들어갈 새로운 노년의 모습을 발견하는 기쁨의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