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 년 전에 아름다운 시니어'라는 주제로 한 시간 동안 이모작을 고민하는 분들에게 이야기를 들려달라는 의뢰가 와서 강의를 하러 간 적이 있었습니다. 이모작 아카데미나 은퇴 설계 강의는 은퇴하는 직장인 입장으로 제 2의 인생을 모색하려는 사람이 대부분입니다. 그런 청중을 앞에 놓고 저의 일모작은 주부로서 가정경영이었다고 말하면 급속하게 공감대가 떨어집니다. 은퇴를 앞두게 되면 직장과 경제활동 변화에만 신경을 쓰지, 정작 가정생활 자체가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드무세요.

 

그들은 가정 안에서는 자신이 평생 다니던 직장 돈벌이가 한 편으로는 아이들을 키우고 가족을 돌보는 영역의 일부였다는 사실을 종종 잊어버리는 것 같아요. 집집마다 상황은 다르지만 결국 결혼생활의 최고 미션은 부부가 함께 자녀를 낳고 키우고 돌보는 일 아니던가요? 은퇴 준비는 무엇보다 그런 가정생활을 재조정하는 부부간의 우선순위 변화가 절실한 시점이지요. 이 과정에서 평생직장에 다니던 남편과 평생주부로 살아왔던 아내는 종종 말 못할 불협화음을 겪기도 합니다.

 

 

마침 그런 위기를 겪고 있는 한 여성분이 그 날 저의 강의를 들었던 모양입니다. 사무국을 통해서 개인적인 인생 상담을 하고 싶다는 요청이 들어왔습니다. 경험상 지나치게 개인적인 이야기는 대면 상담이 외려 불편할 뿐더러, 저도 한창 바쁘던 시기라 직접 만나지 않고 전화로만 이야기하자고 제안을 하였습니다. 그렇게 시작했던 통화가 무려 세 시간을 넘겼습니다.

 

그녀는 겉으로 보기에는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한 집안의 안주인이었습니다. 그러다가 남편의 은퇴시기를 거치면서 심각한 불화와 함께 내면적 갈등이 생겨난 경우였지요. 남편과 결혼하여 그 남자가 원하는 인생 청사진을 현실로 일궈내느라 평생 집안에서 종처럼 살아왔다고 합니다. 남편이 직장을 다니는 동안에는 사회생활에 지치고 바빠 표현을 못하는 것이지 속으로는 고마워하는 줄 알았대요. 그런데 은퇴를 하고 보니 전혀 아니더랍니다. 고마움은커녕 자기가 여태 먹여 살렸다고 유세를 떨며 더 대접을 못 받아서 나날이 성질을 내더라는 겁니다.

 

자기 인생을 송두리째 쓰레기통에 처박아버린 것 같은 회한과 복수심으로 손목까지 몇 번 그었다고 하니 정말 보통 일이 아니었지요. 듣는 저도 괜히 그녀의 마음을 건드릴까봐 겁이 나서 쉽게 전화를 끊지 못하였습니다. 그녀는 앞으로 자기 알기를 X같이 아는 가족에게 좀 더 분풀이를 해볼 작정이라고 했습니다. 그냥 잊어버리고 이제부터라도 혼자 재미있게 살아보는 게 어떠냐고 슬며시 조언을 드렸건만 그런 게 뭐 남이 말로 달랜다고 되는 일이겠습니까.

 

한숨만 푹푹 쉬며 하소연을 하던 그녀가 '저도 선생님처럼 그렇게 자기 마음을 잘 설명할 능력이 있었으면 이렇게까지 폭력적인 행동을 하지 않고, 대화를 하면서 오해도 풀고 소통할 수 있지 않았을까요?‘ 하면서 안타깝다고 했습니다. 그 말을 듣자마자 저는 숨도 안 쉬고 화들짝 놀라 이렇게 말을 이었어요.

 

아이고, 어머니! ‘깨몽입니다요. 제가 이렇게나 좋은 말솜씨로, 저보다 더 말 잘하는 남자와 삼십년 동안이나 대화라는 걸 해봤는데요. 소통요? 그게 말을 잘해서 되는 게 아닙디다. 애초부터 말로 해서 되는 게 있고 안되는 게 있더라고요. 대화를 잘하면 서로를 온전히 이해하리라는 것은 환상에 불과합니다. 저희도 대화를 깊게 하다가 오히려 없던 갈등이 생겨나고 싸움으로 번진 적도 많아요. 그러니 자꾸 상대에게 내 마음을 알리려고 애쓰지 말고 차라리 글로 써보세요. 혼자 조용히 자신이 꼭 관철하고 싶은 공격 지점과 너그럽게 넘어갈 수 있는 양보 지점을 생각해보세요. 함께 가야하는 사람과는 대충은 덮고 넘어가는 것도 답입니다.”

 

그랬어요. 지금 와서 돌아보면 저 역시 상대를 설득하겠다는 집요한 노력을 포기하고 혼자만의 억울함을 조용히 글로 써내려가면서 조금씩 소통의 여력이 생겨났던 것 같아요. 자기 마음을 이리저리 살펴보며 스스로 위로하며 울화를 다스리고 나면 그제야 나를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되고 상대와의 불화를 봉합할 수 있는 용기가 생겨나곤 했지요. 지금의 저를 이나마 안정되게 성장시켜준 것은 좋은 선생의 가르침도, 치열한 독서도 아니에요. 그저 책상 앞에 앉아 생각의 미로에 갇혀 왠지 모르게 화가 난 자신을 가만히 응시하고 어지러운 감정을 문자로 명료화시키면서 조금씩 영글어진 것이죠. 막연한 세상을 향해 조금씩 앞으로 내딛을 수 있는 선택의 답은 그런 식으로 늘 제 안에 있었어요.

 

이런 경험에서 저는 이렇게 갈등에 휩싸인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글쓰기를 권합니다. 실제로 온라인이나 오프라인 펜클럽을 만들어 함께 쓰기를 독려하기도 했고, SNS 친구로 말동무를 삼거나, 제가 발행하는 오지랖통신의 구독신청자를 통해 보다 적극적으로 글 친구를 찾기도 합니다. 은퇴를 앞두고 생애 전환을 고민하는 사람들, 미래의 불안함을 안고 살아가야 하는 젊은이, 지나간 과거를 차분하게 정리하는 분들 모두에게 글쓰기는 유용합니다.

 

근래에는 갈등하는 엄마들에게도 이런 글쓰기를 많이 권합니다. 엄마라는 거대한 이름에 눌려 자기 본연의 삶을 제대로 살지 못한 사람들이 갖는 관계적인 폭력성을 주시하고 있거든요. 많은 여성이 그들이 가진 모성 본능 때문에 위대하는 말을 종종 듣고 살지만 제 경험으로는 그런 게 특별히 따로 있는 것 같지도 않아요. 모성이란 기본적으로 힘없는 어린 생명이 독립할 수 있게 되기까지 자신을 헌신하여 키우는 과정에서 저절로 우러나고 강화되는 인간애의 일종인 것 같습니다. 다만 감정과 공감 능력이 발달한 여성이 어린 아이를 직접 낳고 돌보는 과정에 있다 보니 상대적으로 더 드러날 뿐이지요.

 

가장의 이름으로 살아왔던 남편들도 대개 이와 비슷하리라 생각합니다. 그들이라고 무슨 그리 뾰족한 능력이 더 있었겠습니까. 모성 예찬 못지않게 가부장 시대의 아버지자리를 지키느라 죽을힘을 다해왔던 게지요. 그런 식의 강박적인 책무도 은퇴를 준비하면서 어느 정도 내려놓는 연습이 필요한 것 같아요. 이런 분들에게 아티스트웨이 모닝페이지라는 이름으로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생각을 마구 글로 적어 내려가는 혼자만의 비밀일기를 권합니다.

 

 

잠에서 깨는 시간에는 마음속에 가라앉아 있었던 생각들이 자연스럽게 마구 올라오거든요. 남에게 보여줄 필요도 없고, 굳이 잘 쓸 필요도 없어요. 그저 자기를 응시하며 나는 뭘 하고 싶은 지, 뭘 걱정하는 지, 오늘은 어떤 기분인지, 가끔 왜 화가 나는지, 어떻게 하면 즐거운 감정이 돌아올 수 있을 지 하나씩 써내려 가는 거죠. 그런 과정을 거치며 평생 의무감에 휘둘리며 살아왔던 많은 분들이 치유의 감정을 느끼고 홀가분해졌다고들 하십니다. 이게 바로 요즘 꾸준히 전파하는 아티스트 웨이 글쓰기에요. 아티스트 웨이는 나에게로 돌아오는 길이라고 할 수 있어요.

 

은퇴 이후의 편안한 삶을 위해 가족 간의 적당한 관계 거리를 재설정하는 일이 꼭 필요한 듯합니다. 부부끼리는 여전히 데면데면하면서도 자녀에게는 끊임없이 관심을 기울이고 함께 하려고 애를 쓰는 것도 지난 수십 년 동안 부모들에게 익숙해진 생활습관일지 몰라요. 그럴 때 이런 방법으로 나와 대화하는 글쓰기를 각자 시작해보세요. 내 인생에 가장 오랫동안 편안하게 동행해야 하는 친구는 결국 나 자신일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