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연한 일상에 감사하게 되기를...
- 그들은 할 수 없는 사람들이 아니라 다른 일에 재능이 있는 사람들이다
 

영화 <어바웃 타임>을 보면 사방이 컴컴한 암전카페가 나온다. 남녀 주인공은 암전카페에서 옆 테이블에 앉아 얼굴도 모른 채 목소리만으로 대화를 나누다가 입구에서 만나기로 약속한다. 남자 주인공이 먼저 나와서 여자 주인공을 기다리는데, 그 얼굴에 어떻게 생겼을까 궁금해 하는 온갖 표정이 나타난다. 잠시 후, 담 모퉁이에서 살짝 고개를 내밀며 나타나는 여자 주인공의 호기심어린 얼굴과 드디어 만나게 된 두 사람의 미소. 영화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이다.

 

▲영화 <어바웃 타임> 스틸 이미지

 

영화를 본 후, 저런 장소가 있으면 한번 경험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냥 잠시 눈을 감는 것과는 분명 다를 것이라는 기대감도 있었다.

궁금증을 이기지 못해 찾아보니, 독일의 안드레아스 하이네케에 의해 시작된 <어둠속의대화>라는 체험 프로그램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이미 전 세계 1000만 명 이상이 경험한 유명 체험 프로그램이었다. 안드레아스는 방송국에서 일하던 시절 사고로 시력을 잃은 마티아스라는 기자를 인터뷰하게 되었는데, 그가 능숙하게 커피를 따르는 등 일반인처럼 행동하는 것을 보고 선입견을 가졌던 자신이 부끄러웠다고 한다. 이를 계기로 안드레아스는 장애인을 '할 수 없는 사람들'이 아니라 '다른 쪽에 특별한 능력이 있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하게 되어, 그들의 잠재력을 확신하고 <어둠속의대화>라는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 출처 : 어둠속의대화 홈페이지

 

마음이 통했는지 얼마 전 사방이 어둠 속에 묻힌 이 공간을 경험했다. 50+시민기자로써 누린 특별한 시간이었다. 

함께 할 기자단 일행들과 북촌에 위치한 <어둠 속의 대화> 전시관에서 만나 체험을 진행했다. 우선 어둠에 익숙해지기 위해 커튼을 친 공간을 따라 들어갔다.

어느 정도 어둠이 익숙해져 더욱 진한 어둠속에 들어서자 가까이에서 경쾌한 청년의 목소리가 우리를 맞아주었다.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저는 지금부터 여러분을 안내할 로드매니저 OOO입니다. 이곳은 눈을 뜨나 감으나 어차피 똑같아요.

그러니 편하게 눈을 감으시고 제 목소리를 따라 움직이시면 됩니다."

 

눈을 감았다 다시 떠 보았다. 똑같았다. 정말 그랬다. 세상에 이렇게 완벽하게 빛이 차단된 곳이 있었나 싶게 어둠 그 자체의 공간이었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우리는 오직 로드매니저의 목소리에 의존해서 이 공간을 익혀야 했다. 로드매니저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정확히 호명하며 안내했다.

 

눈을 감으니 새소리, 바람소리, 물소리까지 선명하게 들렸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알 수가 없다. 한 번씩 눈을 감아도 보고, 다시 떠 보기도 하지만 여전히 똑같다.

영화가 시작되어 어두운 영화관에 들어갈 때 눈을 감았다 다시 뜨면 동공이 확대되어 시야가 잘 보이는 현상은 일어나지 않았다. 언제나 그대로였다. 완벽한 어둠.

그 속에서 목소리에 의존하여 이동을 하고 목소리의 안내에 따라 마음으로 느끼며 우리는 길고도 긴 여행을 했다. 특별한 순간이었다.

 

 

여행을 모두 마치고도 로드매니저의 얼굴은 끝내 볼 수 없었다. 그의 이름만 알게 되었다. 우리는 밝은 빛으로 나왔고 로드매니저는 그곳에 남았다.

세상의 빛이 얼마나 눈부셨는지를 새삼 알았다. 익숙해질 시간이 필요한 만큼 세상의 빛은 밝았다. 우리는 눈부신 빛 속에서 서로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음을 감사했다. 화장실 거울 속에 비친 얼굴을 보면서 내겐 체험이라는 이름으로 한정된 90분의 시간이었지만, 어릴 적 알던 누군가가 영영 빛을 못 본 채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 떠올랐다. 잠시의 호기심 어린 내 경험이 누군가에게는 평생의 시간이라는 것이 마음을 복잡하게 만들었다. 

 

어릴 적 살던 동네에는 태어날 때부터 앞이 보이지 않는 남자아이가 있었다. 내 친구의 동생이기도 했던 그 아이는 어느 순간부턴지 동네에서 보이지 않았다.

나중에 생각해 보니 아마도 시설이나 특수학교에 갔던 게 아닌가 싶다. 어른이 되어 우연히 친구를 다시 만났을 때 그 아이의 소식도 듣게 되었다. 성인이 된 그는 결혼을 했고, 안마시술소를 운영한다고 했다. 동창 중 한 사람이 당뇨합병증으로 실명 진단을 받았을 때 그 친구도 안마사가 되기 위해 교육을 받는다고 했다. 앞이 안 보이는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직업에 안마사가 있다는 것을 그때 알았다. 안마사가 되었다고 가끔 안부를 전하던 그 친구는 지난해 하늘로 갔다.

 

앞으로 완벽한 차단은 아니겠지만 한 번씩 눈을 감고 세상을 느껴볼 생각이다. 특히 삶이 고단할 때나 삶에 불만이 생길 때.

 

우리는 자신이 가진 것에 대해 당연하게 느끼며 살아간다. 이미 주어진 것에 대해 당연하게 느끼고 갖지 못한 것에 대해 불만을 갖는다.

하지만 조금 주위를 돌아보면 지금까지 당연하게 여기던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이었는지 깨닫게 된다. 혹시 지금 삶이 재미없다고 느껴진다면 잠시 눈을 감았다

뜨라고 말해주고 싶다. 거울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