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세를 살아가는 50+ 당사자들의 숙제

 

백 살까지 살아야 한단다. "재수 없으면 100살까지 살 놈!"이란 우스갯소리도 등장했다. 한때는 장수가 희망이었고 축복이었지만, 모두가 백 살까지 살아야 하는 사회에서는 꼭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대게 '60평생'이란 말은 보편타당한 언어였다. 가까운 과거에 동양에서는 회갑잔치, 서양에서는 조기 은퇴로 편안하게 남은 삶을 산다는 것이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여기서 편안한 여생을 산다는 것이 육십 언저리였고, 더 산다고 해보았자 기껏 칠십 내지는 팔십으로 생각했다. 칠십 또는 팔십까지 살아남아 있는 사람도 소수에 불과해서 어른이라는 예우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과거의 통념을 깨고 백세 이상을 살아가야 하는 긴 여정의 삶이 놓여있다. 나이가 많다는 것은 극소수 예우의 대상이 아니라, 그냥 오래 살아 있는 것뿐이 되었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2015년 100세 이상 인구가 3,195명, 90세 이상 인구가 15만 7,000명으로 급속히 증가하고 있다. 장수시대의 새로운 사회가 형성되고 있다는 사실을 뒷받침하는 자료다. 지금까지 백세 이상인 사람들끼리 죽기 전에 서로 만날 확률이 매우 낮았지만, 앞으로는 몇 집만 건너면 백세 이상의 노인들을 만날 수 있게 된다. 백세 이상의 노인들끼리 서로 만나 삶을 즐기는 새로운 사회가 형성된다는 뜻이다.

 

이제 우리는 인생을 60평생이라기 보다는 100평생이라고 불러야 할 듯싶다. 육십에서 백세까지 더 많은 사람들이 사회집단을 이루며 살아갈 예정이지만, 아직 백세시대에 대한 정확한 사회 경험이나 통념은 존재하지 않는다. 많은 수의 인류가 백세까지 집단을 이루며 살아온 전례가 없기 때문이다. 육십까지는 인류의 경험과 지혜가 축적되어 있지만, 육십 이후의 사회생활에 대한 경험이나 데이터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육십 이후를 살아가는 50+세대는 고뇌와 번민으로 가득 차 있다. 육십 이후의 인류사회의 통념을 새롭게 만들어야 하는 당사자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잘 걸어가야 뒤를 따르는 사람들도 그 족적을 거울삼을 것이다. 그런데 막막하기만 하다. 물어 볼 사람이 아무도 없다. 간단한 힌트조차 없다. 그동안의 경험과 지혜만으로 개척해야만 한다. 이것이 50+세대의 남은 숙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