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시인의 삶은 피곤하기 그지없다. 늘 굶주림과 추위에 시달려야 한다. 언제 맹수가 공격해올지도 모른다. 스트레스 이론대로라면 원시인은 위장에 당장이라도 궤양이 생겨 속이 쓰리고 천공이 생기는 등 난리가 나야 한다. 현대인이라면 일생에 한 번 겪을까 말까 한 이른바 ‘생사를 가르는 교감신경의 흥분’을 이들은 수시로 경험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과연 원시인들은 오늘날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현대인처럼 밥을 먹고 난 뒤 소화불량으로 속이 더부룩하고 답답했을까. 아니면 위궤양으로 인한 속쓰림으로 배를 움켜쥐고 지냈을까. 불면증으로 밤을 지새우거나 요통이나 무릎 관절염으로 절뚝거렸을까. 복부비만으로 허우적거리거나 높은 혈압과 혈당으로 고혈압과 당뇨에 시달렸을까. 원시인들도 혈관이 막히거나 터지는 뇌졸중과 심장병으로 급사했을까.

원시인보다 지구상에 훨씬 먼저 출현한 아프리카 초원의 얼룩말을 상상해보자. 그들의 일상은 어떠할까. 대부분의 시간은 한가롭게 풀을 뜯고 지낸다. 그러나 사자가 덮치는 위기상황에서는 죽을힘을 다해 달린다. 전자의 삶은 부교감신경이 관장하며 후자의 삶은 교감신경이 관장한다.

중요한 것은 얼룩말이 풀을 뜯을 땐 정말 완벽하게 부교감신경이 작동한다는 사실이다. 바로 옆에 사자가 누워있어도 그들은 여유만만하다. 사자의 동향에 촉각을 곤두세우긴 하지만 향후 일어날 일에 대해 미리 걱정하지는 않는다. 그들은 그들에게 주어진 본능대로 행동할 뿐이다. 사자가 달려들면 수초 만에 교감신경이 바로 작동하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풀을 뜯는 그들의 심장은 가장 느린 속도로 뛴다. 호흡도 느리고 혈당도 낮다. 그러나 그들의 위장기관은 원활하게 움직인다.

사람이라면 긴장의 연속으로 당장 위궤양이라도 생길 판이지만 얼룩말은 유유자적하다. 미국의 저명한 동물학자 로버트 사폴스키 스탠포드대학교 교수는 야생의 얼룩말들에겐 위궤양이 없다고 설파한 바 있다. 물론 얼룩말은 궤양이 생기지 않는 대신 생존을 위협받는다. 인간은 대뇌피질의 진화를 통해 생존을 획득했다. 그것은 분명 칭찬받아 마땅한 일이다. 인간이 얼룩말보다 위대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러나 종족의 생존을 보장받는 대가를 치러야 했다. 바로 교감신경의 과도한 흥분이다. 반대로 말하면 부교감신경의 지나친 억압이다. 인간은 얼룩말처럼 충분히 쉬지 못한다. 인간에게 위궤양이 많은 이유다. 생존과 종족의 보전을 위해 위궤양이 생기는 거라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이젠 상황이 달라졌다. 현대사회에서는 더 이상 인간의 생명을 위협하는 사자가 없다. 굶주림이나 강추위도 얼마든지 극복할 수 있다. 원시시대처럼 하루하루 안위를 걱정하며 살아야 하는 사람도 없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여전히 위궤양으로 고통받는다.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늘 기운이 없고 피곤한 이가 많다. 항상 감기에 걸려 골골거리며 지내기도 한다. 원시인들은 어떠했을까. 기진맥진이라는 말은 적어도 손도끼 하나만 달랑 들고 맨발로 벌판을 내달리며 멧돼지를 사냥했던 원시인에겐 어울리지 않는다. 모르긴 몰라도 오늘날 최고수준의 육상선수와 역도선수에게 사냥을 맡겨도 야생에서 사슴 한 마리 잡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확실히 원시시대 인간의 삶에선 야성의 활력이 물씬 느껴진다.

이것은 평균수명이라는 개념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다. 교감신경을 한껏 동원한 원시인의 생존본능과 활력은 현 폭발적이며 다이내믹하다. 비록 맹수에게 물리거나 굶주림과 감염으로 수명을 제대로 못 채우고 죽는 일도 잦았겠지만 피로에 지쳐 흐느적거리는 원시인은 상상할 수 없다. 그들에게 활력의 상실이란 곧 죽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원시시대의 활력은 강력한 교감신경으로 설명된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원시인의 교감신경은 반대작용을 지닌 부교감신경으로 뒷받침된다. 부교감신경이 강해야 교감신경이 강해질 수 있다는 뜻이다. 충전 없는 방전은 생각할 수 없기 때문이다.

변변한 소독약조차 없던 시절 사냥을 하면서 생긴 숱한 상처들은 어떻게 치유되었을까. 부족한 열량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체내에 쌓아두며 추위와 굶주림을 견딜 수 있었을까. 왜 원시인들에겐 생존의 위협이 지속되는 나날 속에서도 얼룩말처럼 위궤양이 생기지 않았을까.

적어도 원시시대의 인간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강력한 부교감신경을 지녔음이 분명하다. 원시인들은 수억 년에 걸친 진화론이 의도한 그대로 자율신경의 양대 축인 교감신경과 부교감신경이 완벽하게 조화를 이루었던 것이다.

 

홍혜걸 의학전문기자  bravo_log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