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을 맞으면 파블로프의 반응처럼 맴도는 한 문장이 있습니다. 저뿐이 아닐 것입니다.

“사월은 잔인한 달!”

이 단순한 문구로 T.S. 엘리엇의 ‘황무지(The Waste Land)’는 시작됩니다. 그러나 엘리엇은 지혜롭게도 이 문장을 시작하기 전에 슬쩍 전체를 이끌어갈 두 구절을 아무렇지도 않은 듯 깔아놓습니다. 그의 의도대로 그 장치는 보이지 않게 잘 작동합니다. 하나는 수백 년을 살고 있는 무녀의 독백이고, 다른 하나는 에즈라 파운드입니다.

 

한번은 쿠마에서 나도 무녀가 조롱 속에 매달려

있는 것을 직접 보았지요.

아이들이 “무녀야, 원하니? 하고 물었을

그녀는 대답했지요.

“죽고 싶어.”

 

그리고 그는 곧이어 본격적으로 시가 시작되기 바로 전에, 그의 선생님 뒤에 숨습니다.

 

“나의 존경하는 선생님 에즈라 파운드에게 시를

바칩니다!”

 

얼마나 영리한지요? 아니면 바로 그 선생님이 기진한 제자를 또 다른 시로 감싸주었는지? 저는 독자이니 아무래도 좋습니다.

총 5장으로 나뉘어 구성된 이 장편서사시의 제1장은 ‘죽은 자의 매장(The Burial of the Dead)’으로 시작됩니다. “사월은 가장 잔인한 달”, 한창 멋 부릴 나이에 이 시를 만난 저는 첫 문장부터 긴장하며 오랫동안 난해한 문장들과 씨름을 했던 기억이 떠올라 혼자 웃음이 나옵니다. 우선 너무 생소한 고유명사 밑에 깔린 고전, 그리고 숨겨진 신화를 찾아보느라 표를 만들었습니다. 본문보다 훨씬 더 긴 표에 또 꼬리를 이리저리 달아야 했습니다. 당시는 전자정보는 말할 것도 없고, 복사기도 없던 때라 도서관에서 일일이 사전으로 시작해 연결된 내용을 인덱스카드에 한 자 한 자 적어, 이리저리 붙이고 떼면서 생각을 정리해야 했습니다.

지난 3월호 칼럼과 이번 4월호는 이어집니다. 거기선 몽골 평원에서 인문이란 아름다운 무늬가 푸른 하늘로 경쾌하게 피어오르는 생명 이야기를 전해드렸습니다. 우리 인간끼리의 사랑을 넘어 가축을 아끼는 몽골 유목민의 평범함이 제게는 큰 울림이었습니다. 그 후에 이어지는 본격적인 이야기로 이어가고 싶지만 다음으로 미루고 이번 4월호에는 세상을 흔들어놓은 서양시인의 봄비로 시작되는 4월의 황무지 이야기입니다. 물론 몽골이란 특별한 지역에서 생각하는 4월은 좀 다를 것입니다.

여기 몽골에선 정말 다른 나라에선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4월이면 아직 오지 않은 봄을 기다리고 또 기다립니다. 그런데 그 시인은 겨울나라 사람들이 그토록 앙망하는 봄의 햇살도, 꽁꽁 언 대지를 녹이고 깨우는 봄비도 잔인하다고 선언하였습니다. 그뿐 아니라 봄과 겨울을 잉태한 시간과 공간 그 자체마저 하나하나 드러내 기대할 것이 없다고 조목조목 발가벗겨 보여줍니다. 그래서 그 시를 읽다 보면 숨을 쉴 때마다 시인의 표현대로 가는 재가 끝없이 허파로 들어오는 공포를 체험을 하게 됩니다. 더구나 그 재는 내 몸을 두꺼비 집처럼 뒤덮고 있습니다. 아름다운 그림자도 시간이란 절망의 무섭고 처량한 모양으로 길게 바뀌어 우리들을 제압합니다.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대화도 메아리 없는 독백으로 바뀌고, 별들의 질서도 어느새 혼돈일 뿐입니다. 또 그가 인용한 다른 서양 시인의 지옥보다 무섭습니다. 왜냐하면 다음 단계인 연옥과 천국을 볼 수 있다는 간접적 희망도 무참히 포기시켜버리기 때문입니다. 시인은 많은 황·무·지를 보게 하지만 남자도 여자도 다 겪은 눈먼 노인 테이레시아스의 영안(靈眼) 앞에서 전 아예 길을 잃었습니다. 꼭 붙잡고 있던 마지막 도피처인 상상(想像)도 무너트립니다. 비를 거느린 천둥의 말과 큰 희망인 또 한 사람의 빛마저!

 

주라! 해도 숫자를 헤아리고 있는 나.

공감하라! 해도 경계를 지우고 있는 나.

자제하라! 해도 상상의 날개를 펼치고 있는 나.

 

그래도 지는 해를 바라보며 해변 기슭에 앉아 시인은 낚시질을 하며 혼잣말처럼 중얼거립니다.

“내가 앉아 있는 주변 땅이라도 깨끗이 해야 하지 않을까?”

거미줄에 맺힌 아침이슬처럼 그의 독백은 위태롭지만 영롱합니다. 그 시인이 땅에 묻힌 지 반세기, 시를 발표한 지 한 세기가 다 되었습니다. 겨우내 꽁꽁 얼어붙어 있던 땅과 나무들을 녹이는 햇살과 봄비를 잔인하다고 선언한 이후 세상은 그 시인의 바람과는 달리 정말 황무지가 되는가! 했습니다. 그래도 봄이면 여전히 햇살과 봄비는 세상을 감싸 안고, 그가 잠든 땅을 녹이고, 잠든 나무를 깨웁니다. 그리고 단단한 가지를 뚫고 목련은 피었습니다. 또 그토록 그 시인이 듣고 싶어 했던 물소리는 아직 그 혼탁함과는 상관없이, 어디서나 언제나 아름답습니다. 우리의 생각과 다른 희망의 메시지입니다.

 

 함철훈(咸喆勳) 사진가·몽골국제대학교 교수 bravo_logo